구속과 자유 사이의 나침반
11월의 마지막 날. 흔한 '마지막' 앞에서도 마음이 숙연해진다. 다가올 추위에 대한 긴장 때문인지 아랫배에 슬며시 힘이 들어감을 느낀다. 하늘은 날로 높아지고, 간밤에는 내내 열어두었던 창문을 닫고 잤다. 후덥지근한 온기가 서늘한 공기로 자리를 내어주는 계절, 곧 들이닥칠 찬 기운을 예감하며 옷깃을 여민다.
모든 시작에는 끝이 있다. 그 반복되는 궤도 속에서 우리는 정말 변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쳇바퀴 돌 듯 제자리를 맴도는 것일까. 외형적으로 보면 생성과 소멸을 거치며 변화하는 듯 보이지만, 수많은 생명이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섭리를 보고 있으면 결국 삶이란 거대한 수레바퀴 안에서의 반복인지도 모르겠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그 명징한 진리처럼.
모래알은 움켜쥐면 쥘수록 손가락 사이로 허망하게 빠져나간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저마다 삶의 목적과 가치를 손안에 가득 쥐고 살아간다. 나 또한 그렇다. 오늘 아침, 내가 이토록 꽉 움켜쥐고 있는 것들은 무엇인지 가만히 들여다본다.
손바닥 안에는 인생 3막을 뜻깊게 보내야 한다는 다짐, 쏜살같은 시간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한정된 시간 안에서 무엇이든 효율적으로 해내고 싶은 욕심이 가득하다. 꾸준히 이어가고 싶은 글쓰기, 명상과 요가, 그리고 다시 잡은 클래식 기타. 오래 방치했던 줄을 갈고 손끝으로 현을 튕길 때마다, 어색하게 울리던 음들이 제 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에 몰두하고 싶다. 요즘 나의 시간은 이 세 갈래 물줄기를 따라 흐른다. 단조로운 일상인 듯해도 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가 버려, 나는 자꾸만 손바닥에 힘을 주어 시간을 더 세게 움켜쥐게 된다.
소소한 집안일을 하는 데에도 꽤 에너지가 쓰인다. 특히 주말에는 가족의 밥상을 준비하고 갈무리하는 일에 마음이 분산되어, 애써 세워둔 루틴이 무너지기 일쑤다. 나에게 일상의 루틴은 구속이다. 그러나 이 구속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유의 문을 열어주는 소중한 열쇠가 되기도 한다.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규칙적 일상에 대한 집착을 더해가는 형국이다. 나의 집착은 마치 구속과 자유, 그 갈림길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나침반 바늘 같다.
이 집착을 어찌하면 좋을까. 생각을 돌려보니 구속이면 어떻고 자유면 또 어떠하랴 싶다. 어차피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인생인데. 다 괜찮다. 그냥 괜찮다. 때로는 무언가를 간절히 쥐어보려는 그 집착마저도 삶을 향한 나의 뜨거운 애정일 테니까. 오늘 아침은 넉넉한 품으로 나 자신을 허용하고 포용해 본다. 꽉 쥐었던 손바닥에 힘을 조금 빼고, 흘러가는 계절을 가만히 응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