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 있기에 하늘을 담을 수 있는 시간
며칠간 바이러스 덕에 푹 쉬고 났더니 머릿속이 텅 비어 있다. 아무 생각도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은 평온하다. 이럴 때는 그 ‘아무 생각 없음’이 흘러가는 대로 두서없이 자판을 두들겨 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다.
몇 해 전 밑줄을 그으며 읽었던 《생각의 시대》가 떠올랐다. 저자 김용규는 서문에서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말을 인용한다. 현재를 제대로 보려면 멀리 떨어져 보아야 하며, 그 거리는 ‘클레오파트라의 코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멀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이제 세상은 ‘지식이 많은 사람’보다 ‘생각이 많은 사람’을 필요로 한다고. 한마디로, 지식의 시대가 저물고 생각의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아무 생각이 없다는 것 역시 하나의 생각이 아닐까. 그래서 다시 《생각의 시대》를 펼쳤다.
책의 2부 ‘생각의 기원’ 서두에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가 등장한다.
뇌는 하늘보다 넓어라
옆으로 펼치면 그 안에
하늘이 쉬 들어오고
그 옆에 당신마저 안긴다
그녀의 시를 읽으면, 상상의 나래를 펴고 하늘 너머까지 날아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문득 에밀리 디킨슨을 깊이 탐구하던 한 선배가 떠오른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지만, 그는 늘 한 권의 노트와 한 자루의 연필이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 후로 나는 작은 노트를 습관처럼 지니고 다니게 되었다. 그 덕에 문학과는 거리가 먼 내가 매일 무엇인가를 끄적거리다 뒤늦게 글쓰기를 즐겨보고자 마음을 내고 있다.
그래서인가 아침마다 창밖의 목련을 바라보면, 디킨슨의 시처럼 하늘이 내 안으로 스며드는 것 같다. 오늘은 잿빛 구름이 가득한 하늘이다. 나는 그 하늘을 텅 빈 가슴에 조용히 안아 본다.
비어 있기 때문에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상태. 그 고요한 공간 속에서 문득 고대 철학자들이 말하던 ‘아르케’를 떠올려 본다. 세상의 근원을 설명하려 했던 최초의 생각 말이다. 그 아르케를 찾으려 했던 철학자들 가운데 오늘은 유독 탈레스가 마음에 남는다. 마치 잿빛 구름 저편에서 그가 내게 말을 건네는 듯하다.
가장 어려운 일은 ‘자기를 아는 것’
가장 쉬운 일은 ‘남에게 충고하는 것’
가장 유쾌한 일은 ‘매사가 순조롭게 흘러가는 것’
가장 진기한 것은 ‘나이 든 독재자’
가장 올바르고 정의롭게 사는 일은 ‘우리가 비난하는 다른 사람의 행위를 우리 스스로 하지 않는 것’
가장 행복한 사람은 ‘몸이 건강하고, 정신이 지혜로우며, 성품이 순수한 사람’
나는 그 문장들을 천천히 곱씹어 본다. 특히 ‘우리가 비난하는 다른 사람의 행위를 스스로 하지 않는 것’이 정의롭게 사는 길이라는 말 앞에서 오래 머문다. 인생의 후반부에 들어설수록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충고하고 싶은 유혹이 불쑥 고개를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이 문장을 꺼내 보아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앓고 난 뒤의 텅 빈 가슴은 잿빛 하늘을 닮아있다. 아무 생각이 없기에 오히려 에밀리 디킨슨의 시처럼 하늘 전체를 들어앉힐 공간이 생겼다. 지식으로 꽉 찬 머리보다, 비워진 가슴으로 세상을 품는 법을 배우는 것. 그것이 내가 지금 연습하고 있는 '흔들리며 걷는' 또 하나의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억지로 무언가를 채우려 하지 않기로 했다. 탈레스의 말처럼 몸이 건강하고, 정신이 지혜로우며, 성품이 순수해지기를 조용히 기도해 본다. 그리고 노트를 펼친다. 그 위에 ‘비움’이라는 단어 하나를 천천히 눌러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