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 그리고 발견
옛말에 ‘넘어진 김에 쉬어 간다’는 말이 있다. 정말 현명한 말이 아닌가 싶다.
세상일에는 다 적정한 때가 있는 듯 하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일어날 수 없는 때,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어느새 일어나 있는 때. 그래서 가끔 몸에 있는 힘을 다 빼고 ‘때’를 기다리는 인내심이 필요한 듯 하다. 특히 생각지 못하게 넘어졌을 때가 더더욱 이런 때가 아닌가 싶다.
아이들은 뛰어가다 돌부리가 없어도 자기 다리에 걸려 자주 넘어진다. 그때 아이들은 일단 왕~ 울어버린다.
그리고 엄마를 보며 한번 더 간절하게 운다.
그러면 엄마는 다가가서 아이에게 일어나라고 하지 않고 일단 안아준다. 그리고 등을 쓰다듬으면서 “괜찮아. 엄마가 여기 있잖아.” 이야기하면 조금 흐느낀다. 그리고 엄마는 무릎의 상처를 살펴본다.
“이런, 까졌네. 엄마가 약 바르고 밴드 붙여줄게.”하면 아이들은 그제서야 일어난다.
손을 비비며, 바지에 뭍은 흙을 툭툭 털어낸다. 그제서야 일어날 준비가 된 것이다.
사실 그리 크게 다친 것도, 걷는데 무리가 있는 정도도 아니다.
꼭 엄살 같지만 “엄살부리지 말고 빨리 일어나 걸어!”라고 하면 아이는 더 서럽게 운다. 다리도 아프고, 넘어진 것도 창피한데, 엄마가 공감해주지 않기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받기 때문이다.
아이든 어른이든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다 같다.
슬프면 울고 싶고, 아프면 치료받고 싶고, 기쁘면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다. 그러나 우린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 넘어져도 그 즉시 발딱 일어나 걸으라고 강요 받는다. 다름아닌 자기자신으로부터. 아이처럼 엄살 부리지 말라며 재촉한다.
하지만 우리 마음속의 아이는 창피한 마음을 위로해주고, 아픈 상처에 약을 발라줄 누군가의 손길을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불행히도 주변에 아무도 없다면 창피할 필요도 없건만, 아무것도 아닌 것에 넘어진 스스로를 창피해한다.
그럴때 그대로 조금 누워있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아린 무릎의 통증이 조금 가라앉을 때 까지만 그대로 누워있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어차피 지금 발딱 일어나도 다시 걸으려면 통증이 가라앉아야 하지 않는가?
그때까지 숨을 좀 고르면서 잠깐만 더 누워있어도 된다. 넘어진 김에 쉬어가도 된다. 어쩌면 너무 앞만 바라보고 달린 당신에게 하늘이 주는 쉼표일지도 모른다.
회사를 쉬면서 가장 큰 변화는 가족에게 시선이 옮겨진 것이라고 이미 말했다.
그리고 친정엄마의 굽어진 허리에도 시선이 갔다. 그리고 힘든 주말을 보낸 후에는 허리 통증이 심해지신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병원에 다녀오시라고 아무리 말씀을 드려도 자신을 위해 투자하는 것을 어색해하시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친정엄마 몰래 병원예약을 마치고 억지로 엄마를 끌고 병원을 찾았다. 정밀검진과 물리치료까지 받으시는 엄마는 “괜찮다는데 뭘 이런걸 자꾸 하니?” 하셨지만 병원에서 옆에 앉은 아주머니와 얘기라도 하시게 되면 은근스레 자랑을 하셨다.
“아휴~ 딸애가 억지로 예약까지 해서 왔네요”라며 싫지 않은 미소를 띄셨다. 그리고 다 끝나고 나는 엄마 손을 끌고 근처 커피숍을 찾았다.
“이렇게 비싼 커피를 어떻게 마시니? 난 안마셔도 된다.”고 한사코 뿌리치셨지만, 맛있는 디저트까지 준비해 드리자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으셨다. 친구분들에게 보여주실 거라고 하셨다.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다면 가져보지 못했을 뜻밖의 행복이었다.
엄마가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을 보며, 이렇게 아름답게 웃으실 수 있는 분인데 지금까지 나는 주름만 드렸구나 싶은 죄책감이 들었다.
평생을 눈물과 한숨으로 나를 키우시고, 눈물로 내 사회생활을 뒷바라지 해주셨는데, 정작 당신은 병원조차도 마다하신다.
나는 매일 두세 잔씩 마시는 커피를 아까워서 평생 몇 번 드시지도 못하신 나의 엄마. 달콤한 디저트에 한없이 즐거워하시는 소녀 같은 나의 엄마.
내가 넘어지지 못했다면 미쳐 발견하지 못했을 기쁨과 행복이다.
넘어지면서 무릎과 가슴에 상처가 남았지만, 내 주변의 감사하고 소중한 사람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넘어지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누군가 계획한 쉼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눈을 감고 다시 생각해보면 다른 색깔과 모양의 행복이 바로 옆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갖게 된다. 왜 그 동안 돌아보지 않았느냐는 듯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넘어졌다고 꼭 아픈 것만은 아니다.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우리를 웃게 만들 무언가가 분명히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