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밖 수도권

09. 서울을 벗어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네

by 봄에

서울을 벗어나니 몸은 편한데,

꿈 많던 젊은 나는 낙향한 기분이다.

대입도 서울! 취업도 서울! 집도 서울!

한국의 인서울 경주에서 밀려났다.





수도권으로 이직한 후 드디어 아이들과 아침과 저녁을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서울로 출퇴근하며 버렸던 2시간을 아껴서 얻은 시간이었다. 집 근처에서 일하니 언제든 애들에게 닿을 수 있고 경력도 이을 수 있어서 일하는 엄마의 삶은 이보다 좋을 수 있을까 싶다. 하지만 서울을 벗어나서 꿈 많던 나는 낙향한 기분이 드는 것 어쩔 수 없다.


서울에서 이십 대 절반은 살아서, 삼십 대 절반은 일해서. 첫 사회생활을 한 도시라서 애착이 있었는데, 건축설계 일도 더 이상 서울에 있는 땅을 설계하지 않으니 서울을 접할 일은 없어졌다. 서울은 약속 있을 때 가는 곳이 되었다.




서른다섯까지는 배운다는 자세로 공부를 멈추고 싶지 않아서 서른한 살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대학원 과정은 학교 일정에 맞추니 졸업할 수 있었지만, 건축사 시험공부는 남들 따라 시작한 것이고 혼자 하는 공부라 마무리짓지 못했다. 건축사 자격증을 취득해야 서른에 막연히 생각했던 공부를 마치는 것이다.


건축사 시험 오수생 되었다. 독학은 안 되겠다 싶어서 다니면 합격률이 높아지는 학원을 알아봤다. 건축사 학원은 전문직 학원이라서 학원은 강남에 몰려 있고, 지방마다 분원이 있는 구조이고 수업은 주말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약 8개월을 해야 하기 때문에 주말에 애들과 함께 보내며 엄마로 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늘 포기했었다. 애들을 챙기며 강남에 있는 학원을 다닌다는 건 견적이 나오지 않았다. 지방분원이 집 근처에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학원을 걸어 다닐 수 있다는 것이 나한테는 엄청난 이점이라 나에게 공부하라고 기회를 준 것 같았다. 늘 학원을 오고 가는 날마다 너무 가까운 곳에 학원이 있어 매일 감사하는 마음으로 수업을 들었다.


서울을 벗어나면 내 꿈과 멀어지는 줄 알았는데, 내 꿈을 놓지 않으니 집 근처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을 수 있었다. 찾다 보니 내 공부도, 내 취미도 발견했다. 내 것을 계속해서 내 것에 집중하니 정체되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또 글쓰기 모임에 가면 여러 사람들도 보니 소통할 창구도 있어서 뒤쳐지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매일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서울 밖으로 나간다고 해서,

경력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다시 못 돌아가는 것도 아닌데,

알던 사람들이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서울을 벗어나면

큰일이 나는 줄 알고 살았는지 싶다.

어차피 고향도 서울이 아니었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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