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비보기 멈추며

12. 티비로 시간을 보내는 것도 괜찮아

by 봄에

티비 속 세상은

무료한 시골생활의 낙이었다.

티비를 보면서 도시로 나가고 싶었다.






열아홉까지 너무 많은 시간을 티비를 보면서 허비해서 스무살 넘어서까지 티비로 시간을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대신에 책을 읽었다. 책은 지루한 것이라고 졸려운 것이라고 생각했던 지난날의 생각은 내 편견이었다.


처음엔 전공서부터 읽었다. 책을 읽어보니 계속 연관된 것들이 나오고, 그것을 파다보면 다른 분야로 넘어가 있게 되는 일이 많았다. 늘 궁금한 게 많았고 답을 찾고 싶어 했다. 성공 책도 많이 읽었다. 그들과 날 비교했다. 난 학생인데 인사와 비교하니, 난 젊은데 업적 많은 늙은이와 비교하니 나 자신은 한없이 작아졌다.


딱딱한 글들만 읽어서 감정은 메말라갔다.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는 열정만 가득 찬 사람이 되었다. 늘 일과 관련된 것들만 읽어서 일만 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성적인 선택 앞에서 내 감정은 늘 홀대받았다. 늘 일에게 치였다. 마음이 지친 날에도 일을 놓지 못했다. 책을 통해서 세상이 점점 넓어지고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서는 점점 단련되는 것 같았지만, 소중한 사람들을 놓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이십 대 대부분을 꿈을 쫓으며 쫓기며 조급증을 달고 살았다.


"생각 있어 사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생각이 너무 많아 괴로우면 흐르는 대로 사는 것도 괜찮다고. 퇴근하고 무엇인가를 찾아보기보다는 티비를 보라고. 티비보면 시간 잘 간다고. 티비본다고 생각이 달아나는 것 아니니 잠깐은 봐도 괜찮다고." 처방을 받았다. 하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도시생활에서 티비까지 챙기면 안주하게 될까 봐 티비는 금기사항이었다.


풀옵션 원룸에 살게 되니 티비가 옵션이어서 티비를 보게 되었다. 티비보면 시간이 잘 가는데 나는 고독을 씹으면서 오는 잠도 쫓으면서 왜 스스로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있었던 것일까?





결혼 후에 집다운 집에서 티비를 보기 시작했다.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이 처한 상황에 공감하고 있었고, 가봤던 장소가 있으면 그곳이 어디인지 맞추고, BGM은 누가 불렀는지 맞추고 있다. 뉴스에 나오는 시장물가에도 예민하게 받아들이며 식탁 물가를 걱정하고, 금리변동에 따른 대출금 걱정도 하는 어른이 되었다.


티비를 보면서 밖으로 나가고 싶은 꿈을 꿨는데, 이제는 티비가 현실이다. 너무 현실이기에 막장드라마에도 공감하며, 말도 안 되는 퓨전사극에도 서글퍼한다.


엄마가 된 후에는 바깥 약속은 없지만 집에서 지켜야 할 약속이 생겼다. 나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이들을 먼저 씻기고 할 일을 서두른다. 보고 싶은 드라마를 본방 사수할 때 너무 행복하다. 드라마가 끝나는 게 너무 아쉽다. 다 보고 나서 여운이 남으면 실검을 하면 드라마가 끝나도 계속 소통하는 기분이 들었다. 챙겨보는 드라마가 있어서 매주 기다릴 것이 있다는 게 좋다.


이제를 티비를 보면서 시간을 적당히 죽이며 쉰다.

역시 티비는 이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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