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일도 잘하고 육아도 잘하려니
여자가 회사엔 입사하면
처음에는 많은 것처럼 보이더니
결혼 후에 사라지고 아이 낳고 사라지고
애를 봐야 한다고 사라지고
남는 여자는 얼마 없었다고 들었다.
육아휴직을 두 번 하고 돌아온 사이에 군대에서 시간을 까먹은 대학 남자 동기들과 실무경력이 비슷해졌다. 그들은 애를 보면서 일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나보다 일에 대한 책임감이 더 컸고 열정적이었다. 나는 일을 한창 배울 나이에 출산해서 쉬어야 했기 때문에 쉬지 않고 계속 일한 사람들에 비해서 흐름을 몰랐다. 그들은 책임감 있게 프로젝트를 끌고 나갈 수 있었지만, 육아로 일찍 퇴근해야 하는 나에게는 책임감은 주지 않았다. 회사는 나에게 배려와 동시에 포기도 했다. 실무의 빈틈을 채우고 싶은데 아이 키우느라 회사를 다니며 경력을 채우는 것도 다행인 게 현실이었다.
하루에 2시간을 출퇴근을 하면서 대중교통에서 시간을 버렸다. 그 시간이라도 아껴서 회사든 육아든 뭔가를 더 하고 싶었다. 내가 회사 근처에 살던가, 회사가 집 근처에 있으면 하루에 2시간, 일주일이면 10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딘가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 회사에서 밑에서는 올라오고 내 역할에 대해 애매해질수록 현재의 삶에 불만이 쌓였다. 얼마 후 집 근처에 있는 소규모 건축설계사무실로 이직했다. 출퇴근 스트레스는 줄었지만 낯선 환경에서 낯선 사람들과 처음 해보는 업무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생겼다. 큰 회사에 다닐 때는 맡은 업무만 하면 되었는데, 작은 회사는 회사 운영에 필요한 일도 해야 하니 심적 여유가 없었다. 회사에서는 죽이 되든 밥이 되는 일을 잘하고 싶어 했지만, 집에 오면 심신이 지쳐서 밥하는 것조차 힘들어 자주 시켜먹었다.
한창 이직 생활에 적응 중일 때 어린이집 학부모 상단기간이 되었다. 직접 찾아갈 여유도 없어서 전화로 대신했다.
지난 학기 때 큰 문제가 없었으니 이번에도 별 걱정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아이의 산만함, 불안감을 말씀하셨다. 아이를 처음 봤을 때 자기표현을 너무 안 해서 걱정스러웠는데, 요새는 전보다 해서 다행인데 표현방식이 우는 것이라서 말씀드린다고 했다.
자기 속마음을 말했을 때 남들이 받아주지 않으면 바로 울었다. 혼자 만들기를 하면서 놀 때는 남들보다 집중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교감하면서 하는 수업에는 산만해서 눈에 띈다고 했다. 가정에서 놀이를 해보지 않아서 친구들과 함께하는 놀이에 섞이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학기말이 되니 담임선생님의 눈에 걱정되는 원아 쪽에 가까워졌다. 사실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셔서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이지만 사실 나도 아이가 잘 못 어울리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어린이집 친구 엄마들과 아이들을 놀이터에서 놀리면 노는 모습에서 느껴졌다. 아이들은 놀면서 계속 다음 놀이로 이어지는데 우리 아이는 놀다가 그대로 멈춰진 것 같았다.
누군가 내 삶 깊숙이 들어와 말을 걸었다. 아들 친구 엄마인데 나보다 2살 많은 동네언니였다. 언니는 타지에서 독박 육아를 하며 일하고 공부하는 나의 가정을 2년 동안 지켜봤다. 오지랖이라며 내게 말을 건넸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엄마가 되면 본인을 내려놓고 아이에 맞추고 사는데, 엄마가 되어서 너처럼 자신을 위해 사는 여자는 주변에 없다고. 너처럼 자기 것을 하고 싶어 하는 부류는 다하고 낳던가 안 낳는다고.
애만 안쓰럽다고. 본인만 잘되고 가족이 돌보지 않는 삶은 잘 사는 삶이 아니라고. 아이를 잘 키우고 신랑을 잘 챙기는 삶도 의미가 있다고. 가족들을 챙겼으면 좋겠다고. 나로 사는 것만큼 가족이 잘 되는 것도 의미 있는 삶이라고. 아이에겐 엄마의 사랑이 제일일 것이라, 더 크기 전에 많이 안아주자고. 더 크면 못 안아주니까.
서른을 넘긴 우리에게 1년 1년은 큰 차이가 없지만 아이들의 1년 1년은 너무 다르다고. 저 아이들은 스펀지라고. 지금이야 내 인생이 먼저일 수 있겠지만 훗날에는 아이가 잘 성장한 것도 꽤 큰 행복일 거라고. 아이들을 찬란하게 해 주자고."
처음 봤던 서른다섯 언니는 본인과 엄마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서른여섯의 끝자락에 있던 언니는 엄마가 된 것 같았다. 인생을 조금이라도 먼저 산 언니의 말이 고마웠다.
학부모 상담 이후에 아이 걱정이 계속되어 틈틈이 선생님께 우리 아이에 대해 자꾸 말을 걸게 되었다. 엄마가 일 스트레스가 많아서 마음이 불안정하니까 그 불안함이 다 애들한테 가는 것 같아서 일을 관둘 시점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나도 그 고민을 해봤고, 관둬봤지만, 관둔다고 해서 애를 잘 보는 것은 아니기에, 일을 줄이는 방법을 추천한다고. 일을 하면서 아이에게 잘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고. 나도 관두고 후회해봤기 때문에 해줄 수 있는 말이라고. 절대 관두지 말시라고."
언니에게도 말했다.
언니는,
"관두길 뭘 관둬. 지금 힘든 것만 잘 넘기고 아이들에게 신경을 쓰면 된다고. 무엇을 하든 아이들에게 신경만 쓰면 된다고."
생각이 온통 일에 파묻혀 있던 내게 말을 건 사람들은
아들을 지켜보던 사람들이었다.
아들의 사람들로부터 나는 엄마로 살라는 불음을 받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