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쁨 중독증

by 김혜영

워킹맘의 하루는 정말 바쁘다.

아침일찍 아이들 등원준비를 하면서, 동시에 직장인 모드로 돌입한다.

그리고 아내의 역할을 위해 남편을 깨우고, 그 바쁜 시간에도 아침상을 준비한다. 그리고 늦지 않게 아이들을 유치원 셔틀버스에 태우고선, 다시 지하철역으로 뛰어간다.

물론 집안을 깨끗하게 치우고 나가는 것은 꿈도 못꿀 일이긴 하지만 긴박한 아침을 완수하고 회사로 출근한다. 이미 하루의 에너지 중 1/3을 사용해버리긴 하지만 말이다.


회사에서는 그날의 정해진 미팅과 일정을 소화하며 부랴부랴 집으로 달려가면 돌봄 도우미와 함께 TV에 정신이 팔린 아이들이 보인다. 그리고 식탁을 보니 김과 소시지 볶음이 눈에 띈다. ‘이런 것만 아이들에게 먹여서 되나?’ 싶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다

불편한 마음으로 설거지를 대충 마치고 아이들을 재우러 같이 방에 들어간다. 그동안 밀린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돌린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오면 널면 되겠다 생각한다.

그런데 아이들을 재우다 깜빡 잠이 들었는지 시간은 벌써 새벽3시.

아직 화장도 지우지 못했고 저녁밥도 먹지 못했다. 그리고 빨래도 이미 세탁이 다 되어 세탁기 안에 몇시간째 방치되어 있다. 아쉬운대로 화장만 대충 지우고 '세탁기안의 빨래는 쉰내가 날텐데..' 걱정만하고 결국 내일 다시 한번 더 돌리고 널어야지 체념한다.


이렇게 맘 편히 숨 한번 쉴 틈도 없이 시간을 보내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니 가장 난감한 것은 남아버린 시간들이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남은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 나 자신이었다.

한번도 한가하게 살아본 적이 없어서 인지 남아버린 시간은 나에겐 불안의 가장 큰 핵심 요소였다.


한가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무언가 해야하는데.. 라는 이유 모를 조바심은 불안함으로 변해버렸고, 불안함은 길지 않은 시간 내에 우울함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나는 바빠지기로 마음먹었다.

일정기간의 우울을 겪은 후 나는 다시 바빠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침에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고선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한동안 안 갔던 서점도 매일같이 갔다. 운동을 하겠다고 헬스장에도 가고 그도 아니면 까페라도 가서 앉아있었다.

만나야 할 사람들 이름을 리스트에 적어두고선 하루 한명씩 만났다. 그들과 수다와 대화를 오가는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은 6시 반이 되서야 돌아오지만 그간 함께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에 일찍 픽업하러 갔다. 그리고 키즈카페니, 놀이공원이니, 체험장이니 하는 곳을 리스트화하여 하나씩 해치워나갔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평소에 잘 하지도 않던 음식을 하겠다고 인터넷을 뒤져 1-2시간을 식사준비에 매달렸다. 그리고선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나선 이제야 좀 쉴까 하지만 밀린 설거지와 빨래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 마치고 나니 예전과 다름없는 새벽 1시정도..


그런데 신기하게도 바쁘게 있으니 몸은 피곤한데, 반대로 마음은 편안해졌다.
바쁘다는 ‘상황’이 나를 이상하게 안심시켰다. 왠지 나는 도태되지 않고 있으며, 아무것도 안 한다는 죄책감에서 멀어진 기분이다.
그리고 쓸모 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 모를 안도감.


그날도 역시나 눈코뜰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조금은 빨리 하루가 마무리 되어 식탁에 앉았다.

깨끗하게 정리된 집안을 보니 열심히 산 나의 하루를 반증하는 것 같아 뿌듯했다. 그리고 차를 한잔 마셔볼까, 여유를 부리는데 남편이 물었다.


“세탁소에서 와이셔츠 찾아왔어?”

“아, 맞다. 깜빡했다. 오늘 너무 바빴어.”

“뭐 하는데 그걸 까먹어? 내일 입을 옷이 없자나~”

갑자기 짜증이 몰려오면서 내가 얼마나 바빴는지 설명하려고 했다.

“뭐하긴 청소하고 친구 만나고 애들이랑 방방장 갔다가 집에와서 밥먹이고…”


그런데 생각해보니 한 일은 많은 것 같지만 사실 그렇게 정신을 쏙 빼놓을 만큼 시급한 일은 없었다. 그런데 나는 오늘 왜 그렇게 바빴을까? 조금의 여유도 없이 스케줄을 빡빡하게 겹쳐 잡으면서까지 바쁘게 말이다.


생각해보니 나는 바쁨에 ‘중독’되 있었던 것 같다. 한가롭게 있으면 어색하니까,
불안하니까 내 24시간을 빽빽한 일정들로 빼곡히 채워 넣었던 것 같다.

물론 바쁜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권장할 만 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바쁘다는현상에 대한 나의 성취감과 효율성이다.

바쁘기는 했는데 이렇다 할 무언가를 성취하지 못했다.

바쁘기는 했는데 효율적이지 않고 우왕좌왕한 느낌이다.

이런 느낌이 드니 허무한 감정이 몰려왔다.


지인 중에 한 달에도 몇 번씩 집안의 가구 위치를 바꾸는 분이 계신다.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지루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답답해서 시간이 날 때마다 바꾼다고 했다. 그 대답을 들을 때 난 속으로 ‘참 특이하시네. 한가할 땐 좀 쉬시지~ 난 쉬고 싶어도 못 쉬는데..’라고 생각했던 것이 문득 떠올랐다.

사실 나도 시간이 날 때마다 쓸고 또 쓸고, 닦고 또 닦고를 반복했기 때문에 그분의 마음을 충분히 공감했다.

그러나 정말 필요해서 한 일인지, 아니면 바쁜 상황을 만들고 싶어서였는지는 정확히 분간해야 한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환경에 따라 다르게 훈련된다.

효용있는 환경에서 훈련되면 효용있는 일에 능숙하게 되고, 바쁜 환경에서 훈련되면 바쁘게 움직이는 것에 능숙해진다.

가치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가치있게 삶을 살아야한다.

효율적이고 효용가치가 높은 일들이 삶을 채우도록 해야 스스로도 효용가치가 높은 사람으로 인식된다.


바쁜 것이 옳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한가한 것이 비난 받을 것 또한 아니다.


그러나 타임푸어(time poor)처럼 시간에 쫒기는 삶보다는 타임리치(time rich)처럼 시간을 지배하는 삶이 훨씬 더 매력적이고 아름답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삶을 그저 “바쁘기만 한 일상”으로 채우지 않기를 바란다.

보다 가치있고 효용있는 일들로 채우기 위해, 멈춰서 있는 “한가한 시간”을 반드시 할애하는 노력을 기울이자. 한가해 보일지라도 그 시간은 밀도 있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 중요한 동력이 될 것이 분명하다.


아직은 시간을 밀도있게 관리할 자신이 없는가? 그럼 좀 어떤가?

아내로서, 엄마로서, 딸로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그 많은 역할을 감당했는데 여유시간을 갖고 조금 사치를 부려보는게 뭐가 나쁜가? 죄책감 갖을 필요 없다. 일단 그 여유로움에 적응해보라.


우아하게 그 여유로움을 즐겨보라. 타인들도 당신을 우아하게 여길 것이니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마음의 근육을 단련시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