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연고지를 묻는다면
사회에서 어른들을 만나면 늘 연고지를 물었다.
서울로 취업한 게 전부인 나는
일이 연고지였고
일이 잘 안 풀리면 내 삶이 흔들렸다.
서른살에 첫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종료할 즈음에 7개월 된 아기를 시골에 계신 친정부모님께 맡겼다. 주중에는 회사랑 학교를 다녔고, 금요일 밤마다 운전대를 잡고 친정이 있는 시골집에 갔다 토요일 오후에 돌아왔다. 그 생활이 6개월에 접어들 때쯤 아이는 엄마랑 떨어지기 싫어서 헤어질 때 울기 시작해서 부모님을 몹시 힘들게 했다. 가족들에게 몹쓸 짓인 거 같아서 이 생활을 청산하기로 했다.
제일 먼저 어린이집을 알아봤다. 단지 내 어린이집을 가봤는데 이미 정원초과였고 대기자도 많았다. 대기를 기다릴 만큼 여유도 없었고 보낸다 한들 어린이집 하원 시간에 맞춰 아이들을 데리러 갈 여력이 안되었다. 다른 어린이집을 알아봤지만 집에서 멀어지면서 보도 등원은 힘들어졌다. 차로 등 하원은 가능하겠지만 자차로 서울을 출근하는 것은 엄두가 나질 않았다.
결국 직장 근처로 집을 옮기는 편을 택했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돈으로 서울에서 집 구하는 건 거의 불가능이었다. 회사 근처에서 시작했는데 점점 회사랑 멀어졌다. 목표는 직주근접인데 회사랑 멀어지니 직장 근처의 이점도 미궁 속으로 빠졌다.
경력도 어정쩡한 상태에서 엄마가 되고, 연고도 서울이 아니라서, 어딜 가든 다 모르는 사람들뿐이라 도시생활에 정착이 잘 되지 않았다.
얼마 후 마음을 다시 잡고 집을 다시 알아봤다. 이번에는 서울에 있는 빌라 분양 매물을 보는데 마음에 드는 것은 없었다. 중개인은 서울을 벗어나면 주차장도 넉넉하고 평수도 넓어지고 테라스가 있는 매물도 있으며 공원 바로 앞에도 살 수 있다고 했다. 오늘 나온 매물이 있는데 그것은 보여주고 싶어 해서 추가로 수도권에 있는 매물을 하나 더 보게 되었다. 1개 더 보게 되었다. 집 앞에 도착했다. 초저녁인데 아이들이 집 앞 공원에서 노는 소리가 들렸다. 서울에서 듣지 못하던 소리에 반가웠다. 집안을 둘러보니 서울에서 보던 집들 보다는 거실도, 주방도, 방도 넉넉했다. 이 집을 오게 된 이유는 왕테라스 때문인데 방을 지나니 말 그대로 왕테라스가 있었다. 테라스에 나가서 초가을 저녁 바람을 맞는데 집안에서 밖을 나와서 바람을 쐘 수 있음에 좋았다. 테라스에서 보이는 풍경은 집 바로 앞에 어린이집이 보였고, 어린이집 건너편에는 오래된 나무처럼 보이는 연식 있는 공원도 있었다. 높은 건물도 없어서 하늘은 꽤 넓었다.
집의 기운이 내가 자랐던 시골집이 떠오르는 곳이어서 이 집을 놓치면 후회할 것 같아 계약을 서둘렀다. 시골집은 현관을 나서면 동향이고 울창한 나무들이 있어서 나는 늘 아침에 집 밖을 서성이곤 했는데, 여기서도 집 밖에서 서성이며 공원을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나무가 많은 곳에서 자라서인지 나무가 많은 곳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 집에 살면 주변에 나무가 많으니 내 마음은 편할 것 같았고 아이에게도 좋을 것 같았다. 아이가 다닐 어린이집도 집이랑 무척 가깝고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바깥놀이를 할 공원이 바로 앞에 붙어 있으니 공원으로 이동할 때 안전할 것 같았다. 아이를 데려와도 될 것 같았다. 이제야 마음이 놓인다.
이사를 하고 아이를 데려왔다. 설날에 맡겼던 아이는 추석을 갓 지나서 내 품으로 다시 돌아왔다. 전보다 출퇴근도 줄어들었고 등 하원도 편해졌다. 아이를 보면서 일을 하고 학교를 다니는 게 몹시 고단하지만 마음은 편해졌다.
시골을 가지 않아도 동네에서 시골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집 밖을 나가면 바로 닿을 수 있는 공원 때문에 나는 숲과 가까이 산다는 느낌도 들었다.
서울에 상경해서 건물들 때문에 하늘이 좁아진 밤하늘이 정말 답답했다. 늘 펼쳐진 하늘을 볼 수 없는 것이 도시생활을 더 춥고 외롭게 만들었던 것 같다. 집에 돌아가는 밤하늘에서 달을 찾지만 달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이 집에서는 밤에 테라스를 나가면 늘 달을 만날 수 있어서 덜 외로웠다. 결국 나는 밤하늘을 따라 이곳에 오게 된 것 같았다.
내 이웃을 알 수 없는 아파트 단지의 삶보다 빌라의 삶이 동네 사람들과 안부를 묻고 먹을 것을 나눠 먹는 삶에서 고향에서 느끼던 정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아파트 승강기에 의존해서 살던 단지 사람, 몇 동 몇 호 사람으로 불리지 않아서 좋았다. 승강기 앞에서 모르는 사람과 뻘쭘하게 기다리는 일도 없어졌다.
집에서 나와서 공원으로 나가는 시간이 짧고
고층건물의 그림자가 없는 것이 행복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