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버림받았다
어떻게 내가 잘릴 수가 있지? 14년을 독하다는 소리 들으며 버텼는데, ‘마녀’라는 그 별명을 훈장처럼 생각하며 일해왔는데 어떻게 내가 잘릴 수가 있지? 지난 시간 동안 커리어 관리를 위해 나 스스로 사직서를 내고 보다 좋은 대우해주는 곳으로 이직을 해왔던 내가, 헤드헌터들에게서 심심치 않게 이직의사를 타진 받아온 내가 잘리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바닥에서 나만큼 이 일을 잘 해낼 사람은 없다고 자부해왔는데, 나에게도 ‘퇴사권유’의 순간이 오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회사 경영이 어렵다는 이유로 그 첫 번째 희생자가 내가 되었다. 당장 다음달 카드 값 걱정도 걱정이지만 볼품없이 내팽겨진 나의 자존심이 더 심각했다.
이렇게 우리는 청천벽력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순간들을 아무 대비 없이 맞이하곤 한다. 이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분노, 억울함, 비참함, 창피함 그리고 상실감이다. 그 동안 내가 철썩 같이 믿었던 나 자신의 능력과 커리어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한 순간 전락해버리고 만다. 모두에게 버림받은 것 같고, 그 동안 나의 관계들이 다 거짓처럼 느껴진다.
사실 이렇게 억울하게 느끼는 데에는 그 만한 이유가 있다. 첫째 아이를 낳고 45일만에 회사에 나와 근무를 하면서, 친정엄마에게 맡겨두고 1년을 주말엄마 노릇을 한 이유도 있다. 둘째 아이를 낳고서는 100일만에 어린이 집에 맡겨두고 독하게 일을 한 이유도 있다. 어디 그뿐인가? 야근을 하고선 파김치가 되어 집에 도착해서 아이를 등에 엎고, 밀린 설거지며 빨래를 하면서 온통 어질러진 집을 보고 한숨을 내쉰 이유도 있다. 그렇게 독하게 일하면서도 하나의 자부심이 있었다. “이 분야의 전문가는 바로 나”라는 나만의 자긍심이었다. 그 자부심이 힘든 일상에서도 나를 지탱해주었고, 아이들을 여러 사람의 손에 맡기더라도 타당한 이유가 되어 주었다.
그런데 그 타당한 이유가 한 순간 사라져버렸다. 나는 버림받았다. 회사로부터, 사람들로부터 그리고 나 자신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상처는 우리의 방어체제를 강화시킨다. 그리고 멋진 복수를 상상하면서 회심의 미소를 짓게 만든다. 나 또한 다르지 않았다. 잘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그 순간부터 나의 빈자리가 커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아 나를 잘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공백을 그 어떤 것으로 채울 수 없어 다시 나에게 SOS 신호를 보내주길 바랐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나는 단호히 “NO”라고 거절을 하는 통쾌한 상상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조직이 그렇듯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으면 그만이고, 호랑이가 없으면 토끼가 왕 노릇하기 마련이다.
나의 공백은 큰 의미가 없어 보였다. 그리고 얼마 뒤 한번 더 나의 가슴에 상처를 주는 일이 내 귀에 들어왔다. 사정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퇴사를 권유했던 회사는 나의 자리에 다른 직원을 선발하였다는 것이다. 도저히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 동안 지켜왔던 나의 알량한 자존심마저 맥없이 주저앉아 버렸다. 결국 나는 회사에서 쫓겨 난 것이다. 더 이상 필요 없어져서 버려진 것이다. 나는 보기 좋게 차인 것이다.
워킹맘, 나는 죄인입니다.
워킹맘으로 사는 것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어린이 집 끝나는 시간에 맞춰 달려가기, 집안 행사일 잊지 않고 챙기기, 야근을 피하기 위한 근무시간 내 업무 끝내기……
이 말은 워킹맘은 동시에 여러 가지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말과도 같다. 아이들은 아이들의 역할만 하면 된다. 남편은 가장의 역할만 하면 된다.
반면 워킹맘은 비중 높은 역할들로 빼곡하다. 우선 아내의 역할이 있다. 아내의 역할은 상당히 포괄적이다. 식사준비, 집안청소, 설거지, 빨래 그리고 남편 뒤치닥 거리까지 포함한다.
며느리로서의 역할은 어떤가? 시월드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시집과의 관계는 살얼음판이다. 그 관계는 며느리로서 얼마나 살뜰히 챙기느냐에 따라 질이 결정된다. 물론 남편이 조금은 도울 수 있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해줄 수 없다. 집안 행사는 물론 말 한마디, 단어 하나도 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다.
딸로서의 역할은 어떠한가? 아이를 봐달라고 그나마 비빌 언덕이 친정밖에 더 있나? 아이를 돌보시느라 허리 한번 제대로 못 피시는 것을 보면 감사한 마음보다는 죄송한 마음이 더욱 앞선다. 친정 부모님의 뒷모습만 봐도 눈물이 핑 돈다. 남편이 알아서 용돈이라도 챙겨드린다면 좀 좋을까 싶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엄마 역할’이다. 엄마의 역할은 친정엄마도, 남편도, 돌보미 어르신도 대신해 줄 수 없다. 오로지 엄마만 가능하다. 아이들은 엄마와 있으면 수만 가지를 물어본다. “엄마, 내 양말 어디 있어요?” “엄마, 배고파요.” “엄마 책 좀 읽어줘요.” “엄마~ 엄마~.” 반면 아이들이 아빠와 있으면 단 한가지만을 물어본다. “아빠, 엄마 어디 있어요?” 얼마 전에 sns에서 본 재미있는 에피소드이다. 이 에피소드만 보더라도 엄마는 그 자체만으로 아이들에게 전부임을 알 수 있다.
하루는 퇴근시간도 넘기고 일을 하고 있는데 동네 아는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머, 웬일이세요?” 그러자 전화기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유하엄마, 지금 유하가 놀이터에서 혼자 놀고 있어요. 어른 어디 계시냐니까 모르겠다고 하면서 혼자 있어요. 그래서 일단 제가 데리고 있어요.”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5살짜리 아이가 6시가 넘어서 그것도 혼자 놀이터에서 놀고 있다는 게 말이 되나? 혼미해지는 정신을 다잡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럴……리가요, 돌봄이 어르신 옆에 안 계셔요? 분명 유치원 차에서 그 어르신이 받으셨을 텐데” 그러자 “아뇨. 유하 옆에 아무도 없어요. 아무래도 위험해 보여서 제가 놀이터에서 보고 있을게요. 언제 오세요?” 가슴이 쿵쾅대고 손이 파르르 떨렸다. 곧 가겠다고, 다시 전화하겠다고, 고맙다고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돌봄이 어르신께 전화를 드렸다. 그랬더니 하시는 말씀이 집에 둘째 아이 젖병을 놓고 와서 유하가 놀고 있길래 빨리 가서 가져오려고 올라가셨단다. 근데 엘리베이터가 늦게 와서 좀 늦었다고, 지금 집에서 내려간다고 하셨다. 너무 기가 막히고 놀라서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택시를 타고 오면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혹시라도 잘못 됐다면? 내가 이깟 돈 몇 푼 번다고 아이를 그렇게 방치해서 되겠나?’ 하는 자책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동네 엄마들의 연락처를 교환 것이 다행이다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비단 이것뿐이겠는가? 아이 생일인데 생일상을 차려 보내지 못해서 선생님들이 인스턴트 과자만을 가득 쌓아놓고 임시로 사진을 찍어 보내주신 일부터, 발표준비를 못해서 아이 혼자 발표를 못한 일까지 셀 수도 없다. 그럴 때마다 꼼꼼히 챙기지 못한 나 자신을 책하는 것은 물론, 못난 엄마를 만나서 고생하는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끝도 없다. 다른 엄마들은 아이들 옷도 예쁘게 입히고, 때마다 철마다 잊지 않고 챙기는 걸 보면 더욱 비교되는 나 자신의 자괴감이 하늘을 찌른다. 소풍이라도 가면 어찌 그렇게 예쁘게도 도시락을 싸는지, 전날 분식집에 예약한 김밥 2줄 사와서 도시락 통에 바꿔 담는 게 전부인 나와 비교해보면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극에 달한다. 그리고 마지막은 항상 이런 의문으로 마친다. “이렇게 까지 일을 해야 하나?” 이 물음은 아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서 시작하지만 어쩌면 지친 나에게 숨구멍을 찾기 위한 변명일지도 모른다.
누구보다 매일매일을 치열하게 사는데 왜 항상 죄인 같은 마음을 떨쳐버릴 수가 없는 걸까?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로 결심한 것은 아이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보여주기 위해 결심했는데, 정작 아이들의 현재는 좋아지지 않는 것 같은 현실이 야속하기만 하다.
승진을 못하는 건 당연하죠
정작 중요한 고급정보는 삼겹살과 소주잔에 담긴다는 말이 있다. 관계와 지식정보 중심의 사회에서 앞서가기 위해서는 고급정보를 선취하는 것이 성공의 성패를 좌우하는 기준이다. 이런 고급정보는 사무실 파티션 사이로는 오가지 않는다. 업무 외 시간에 서로의 고충을 터놓고 얘기하면서 은밀히 오간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회식도 업무의 연장’이라는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워킹맘들에게는 공식적인 회식도 아닌 ‘간단히 일 끝나고 한잔’은 꿈과 같은 이야기다. 일단 ‘한잔’하기 위해서는 미리 챙겨야 할 것이 많다. 돌보미 어르신이 봐주시는 9시까지 끝날 수 있느냐에 따라 그 이후 시간을 친정 엄마에게 부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날 아이 준비물이 무엇인지 생각해서 마트가 문을 닫기 전 챙겨놔야 한다. 그리고 ‘여자가 무슨 술’이냐고 핀잔을 주는 남편과 친정엄마께 둘러댈 ‘타당한’ 사유를 만들어놔야 한다. 이렇게 그럴싸한 시나리오가 완성되면 만약을 위해 친정엄마께 전화를 해서 대기를 부탁해야 하고, 혹시나 일찍 퇴근할지도 모를 남편에게 문자를 보내야 한다. 그리고 준비물은 무엇인지 유치원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다음날 일정을 확인해야 한다.
이렇게 ‘간단히 한잔’을 위해 워킹맘은 간단하지 않은 절차를 챙겨야만 한다.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하고 참석한 회식 아닌 회식자리에서 시 덥지 않은 이야기만 오가고, 삼겹살과 소주잔만 오간다면 여간 답답한 일이 아니다. 황금 같은 시간이 흐르는데 그 가치에 합당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조바심에 ‘에이, 이럴 거면 집에 일찍 갈걸.’ 싶은 후회가 들기도 한다.
반대로 ‘술자리에 참석하는 것이 뭐 대단한 일이라고’ 싶어서 ‘간단히 한잔’하는 자리를 피했다고 생각해보자. 다음 날 아침 팀원들의 첫인사는 “어제 잘 들어갔어요?” 이다. 당연히 어젯밤 함께 하지 못한 워킹맘은 제외된 인사말이다. 왠지 모를 소외감이 마음을 차갑게 만든다. 어제 무슨 얘기했냐고 물어봐도 “그냥 별 얘기 없었어요.”란다. 이렇게 나만 제외된 소통이 불편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그들의 잦은 ‘끝나고 한잔’에 쉽게 동참할 여력도 없다. 이렇게 되니 은근히 소외되는 느낌을 자주 경험한다. 그래도 술자리는 공식적인 업무자리가 아니니 미안한 마음은 무시할 수 있다. 하지만 야근은 이야기가 또 다르다.
워킹맘들에게 업무 외 시간은 결코 자신이 온전히 컨트롤 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야근을 하지 않도록 업무시간 내에 그날의 모든 업무를 마무리하려 최선을 다한다. 비교적 퇴근 후보다 시간적 여유가 있는 출근시간을 앞당겨 전날 미처리된 업무를 마무리 짓고 그날 해야 할 업무 리스트를 정리하는 등 업무를 일찍 시작한다. 그리고 점심시간까지 시간을 쪼개어 일하는 워킹맘들도 많다.
그런데 요즘 현대사회에서 칼 퇴근이 그리 쉬운가? 6시 칼 퇴근하면 왠지 미안한 마음에 30분을 더 앉아 있는다. 그래도 시계로 자꾸 시선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런데 다른 동료들은 일어날 기미가 없다. 심지어 야근을 본격적으로 해보자며 저녁을 먹자고 분위기를 종용한다. 그 틈을 타 미안한 표정으로 양해를 구한다. “죄송하지만 먼저 가볼게요”라며 뒤돌아 서는데 뒤통수가 왠지 뜨겁게 느껴진다.
‘칼 퇴근도 아니고 30분이나 더 있었고, 오늘 업무는 다 마쳤는데 미안할게 뭐 있어?’라고 애써 말해보지만 열심히 하지 않는 얌체가 된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은 쉽게 떨쳐 버릴 수가 없다. ‘내 일만 잘하면 되지’라고 아무리 나를 위로해봐도 뭔가 부족하다. 하루 종일 누구보다 최선을 다했지만, 느껴지는 감정은 항상 뭔가 부족하다.
나의 경우 첫째 아이를 출산 후 정확히 45일만에 업무에 복귀했다.
출산휴가 석 달은 출산 한 산모로서는 굉장히 짧은 시간이지만, 업무상으로는 석 달만큼 밀린 업무를 의미한다. 혹은 동료들과의 석 달만큼의 격차를 의미하기도 한다. 모유 수유도 끝내지 못하고 업무를 시작한 바람에 두 시간에 한번씩 화장실로 가서 유축을 해야만 했다. 갓난 쟁이는 친정엄마께서 봐주시지만 보고 싶은 마음에 퇴근 후 친정 집으로 직행했다. 그리고 다시 집에 가서 옷 갈아 입고 출근하기를 1년. 마치 2중생활을 하는 듯 집, 친정 집과 회사를 오가며 보냈다.
그리고 2년 뒤 필자는 다시 둘째 아이를 출산 하였다. 임신과 출산의 기간이 약 3년정도 되었다. 승진 대상자였던 내가 승진을 했을 거라고 생각 하는가? 당연히 승진하지 못했다. 대리로 약 6년을 보냈다. 동료들은 대부분 과장승진을 했는데 나는 ‘만년 대리’였다. 그래도 위안 삼았다. ‘나는 출산을 했고, 야근도 많이 못했고, 끝나고 간단히 한잔도 못했으니까’라고 핑계 삼을 위안거리를 찾았다. 그런데 정말 그게 타당한 이유였을까? 직장의 팀원으로서, 여자로서, 엄마로서, 아내로서 매일에 최선을 다했는데 뭔가 가혹하다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친정엄마가 암에 걸린 것도 내 탓입니다.
워킹맘들에게 친정엄마는 어떤 의미일까? 모든 것을 편하게 부탁할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비빌 언덕’이자, 언제까지나 ‘나의 편’인 든든한 지원자이다. 지금도 친정엄마가 아니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싶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첫째 아이는 친정엄마께서 1년을 꼬빡 봐주셨다. 나는 아이가 처음 뒤집는 것도, 처음 배밀이를 하는 것도, 처음 걷는 것도 보지 못했다. 대신 친정 엄마가 처음 보고 전화로, 문자로 알려주셨다.
손자가 처음 하는 행동들이 너무 사랑스럽다고 말씀하셨지만, 한편으로는 밤을 새는 일도 허다하셨다. 100일의 기적이란 말이 있듯이 태어나서 100일전까지는 고통스러운 일의 연속이다. 100일 전까지의 신생아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자고 깨고 먹는 일을 반복한다. 그리고 서서히 훈육을 통해 밤에 잠을 자고 낮에 깨어있는 것을 학습한다. 그러므로 양육자는 얼마나 힘이 들겠는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분유를 타고, 기저귀를 갈아야만 한다. 혼자서 잠을 잘 수도 없어 업어주거나 안아 주어야 한다.
어린 아이를 등에 업고 밥을 하고 청소를 하셨을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렇게 1년을 키워주신 친정 엄마는 눈에 띄게 늙은 모습이셨다. 얼굴의 주름뿐 아니라 허리통증도 심해지고 심지어 팔을 위로 들지도 못할 지경이셨다. 1년을 헌신적으로 아이를 봐주신 덕에 큰아이는 무리 없이 돌이 지날 무렵부터 어린이 집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2년 뒤 필자는 둘째 아이를 출산하였다.
그 무렵이다. 친정엄마께서는 이미 폐경이 되셨는데도 간혹 피가 비치신다는 말씀을 하셨다. 배가 아프지는 않지만 뭔가 묵직한 느낌이 불안하다 하셨다. 나는 함께 병원에 가보자 권하였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직검사를 하였다. 검사 결과가 나오는 일 주일 동안 오만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지난 2년간 손자 돌보신다고 너무 무리하셨기 때문일까? 혹시라도 아프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래도 마음 한편에는 연세가 많으시니 그냥 작은 물혹 정도겠지 싶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 검사결과가 나왔다.
자궁암이라 하셨다.
태어나서 가까운 사람의 암 판정은 처음 겪어봤다. 그 이야기를 친정 아버지를 통해 듣는데 수화기를 들고 있는 손에 힘이 풀렸다. 그리고 거두지 못할 자책감이 나를 짖 눌렀다. 엄마의 자궁암 원인이 이 ‘못난 딸’ 때문이라고 메아리 쳐 귓속을 울렸다. 회사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다시 컴퓨터 화면의 엑셀 파일을 보고 있자니,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은 마음뿐이었다.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인가 싶었다.
‘나는 나 하나 잘되자고 엄마를 희생시켰나? 결혼하고 나서까지 엄마를 괴롭히고 있는 건가? 큰애를 엄마께서 봐주지 않으셨다면 우리 엄마께서는 아프지 않으셨겠지?’ 그 동안 당연하게만 여겼던 엄마의 헌신이 후회스럽게 다가왔다. 엄마의 암 선고는 나를 위축되게 만들었고, 그 어디에서도 쓸모 없어진 나를 발견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워킹맘으로 살아가면서 하나 빠지지 말아야 되는 함정은 모든 것을 나의 탓으로 돌리는 버릇이다.
아이들이 감기를 달고 사는 것도, 집안이 엉망인 것도, 친정엄마가 아픈 것도 오롯이 나의 잘못으로 돌리지 않는 용기이다. 엄마의 수술 날짜를 잡고 밤을 새어 간호를 하면서 엄마의 얼굴만 봐도 눈물이 흘러 눈을 맞추고 있지를 못했다. 그때 엄마는 나의 자책하는 마음을 알고 계셨던 듯 하다.
“혜영아, 엄마는 누구 때문에 아픈 게 아니야. 그저 아플 때이기 때문에 아픈 거야.”
우리는 모두 혼자만의 삶을 살지 않는다.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여러 사람들의 삶을 조금씩 나눠 살고 있다. 딸로서 부모님의 삶, 아내로서 남편의 삶, 엄마로서 아이들의 삶, 조직원으로서 조직의 삶.
이렇게 얽혀있기 때문에 내가 아프면 연결된 그들의 삶도 아프기 마련이다. 나의 친정엄마가 아파서 내 삶이 아픈 것처럼. 그렇다고 엄마의 암이 나로 인해 비롯된 것이라고 막연하게 자책하면 수술실로 들어가는 엄마의 삶도, 그걸 옆에서 바라보고 있는 가족들의 삶도 결코 행복하지 못하다.
나의 잘못과 나의 잘못이 아닌 것을 분명하게 구분해내는 것이 우리 자신뿐 아니라 우리와 연관된 다른 이들의 삶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첫 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