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거리 1km의 삶

08. 동네 놀이터 투어

by 봄에

쉬는 날에는 동네 구경하다가,

카페에서 쉬며 힐링했는데,

엄마가 되니 커피를 챙겨서

동네 놀이터 투어를 다닌다.




혼자 살 때는 약속 없는 주말이 되면 동네 산책을 나섰다. 도시생활의 첫 시작이 강남이어서 집 밖을 나서면 카페, 레스토랑, 공원, 영화관, 백화점 등이 너무 많았다. 아침에 일찍 나와서 근처 공원을 한 바퀴 돌고, 걷다가 힘들면 카페에 들르고, 또 걸어서 교보문고에 갔다. 늘 가던 곳이 지루하면 다른 루트로 전시회를 가던가 쇼핑을 했다. 심심하다가 지하철을 타고 다른 구로 이동해서 내 삶의 반경을 계속 넓혀 나갔다. 밖을 나서면 계속 걷게 되었다. 대중교통에서도, 서점에서도, 쇼핑에서도, 공원에서도 온통 걷는 일이었다. 걷고 싶어서 계속 나돌아 다녔다. 그렇게 하루를 걷다 보면 발바닥이 아파서 집에 돌아갈 시간임을 알았다.


나는 재충전의 시간을 집 밖에서 보내던 사람이었다. 혼자 살아서 다음 주를 위해 준비해야 할 일이 딱히 없었다. 밥도 1인분, 빨래도 1인분, 원룸이라 청소할 양이 많지도 않았다. 회사에서 맘대로 할 수 없으니 밖에서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는 게 진짜 힐링이었다.


강남은 워낙 핫한 곳이라 모든 게 많고 활력이 넘치는 도시였다. 처음엔 재밌었지만 도시의 열기가 가득한 만큼 나는 금세 공허해졌다. 향수병에 걸린 사람처럼 엄마가 해준 음식이 너무 그리웠다. 그토록 원했던 자유생활이었는데 외로운 게 힘들어서 도시생활을 멈추고 싶었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부모님께 말했지만 부모님께서는 고향을 돌아오면 다시는 나가기 힘드니 웬만하면 버티길 원하셨다.


부모님이 그리운데 부모님의 품 안에 다시는 돌아갈 수 없었다. 타지에서 엄마의 사랑을 받을 수는 없지만 내가 엄마가 된다면 아이에게 엄마에게 받은 사랑을 전달해주면서 사랑을 느끼고 싶었다. 늘 현실에 안주하지 못해서 붕 떠있는 나를 엄마라는 이름으로 정착시키고 싶었다.


모성애는 남녀의 사랑처럼 밀당을 하지 않아도 되고, 시들지도 않는 사랑이었다. 영원한 사랑을 하고 싶었다.





엄마가 되니 주말 산책은 험난한 여정이었다. 백일이 지나고 차츰 외출을 시작했다. 유모차에 아이를 눕혀 밖을 나갔지만 우유는 틈틈이 먹여야 하고 기저귀도 갈아야 하고 잠은 깼는지 계속 신경을 썼다. 밖에 나와서 좋지만 전처럼 오래 걷지는 못해서 아쉬웠다.


유모차를 끌고 밖에 나가면 평소에 별거 아닌 것들이 다 장애가 되었다. 카페를 들어가려고 하는데 문턱이 10cm만 넘어도 입장하는 게 힘들어졌다. 돌아오는 길에도 아이가 울면서 안아달라고 떼를 쓰면 우는 아이를 한 손으로 안고 유모차를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가서 잠깐 바람을 쐬는 것이 좋았지만 정말 고생스러웠다. 엄마가 되는 게 외롭고 힘든 것을 급격히 체감하는 날이었다.


아이를 데리고 외출하는 것을 꺼려하게 되었다. 아이와 함께 나가는 순간 고생이고 걸으면 걸을수록 피곤해질 것이라는 것을 체내 습득해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곳까지만 움직인다. 집에서 1km를 벗어나지 않는다.




놀이터는 아이들도 좋아하고 엄마인 나도 좋아하는 공간이다. 나는 놀이터보다 놀이터를 다녀오는 산책 여정을 좋아하고, 아이들은 놀이터에 있는 모래, 놀이기구, 곤충 등을 좋아한다. 아이들이 그날 하고 싶은 것에 맞춰 놀이터를 고르고 루트를 짜서 아이들 먹을 것을 챙기고, 내가 마실 커피를 챙겨서 집을 나선다. 가는 길에 꼭 편의점을 들려서 젤리나 초콜릿을 사서 함께 사 먹는다.


놀이터에 가는 코스는 일부러 멀게 가고, 올 때는 최대한 가깝게 온다. 그럼 아이들은 이미 놀이터에서 지쳐서 집에 오면 낮잠을 자던가 기력이 없어서 얌전히 논다. 그리고 그때부터 또 집안일을 시작한다. 잠깐 쉬다가 저녁식사 준비를 하고 다음 주에 먹을 것도 생각한다.



엄마가 되어 동네에 고립된 줄 알았는데,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1km 안에서 에너지가 고갈되었다.

출근하면 몸은 쉴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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