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로 소통하기

11. 나이가 들어도 놓지 못하는 것

by 봄에

초등학교 방학숙제인 일기가

유독 기억나는 이유는

오늘 하루 경험하고 느낀 바를

밖으로 꺼내기 어려워서.

할 말 없을 때 날씨 이야기를 하듯,

맨날 날씨만 썼던 게 아닌가 싶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학교는 더 이상 일기를 요구하지 않았다. 중학교 때는 친구들과 한창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소통했다. 친구들과 교환하듯 썼던 편지는 선생님께 검사받는 것이 아니라서 시시콜콜한 일상을 그대로 써었다. 편지에는 날씨도, 경험도, 사춘기의 소망도 담겨있어 일기이지만 편지처럼 썼다. 고등학교 때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늘 붙어 있어서 편지보다는 수다를 많이 떨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교실에서 함께 보냈다. 학기가 끝나면 방학이 돼서도 계속 만나니 계속해서 수다를 떨었다. 수다가 곧 일기였던 것이다.


시골 출신이 대학을 가려면 대부분 유학생활을 하게 되었다. 나는 지방 유학생이 되었다. 내 방이 생겼고 내 컴퓨터도 생겼다. 나 혼자만의 집이 생겨서 좋았지만 뭔가에 열중하지 않으면 금세 고요해졌다.

부모님과 떨어져서 독립했다고 생각했는데 경제적인 독립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마음은 늘 불편했다. 학비, 방세, 용돈을 타서 썼다. 그래서인지 집에서는 놀면 안 될 것 같아서 뭔가를 하려고 애썼다. 생각을 멈추면 집은 너무 썰렁해졌다. 적막함이 싫어서 늘 집중하려고 애썼다.


대학생활은 공강이 너무 많았다. 친구들 따라서 게임방, 당구장, 카페도 가봤지만 재미가 없었다. 과제 때문에 도서관 서고를 가봤는데 마음이 편했다. 그 후로 갈 곳이 없거나 시간이 남아돌면 서고에서 책을 읽었다. 빌려서 집에 가져가서 읽으니 집에 있는 시간도 버틸만했다.


공부가 싫어 낙서하던 내가 주입식 교육을 벗어나자마자 챙긴 것은 책이었다. 무엇인가를 받아 적으면서, 누군가가 쓴 글을 읽으면서, 학문을 고민하는 진짜 대학생이 된 것 같았다. 관심이 전공이 되니 내 고민은 전공과목에 있어 모범적인 학생이 되었다.

하지만 엄마는 종종 말했다.

"누구 집 딸은 자격증을 따야 한다고 자격증 공부를 하는데, 넌 왜 필요한 공부를 하나도 안 하니?"


대학생 때 싸이월드가 붐이었다. 나도 내 음악 취향, 사진, 고민을 기록했다. 처음에는 친구들과 소통하기 위해 썼지만 점점 나 혼자 보는 자문자답이 되었다. 내 삶에 대한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일기를 쓰면서 외로운 도시생활을 버텼다. 어제의 일기가 현재의 나에겐 말벗이었다. 타인이 쓴 책들을 보면서 빈 시간을 채웠다. 책을 읽으면 소통하는 느낌이 들어서 외롭지가 않았다. 시간이 지나도 설레는 책이 있는가 하면, 너무 지루한 책도 있었다. 책마다 느낌이라는 게 있었다.


친구 누구는 여전히 운동을 놓지 못했다.

친구 누구는 영어공부는 잡고 있었다.

친구 누구는 불안해서 스펙을 쌓는다.

친구 누구는 돈이 최고라며 돈을 불린다.

친구 누구는 그림이 힐링이라면 틈만 나면 그린다.


내 인생에서 꾸준히 한 것을 찾으라면 책을 읽고 꾸준히 일기를 쓴 것이다. 나도 뭔가를 잡고 있기는 했구나.


내가 잡고 있던 것이 책이었다면

이제는 대놓고 한다.

글을 쓰는 목적은 잘 살고 싶어서,

틀리면 바로 잡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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