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 윈프리의 불우한 과거는 너무나 유명하다. 유년시절의 학대사건과 성폭행 후 얻게된 첫아이의 죽음, 그리고 마약과 비만. 그녀의 삶은 겪기 싫은 일들로 온통 가득차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성공이 더 빛나고 많이 회자되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그 역경에서도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긍정적인 삶을 살아가게 한 것은 놀랍게도 독서와 일기였다. 그 중 일기가 눈여겨볼 만 한데, 평범한 일기가 아닌 “1일 5감사 일기”였다. 이는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에게 권한 것으로, 그녀는 그 일기를 쓰고 삶이 바뀌었다고 고백했다.
“오늘도 거뜬하게 잠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유난히 눈부시고 파란 하늘을 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점심 때 맛있는 스파게티를 먹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얄미운 짓을 한 동료에게 화를 내지 않았던 저의 참을성에 감사합니다.
좋은 책을 읽었는데 그 책을 써 준 작가에게 감사합니다.” (오프라 윈프리의 감사일기 중)
사실 내 기준으로 보자면 그녀가 감사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거뜬히 잠자리에서 일어난 것도 스스로가 부지런했기 때문이고, 눈부신 파란하늘은 그녀에게만 허락된 것이 아니니 특별히 감사할 일은 아닌 듯 하다. 맛있는 스파게티는 그녀가 맛 집을 갔기 때문일 것이고, 얄미운 동료를 참아준 것 또한 그녀의 훌륭한 인격 탓이고, 좋은 책 또한 그녀의 해안으로 잘 선택한 탓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것을 너무 억지스럽게 너무 끼워 맞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공한 여성에 걸 맞는 자기극복 스토리로만 보였다. 나의 일상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감정일 뿐이었다.
회사에서 잘리고 둘째 아이가 아프다는 것을 자각하면서 나에게는 감사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사실 ‘감사’라는 감정은 사치처럼 느껴졌다.
아픈 나의 아이와 순간순간을 전쟁과 같이 보내는 것이 우선이었고, 지친 나의 몸과 마음을 추스리는 게 우선이었다. 감사를 느낄 만큼 결코 여유롭지 못했다. 그리고 눈을 씻고 찾아봐도 전쟁과 같이 순간순간을 치뤄(?)내야 하는 나에게 감사 따위는 가당치도 않았다.
오히려 대상 없는 울분과 분노, 그리고 억울함만이 가득했다.
“왜 남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나에게는 이리 어려운거지?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나에게만 이렇게 가혹한 거야? 나는 매일을 열심히 살아온 죄밖에 없다고!!”
그렇게 원망섞인 내안의 외침은 그 어떤 다른 결과를 가져오지도 못한 채 공허하게 내 안에서만 메아리쳐 다시 내 귀로 돌아왔다. 피할 곳이 있다면 숨고 싶었지만 불행히도 나에게는 ‘견디는 것’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시간이 가장 큰 약이라고 했던가?
순간을, 하루를, 한 달을 견디며 살았다.
‘버티다 보면 더좋은 날이 오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보다는 그저 주어진 오늘을 견뎌내고, 버텨내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두 아이가 내 앞에서 잡기 놀이를 하며 노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 두 아이들은 그 전까지 같이 노는 법이 없었다. 서로 의사소통도 되지 않았을 뿐더러, 둘째 아이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잘 알지 못했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놀았다. 그런데 여느 형제들과 같이 함께, 같은 공간에서, 같은 놀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나에겐 놀라운 기적과도 같았다.
그 순간 내 입에서 거짓말처럼 “아, 행복하다. 이런 모습을 보게 되어서 감사하다.”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누구를 향한 ‘감사’인지는 모호했지만, 이런 순간이 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어느 순간엔가 내 곁으로 다가와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나에게는 벅찬 감동으로 다가왔다.
감사하기는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확실한 방법이다. - 마시 시모프
생각해보면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특별하게’ 바라보면 변화는 시작되는 듯 하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절실한 바램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일상은 진주처럼 영롱일수 있다.
지금 나는 조용한 집안 식탁에서 커피한잔을 내렸다. 그리고 얼마 전 마트에서 구매한 향초를 켜놓고 조덕배의 ‘꿈에’를 듣고 있다. 너무나 일상적인 찰나이지만, 시간을 쪼개 억지로 만든 여유로운 시간이 한없이 값지다. 이런 여유로움은 몇 해전 회사를 다니던 나에게는 ‘절실히’ 필요했던 순간이기도 했다. 그 절실한 순간이 지금의 나에겐 ‘현실’이 되어 있다.
적어도 나는 몇 해전 나보다는 행복하다.
그러나 이 행복은 특별하다고 여기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행복이다. 감사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자만으로 당연한 권리로만 여겨진다.
오프라 윈프리, 그녀가 매우 당연한 일상을 ‘감사’로 치환한 것처럼, 우리도 당연한 일상을 ‘절실한’ 기적으로 치환한다면 감사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 가는 그의 감사의 깊이에 달려있다. – 존 밀러
이런 의미에서 감사는 습관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습관은 훈련을 통해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삶은 매 순간이 선택이고, 크고 작은 습관으로 선택의 기준이 만들어 진다.
그래서 나는 별다를 것 없는 오늘을 “감사”로 선택하고자 한다.
그래서 나는 “행복”을 기대할 수 있어, 이 또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