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에서 엄마로
둘째 아이가 아프다는 것을 자각하고 나서부터 나의 삶은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지옥과도 같았다.
내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사실은 아이가 아프다는 것을 20개월동안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있었다. 아이는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나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왔는데 나는 듣지 못하고 느끼지도 못했다.
엄마조차도 듣지 못하는 말을 세상 그 누가 들었겠는가?
아이가 울음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어린이 집에서 둘째 아이는 많은 아이들 중 하나다. 배가 고프면 다른 아이보다 더 크게 울어야 먹을 수 있었다. 기저귀가 끕끕하면 한번이라도 더 칭얼대야 갈 수 있었다.
아이에게 크게 우는 것은 바로. ‘생존’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혼자서 자립해야 했던 나의 아이는 그렇게 작은 상처에는 반응하지 않고, 좀더 예민한 생존에 본능적을 맞서야만 했다. 그제서야 아이의 울음과 무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의 외로움이 나의 가슴을 후벼 팠다.
나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아이가 내 눈을 맞추며 “엄마”라고 불러주는 것.
그때까지 우리 아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엄마, 맘마가 전부였다. 물론 엄마는 나를 부르는 단어가 아니라 모든 의사소통을 대변하는 의미 없는 단어일 뿐이었다. ‘왜 둘째 아이는 말을 못할까?’ 라는 물음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나를 책망할 시간에 나는 아이와 더욱 소통해야 했다. 아니 소통하는 방법을 알려줘야만 했다.
나는 매 순간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나의 눈을 아이의 눈앞에 가져가서 억지로 눈을 맞추려는 노력을 했다. 물론 아이는 난생처음 받아보는 관심이 어색했을 것이다. 그래서 눈을 맞추는 대신 딴청을 피우는 것을 선택했다. 그래도 나는 멈출 수 없었다.
놀이터에서 놀 때도 둘째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랐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장소를 막론하고 뒤로 누우며 울어댔다. 내가 소리를 질러도 아이에게는 들리지 않는듯했다. 어르고 달래도 아이에게는 들리지 않는듯했다.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아이는 앞과 뒤가 모두 막힌 상자 안에서 지내는 듯 했다. 나는 너무나 답답하고 조급했는데 아이에게서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날도 여느 날과 같은 전쟁과도 같은 날이었다.
이제 엄마 말고 다른 말을 할 법도 한데 아이는 아직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갑자기 냉장고 앞에서 손가락을 가리키며 또 울기 시작한다. 아마도 우유를 찾는 것 일거다.
갑자기 조바심과 짜증이 몰려왔다.
“서하야, 우유 해봐. 우유! 왜 아직도 말을 못해? 우유 해봐. 우유!!”
나는 어느새 아이의 어깨를 잡고 세차게 흔들고 있었다. 그 물리적인 충격에 둘째 아이는 놀란 듯 했다. 더욱 세차게 울어댔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커질수록 나의 답답함은 극에 달했다.
“말을 해보라고. 왜 넌 말을 못해?” 소리지르고 흔들어대는 나의 어깨에 손을 댄 것은 바로 첫째 아이였다.
첫째 아이가 나를 말리며 얘기한다. “엄마, 서하는 아직 말을 못해서 그러는 거예요. 엄마도 알고 있지요?”
어느새 첫째 아이는 눈물을 흘리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정신이 돌아왔다. 그리고 내 어깨에 손을 올린 채 울고 있는 첫째 아이와 내 손아래서 떨고 있는 둘째 아이가 비로소 보였다. 나는 화들짝 놀라 흔들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리고 울어버렸다.
그때였다. 둘째 아이는 자기를 그렇게 몰아세우고 무섭게 다그친 나에게 엉금엉금 기어 다가온다. 그리고 두 팔을 활짝 벌려 나에게 안긴다. 두 눈은 퉁퉁 부운 채 이 못난 엄마에게 안긴다.
아이에게는 이 못나고 부족한 내가 세상의 전부였던 거다. 이 아이에게 난 무슨 짓을 한 걸까?
‘미안해’라는 말이 나오지도 않을 만큼 미안했다. 아이들을 가슴 가득 안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육아는 한 아이를 키우는 과정이다. 하지만 이때 나는 깨달았다.
육아는 한 여자가 엄마로 성장해가는 과정임을……
건강한 엄마가 건강한 아이를 키울 수 있기에 엄마는 반드시 건강해져야만 한다.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서적으로. 그래서 희생만을 강요하는 육아는 절름발이 육아이다.
한번도 살아보지 못한 엄마로서 살아가기 위해선 엄마로서의 삶을 배워야 한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옳지 않은 방향으로 갈수도 있다. 하지만 끊임없이 자신에게 묻고, 아이에게 물어가며 아이와 엄마만의 정서적인 유대감을 만들어가는 노력을 멈추면 안 된다. 정답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행복에 조금씩 가까워질 수 있다.
아이 행동의 결과만을 가지고 속상하기 전에 아이가 겪었을 감정을 먼저 느껴보려는 노력이 어쩌면 소통의 시작이 아닐까 싶다. 왜 울음으로 소통하려 하는지, 왜 눈을 맞추지 못하는지, 왜 감정의 변화가 표정으로 나타나지 않는지 그 깊은 근원의 물음에 먼저 다가가려 노력하는 것은 엄마에게 상당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여자가 아닌 엄마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행복하지 않은데 온전히 행복한 엄마는 없다. 엄마가 건강하고 행복하기 위해선 아이의 상처를 먼저 바라봐야 한다. 그것이 엄마의 상처를 바로 바라보는 출발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는 그 후로부터 7개월이 지난 어느 날 기적과 같이 내 눈을 바로 바라보고 “엄마”라고 불러주었다. 그리고 지금 5살을 맞이한 아이는 그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미소와 말투로 우리 가족의 모든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우리 부부는 이런 아이의 모습을 기적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매 순간 감사한다.
내가 만약 잘리지 않았다면 우리 아이의 이런 환한 미소를 볼 수 있었을까?
불행의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온 일들이 결국 더 큰 가치를 나에게 보여주고 있으니 어쩌면 불행은 행복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싶다.
우리의 삶은 새드엔딩이나 해피엔딩으로 그렇게 끝나버리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도 지속되고 내일도 지속될 이야기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지금 만약 불행이라고 느껴지는 감정 속에 있다면, 그 감정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행복으로 둔갑해 있을지도 모른다. 동전의 양면처럼 행복이 뒤에서 서성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상처 속에서도 삶을 이어가려는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된다.
하지만 가끔 너무 힘이 들어 노력할 의지가 없을 수도 있다. 상관없다. 의지와 힘이 없다면 그냥 흘러가는 대로 하루를 살아내면 된다. 하지만 판도라의 상자만은 꼭 손에 쥔 채로 그렇게 살아가면 된다.
어느 날 기적과 같이 행복이 당신의 눈을 맞추고 “엄마!”라고 불러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가슴 벅차게 눈부신 감동이 당신 뒤에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