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흐른다

있으면서 있지 않은 것들

by hym

모든 것은 흐른다.

내 카톡 프로필 멘트다.

그렇다면 우리를 그렇게 붙들고 있던 감정들은, 도대체 어디로 흘러간 걸까.


누구나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하며 엄지로 도장을 찍던 어린 시절이 있다. 사춘기에는 마음을 꼭꼭 담은 편지를 손수 만든 봉투에 넣어 보내며 변함없는 우정을 지키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다. 청춘 시절엔 생각만으로도 심장이 두근거려 모든 에너지가 한 사람에게로 집중되며, 마치 사랑의 블랙홀에 빠진 듯 넋을 빼앗긴다. 중년에도 어디선가 날아온 사랑의 큐피드를 맞아 현실과 꿈을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위기가 슬쩍 지나가기도 한다.


아침에 떠오른 태양은 한낮에 눈부시게 작열하다가, 저녁이 되면 눈이 편안해지고 마음속에 넉넉함을 뿌려주는 황금빛 가루로 변한다. 인생도 비슷하다.


어릴 적 지내던 공간들이 어른이 되어서는 너무나 좁게 느껴지듯,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마지막 종점이 보일락 말락 한 지점으로 헤엄쳐가고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는 한때 높고도 강렬하던 파도가 잔잔하고 평온하게 느껴진다. 그동안 헤엄쳐오며 겪은 산전수전의 희로애락이 왠지 모르게 낯설게 다가오기도 한다. 마치 관조하듯, 희미한 불빛 아래서 읽는 소설 속 장면처럼 은은할 뿐이다.


내가 언제 그랬었지?

그 당시의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허구였단 말인가. 강렬하게 나를 사로잡던 감정도 분명 사실이었고, 구경꾼처럼 바라보는 지금의 나에게는 이미 사라져 버린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있으면서 있지 않은 것이었을 뿐이다.


결국 고정된 것은 없고, 모든 것은 흐르며 변화한다는 사실만이 남는다. 언감생심 꿈에도 할 수 없던 일들이 세월이 흐르며 일상이 되기도 하고, 한 시대를 지배하던 이데올로기가 완전히 뒤집히기도 한다. 흐르는 것은 감정뿐만이 아니다. 세상 모든 것이 흐른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무언가를 붙잡으려 애쓰기보다 흘러가도록 두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다만 조금 느리게, 가능하면 평화롭게 헤엄치며.

매거진의 이전글움켜쥔 손바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