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한 서른

14. 제일 가난했지만, 뭐든 펼칠 수 있던 나이

by 봄에

같은 날 졸업하지만, 다른 날 취업하고,

결혼하고 부모가 된다.

학교 다닐 때만 겹쳤던 것이다.





대입, 취업, 결혼, 출산은 순차적인 것으로 나이가 들면 저절로 되는 일이라 생각했다. 단계를 거칠 때마다 삶은 급격하게 변했다. 돌아보면 힘들었던 시기가 다 큰일의 앞과 뒤였다. 변화가 크고 걱정도 많아져서 각 레이스마다 이탈자가 생겨나는 것은 아닐까?


십 대 때 결혼을 언제 할 것인가 물었을 때 스물여덞이라고 대답했다. 막상 스물여덟 살 내 모습은 사회에서 자리도 못 잡았고 스스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몰랐다. 생각했던 연 식이 서른다섯에는 맞지 않나 싶다.


서른다섯쯤에 결혼하고 아이는 다음에 낳아야 하는 것일까? 정신이 성숙하는 것을 기다리다가 신체가 노화되면 어떡하지? 내가 성숙하길 기다리다가 성숙하지 못하면 결혼하지 못하는 것인가? 성숙하게 되었는데 나이가 먹으면 노산인가.


내가 불확실한 존재니까 확실한 존재인 아이부터 낳고 아이와 함께 내 삶도 성장하면 인생이 덜 외로울 것 같았다.





취업한 후, 남은 이십 대를 어떻게 보낼까란 질문에 결혼하고 싶은 남자를 만나는 게 이십 대 인생 목표였다. 적성에 맞는 것을 전공을 삼았고, 당장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와 어떻게 살지가 제일 궁금했다.


나는 어떤 남자와 결혼하게 될까?


다카하시 아유무의 <<adventure life >>에서는 직업을 바꿀 순 있지만, 배우자는 바꿀 수 없다는 것에 공감했다.

조지베일런트의 <<하버드대학교,인생성장보고서 행복의 조건>>에서는 행복에는 여러 조건이 있지만 배우자를 만나서 함께 소통하면서 삶을 꾸려나가는 것에 공감했다.

정말인지 이십 대 때 결혼이 인생 목표라 책을 읽어도 배우자에 대한 내용이 제일 중요했다. 나한테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칼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으면서도 번식에 대한 내용에서 로맨스를 느꼈다. 무엇을 보든 결국 기승전 배우자였다.


그림을 그리면 아이들을 그렸다. 주말에 어린 사촌동생들을 보면서 정서적 안정감을 얻었다. 무의식에 아이들을 떠올렸고 그림을 그리면 아이들을 그렸다. 내 옆에 남편도 그렸다. 내 것을 하고 싶어 하는 욕구만큼, 엄마가 되고 싶던 마음이 컸던 지난날이었다.




스물여덞. 나는 앞으로 어떤 직업관을 갖고 살 것인가에 대해서 스스로 답을 내릴 수는 없었지만, 질문을 던질 수는 있었다. 질문을 던질 수 있기에 나의 도시생활에서 잡고 있을 게 생겼다. 내 생각과 회사일의 괴리가 점점 좁혀지는 것 같았다.


남자 친구는 바빠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혼자 놀기 좋아하는 내게 최적화된 남자 친구였다. 주말에도 혼자 놀다가 남자 친구가 퇴근하면 저녁 데이트를 했다. 남자 친구는 책에서 봤던 배우자 감이었다. 오래 보고 싶은 사람이었고, 이 사람이랑 결혼하면 나를 잃지 않고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서로의 짚신으로 여겼고 이제라도 만난 것에 감사했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의지와 상관없이 시간이 흘렀다. 내가 언제 엄마가 되었지? 가정을 꾸리는 일도 일하듯 후다닥 끝냈다. 해야 할 일들을 빠르게 헤쳐나갔더니 살았다기보다는 할 일을 빨리 끝낸 기분이었다.


내 인생에서 남은 건 처음 해본 결혼, 처음 해본 출산, 처음 해본 취업 같은 것은 아니었다. 이전 경험을 반복하는 일뿐이었다.


이렇게 삶을 달린 이유는 내 최초의 남자와 여자 때문이다. 부모님은 젊으신 편이었다. 은연중에 나도 젊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렇지만 내 삶을 포기하긴 싫어서, 공부를 놓지 못했다. 공부하고 싶기보다는 생각나서, 생각난 것을 놓을 수가 없어서, 공부가 팔자인 삶을 살면 정신이 편할 것 같았다. 대신에 이제는 쫓기듯 살고 싶지 않다.


결혼, 출산, 학위, 자격 공부. 모든 것이 경제적인 것을 고려하지 않고 저지른 것들이었다. 쉬다가도 돈이 떨어져서 일해야 했다. 열정과 생계 사이에 포텐 터진 것이다. 수업은 2년 전에 끝났지만 아직도 학자금을 갚고 있다.


나의 서른 살은 제일 가난한 시기였지만,

내 삶을 무모하게 펼칠 수 있던 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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