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이 아닌 Only 1

by 김혜영

꾸준함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세상에 많지 않은 것 같다.

천재성도 일순간 활활 거세게 타오르는 열정도 꾸준함을 이기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예전 어릴 적 읽었던 토기와 거북이의 이야기만 봐도 토끼의 뜀박질 천재성도, 반드시 이기고 말겠다는 타오르던 열정도 결국은 거북이의 꾸준함을 이기지 못했다.

거북이의 꾸준함을 보고 있자면 그야말로 답답하다. 저렇게 느릿느릿해서 어디 도착이나 할까 싶다. 그 거리가 얼마인데.. 골인지점까지 얼마나 많이 남았는가를 알았다면 그 숫자가 주는 중압감에 압사당했을 지도 모른다. 아마 나라면 그랬을 것이다.

어쩌면 거북이가 꾸준히 걸을 수 있었던 것은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가야하기 때문이라는 당위성이 아니었을까 싶다. 가서 무언가를 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그저 가야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골인지점까지 얼마나 남았느냐를 계산하지 않은 단순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오늘도 나는 SNS를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나와 같은 꿈을 가진 사람들의 살아가는 방식을 보는 것은 정말 흥미롭다. 목적을 이루어낸 그들의 만족스러운 일상, 혹은 누가 봐도 목적에 다가가고 있는 모습.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그들이 이루어놓은 모습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나는 그들의 그것에 비해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우울한 감정이 들기 때문이다.

나도 그들보다 더 잘하고 싶다는 열망이 커지면 커질수록 자신감은 그 크기에 비례하여 작아진다.

어느 순간 ‘내 주제에 무슨..’이라는 막막한 감정이 나를 휘감는다. 그리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정서적으로 너무 소진되어 버리고 만다.


실제로 미국 미주리 과학기술대 연구팀이 대학생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SNS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사람일수록 우울증을 앓게 될 확률이 높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카페인 우울증이라고 들어봤는가?
카카오스토리-페이스북-인스타그램 서비스가 가져다 주는 상대적 박탈감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 기사를 보니 중독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있어 소개한다.


. SNS에 접속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 가족, 친구와 있을 때도 수시로 확인한다
. 접속시간 줄이기에 실패한다
. 비싼 음식을 먹을 때 사진을 올리고 싶고, 사진찍기 전에 누가 먹으면 짜증난다
. SNS 글에 피드백이 없으면 초조해진다
. ‘좋아요’ 수가 적으면 우울하다
. 다른 사람의 글이나 사진을 보고 잠을 못잔 적이 많다
. ‘예쁘다’는 애기를 듣고 싶어 셀카를 하루 한번 이상 찍는다
. 타인의 SNS에 맛있는 맛 집이나 명소가 뜨면 뒤쳐지는 느낌이다
. 음식점, 여행지 사진을 보고 일부러 찾아간 적이 있다.


이 중 당신은 몇 개나 해당하는가?

나는 솔직히 7가지가 속했다. 궁금한 그 결과는..

0~3 : 정상/ 4~6개 : 경미한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음/ 7개 이상 : 우울증 및 중독까지 의심됨 (출처 : TV조선 2015.11.29일자)


결과가 충격적이었다.

나는 타인과 소통을 하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SNS를 선택했고, 유의미한 정보를 취하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거의 중독상태라는 충격적인 결과.

심리학에서는 건강한 감정과 감성을 유지하기 위해 빠지지 말아야 하는 독이 바로 ‘중독’이라고 충고한다. 중독은 사고와 행동에 한계를 만든다. 유연하지 못한 삶의 패턴을 만들어 버린다. 그런데 내가 카페인 중독이라니..

결국 소통이라는 빌미 하에 소통이 방해되어 버린 꼴이다.

그것도 가장 중요한 나와의 소통이 막혀버린 꼴이다.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어떻게 하고 싶었는지를 모조리 잊어버린 꼴이다.

“나는 아무리 해도 저들만큼 하지 못해. 재능도 없고, 시간도 없고, 감각도 없어” 이런 결과만 매일 확고히 다지는 꼴이다.

그런데 이 기사를 보고 깨달았다.
나는 그 동안 과정을 뛰어넘어 No 1의 결과가 목적이 되는 삶을 추구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무언가를 시도하고 도전했다는 성취감이 목적이 아니라 ‘일등’이라는 결과가 목적이었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들과 동일한 조건에서도 그들만큼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결코 성공한 그들과 같을 수 없다.

그들의 방식으로 성공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와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장점과 단점이 나의 그것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 확실히 그들이 나보다 우월한 것은 그들은 시도했다는 사실이다.
추측해보건데, 그들 또한 시도하기까지 많은 사람들과의 비교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도했다는 점이 지금의 나보다 우월하다.


이는 한편으로 나도 충분히 지금의 나보다 우월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같은 조건 내에서 성공한 그들만큼 해내지 못할지라도, 그래서 나의 무능함을 직면하게 된다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도했다는 사실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우리는 용기를 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행동이 우리 자신의 치부를 보일수 있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만약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이제는 재지말고 시작해보자고 말하고 싶다.

SNS에서 환하게 웃으며, 내가 부러워하는 일을 하는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우린 맞설 수 없음을 인정하자.

대신 그들의 방법이 아닌 나만의 방법으로 꾸준히 나아가자.

나만의 방법, 끝을 재지 않는 단순함, 해야하니까 해나가는 꾸준함으로 Only 1을 만들자.


최고가 아니라 유일함을 추구하라.
1등은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지만 유일한 것은 시간이 갈수록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자기만의 특별함으로 잊히지 않는 존재가 되라 (출처 : 스마트한 성공들)


세상의 모든 사람이 No 1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어차피 많은 사람 중 한 명만이 No 1이다.

그 작은 확률 대신 Only 1의 확률에 배팅을 해보자. 그렇다면 시작이 조금은 쉬워질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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