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다섯이라는 종착점

02. 서른다섯이 되자마자

by 봄에

서른다섯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이다.

스물다섯부터 시작된 사회생활에서

스스로 정의한 종착점이었으니까.




서른다섯이 되면 일을 시작한 지 10년 차로 경력도 채웠을 것이고, 작가가 되고픈 욕구도 있으니 나만의 결과물이 있지는 않을까? 결혼도 했겠고, 아이도 있겠지. 일도 꽤 했으니까 돈도 모여 있겠지? 막연히 기대했다. 앞날에 대한 많은 생각들은 현실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그릇이 크면 나중에 사람들이 채워준다.’,

‘스스로를 연마한다면 나중에 알아봐 주는 이가 있을 것이다.’등의 뜬구름 잡는 소리에 의지했다.


일을 배우고 경력을 쌓는 것에 의미를 두었지만 내 꿈도 포기하기 싫었다. 방 안에 식물을 키우듯 내 마음속에 꿈이라는 식물을 키웠다. 나의 젊은 날은 뜬 구름 잡는 말들을 믿으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10년이 지난 지금, 정확하게 행동한 것만 이루어졌다.


서른에 육아휴직기를 보내면서 야간대학원에 입학했다. 입학한 후에는 바로 회사로 복직했다. 일하면서 학교를 다니려면 회사의 수락이 필요해 입학 사실을 공개했다. 입학 소식을 사장님께 전했다.


공부하려는 의지는 높이 사지만 중도 포기하면 시작하지 않은 것보다 못한 것이니 꼭 졸업을 하라고 말씀해 주셨다. 또, 회사라는 조직은 함께 생활하는 것이기 때문에 퇴근 후에 다니는 수업은 상관없지만 프로젝트 특성상 야근할 경우가 있는데 그때 빠진 시간은 주말근무를 해서라도 채워 넣고 업무에 지정이 없도록 하라는 주의를 주셨다. 다들 일하는데 일에 빠지고 학교를 가면 주변 사람들의 미움을 살 수 있으니 처신도 잘해서 미움받지 말라고 하셨다.


회사를 다니면서 학교를 다니는 사람들이란 임원급이었다. 연차가 적은 사람이 다니면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기가 쉬웠다. 대학원에서도 저연차에 회사에서 어떻게 나오는지, 회사에서 보내줬는지의 질문을 받았고 졸업할 때까지 묻는 사람들이 있었다.


힘들 때는 위로받고 싶어서 힘들다고 말하면 핀잔주는 이가 있었고 아낌없이 격려해주는 이들도 있었다. 나는 격려만 선별해서 들었다. 핀잔을 주면 당시에는 미웠지만 그것 또한 사서 고생하는 나를 보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말이기에 핀잔도 이제야 감싸 안는다.


친오빠에게 힘들다고 말하니

“네가 좋아서 시작한 거잖아. 뭔가 되려고 시작한 거 아니었어? 포기할거면 지금 당장 관둬. 부모님 고생시키지 말고, 시집이나 가라.”라는 말로 돌아왔다.


나는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싶다고 말한 것뿐인데, 남들에게는 의지가 큰 사람으로 보였던 것 같다.

보통은 현실의 어려움을 토로하니까.


내 뜻을 말한 순간부터 포기하면 안 되는 삶이 시작된 것이다. 하겠다고 말했기 때문에 행동하지 못하면 말 안 한 사람보다 못한 사람이 된다고 스스로를 못한 사람으로 증명하는 꼴이 되니까,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은 되기 싫어서 힘들어도 포기하지 못했다.


본격적인 행동은 서른 넘어서 시작되었다. 맘속에 키우던 식물이 지면을 뚫고 나오기 시작하니 빠르게 커갔다. 덩달아 내 삶도 빨라졌다. 일주일을 몇 개로 쪼개서 살았다. 지난 5년의 삶은 꽤나 분주했다.


그 나이에 경력, 학위, 두 아이 출산과 육아, 건축사 시험, 그게 가능해요?라고 질문도 자주 들었다. 그럼 애는 누가 봐요? 회사를 다니면서 학교 공부랑 자격증 공부도 하면 일이 돼요?


그러면 나는 반문할 것이다.

“애 안 낳고 일만 하면 일을 잘하고 있냐고,

일 관두고 집에서 애만 보면 애는 잘 보고 있냐고,

인생에 정답이 어디 있냐고,

법도 풀이하기 나름인데,

인생에 정답은 없다고.

그래도 정답을 찾는다면

생각한 것과 비슷하게 살고 있으면

자기 삶의 정답 아니겠냐고.”


여러 역할로 살다 보니 순간마다 집중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 힘든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늘 노래를 부르던 서른다섯 살이 되자마자

나는 왜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

무엇이 나를 흔들었기에,

또 누가 내 인생에 말을 걸어왔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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