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아라. 그게 최고의 복수다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는가? 혹은 얼마나 많은 것을 느끼는가?

by 김혜영

저녁 아주 찰라의 순간 찢어지는 듯한 울음에 달려가보니 25개월 된 서하의 왼쪽 눈썹위로 피가 흥건하다.

언뜻봐도 깊게 찢어진 상처속에서 붉은 선혈이 뚝뚝 떨어진다. 잠깐 세탁기에 빨래를 넣으러 간 그 짧은 순간 일어난 일이다. 뭐가 잘못된 것인지, 분간도 가지 않고 다만 검붉은 피 때문에 정신이 몽롱해졌다. 남편은 하필 멀리 출장을 가 있는 상황이고, 첫째 아이도 며칠째 감기로 침대에 누워있었다.


‘왜 하필 그때 빨래를 한다고.. 왜 어린 애를 혼자 거실에 둬서는 이 일이 일어나게 만든거야?’

한없는 자책만이 내 맘과 머릿속에 가득찼다. 얼마나 아플지 그리고 얼마나 무서웠을지 아이가 느낀 고통 때문에 한없이 미안하기만 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방의 수납장 서랍이 열려 있었다. 아마 아이는 서랍이 열려있는지 모르고 그 아래에서 놀다 위를 보지 못하고 일어나다 모서리에 부딪힌 듯 하다. 다시 서랍 모서리를 보니 얼마나 뾰족한지, 손끝으로 만져봐도 날카롭다.


‘왜 진작 이런 것도 미리 챙기지 못하고 애를 이 지경으로 만든건지..’

한심하기만 한 내 자신에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손이 파르르 떨리고, 두려움과 나 자신에 대한 분노때문에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나를 보고 아이는 더 겁에 질려 자지러질 듯 울었다.

순간 본능적으로 나는 아이에게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서하야, 괜찮아. 밴드 붙이면 다 나아. 밴드 붙이고 엄마랑 병원가자” 그리고선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밴드를 찾아 눈썹위에 붙여주었다.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지만 입으로는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그제서야 조금 안정된듯 아이는 울음을 멈췄다. 그리고선 나는 전화기를 들어 가까운 동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첫째 아이를 부탁하고 서하를 안고 부랴부랴 차를 몰아 병원으로 향했다. 아이는 밤에 엄마와의 외출이 신이 났는지 밴드아래로 피가 새어나오는지도 모른채 웃으며 혼자 종알거렸다.

이렇게 밝은 아이가 나 때문에 다쳤다고 생각하니 그 자괴감을 견디기 어려웠다. 두 아이 육아 때문에 지쳐가면서 나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소홀해졌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몸을 움직여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가 아닌 “그렇게 하지마, 위험해.” “이쪽으로 와” “이거 해봐” 이런 말들로만 사랑하는 엄마였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말이 아이에게 좋지 않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너 그러면 다친다. 다쳐도 엄마는 몰라”이렇게 너무 쉽게 다친다는 것을 공공연히 말하면서도 경각심을 갖지 않은 안일한 엄마였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아이는 나 때문에 다친 것 같았다.

“내가 조금만 더 신경썼다면, 내가 조금만 더 좋은 말들로 보살펴줬다면 괜찮았을텐데.. 저 작은 몸으로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됬을텐데.. 나는 자격없는 엄마야..”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괴로움을 견딜 수 없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렇게 억울할 수가 없는 거다. “난 뒤는게 시작한 엄마역할을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을 뿐인데, 왜 이렇게 뭐하나 잘 되는게 없는지. 신경을 조금 안써도 그냥 남들처럼 잘 될수도 있는거잖아. 왜 나만 모든 일에 대가를 치뤄야하냐구!!” 누군지도 알지 못하는 대상에게 화가나고 분풀이를 하고 싶었다.


살다보면 상처를 주는 사람은 없는데, 상처받는 사람들은 참 많다. 나 또한 매 순간 치열하게 살아왔고, 그러면서 많은 상처를 받았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상처를 준 ‘나쁜’사람은 많지 않았다. 한편으로 그들도 누군가로부터, 어떤 상황으로부터 상처를 받고 있기도 했다. 결국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모든 순간이 상처가 될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내 경험을 돌아보면 그 순간을 상처로 받아들일수도 혹은 매우 일상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일수도 있음을 의미했다.


열심히 일한 것보다는 반목했던 나의 모습이 도드라져 결국 잘리고 만것도, 나의 무관심속에 아파했던 나의 아이도, 실수투성이 엄마 때문에 생긴 아이의 상처도 어쩌면 살아가는 과정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일 수도 있다. 누구 때문도, 무엇 때문도 아닌 완전한 삶을 향해 몸부림치는 과정의 한 부분일 수 있다.

우린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너무나 불완전하고 실패에 익숙한 마완성의 존재이다. 실수와 실패에 매일 노출되어 있고, 그 과정을 통해 좀더 완전하고 좋은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러니 실수했다는 사실에 집착하지 말고,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말고 앞으로 쭉 나아가자.


잘 살아라. 그게 최고의 복수다
- 탈무드


가끔 억울함과 참지못할 분노로 복수를 꾀하기도 한다.

하지만 진정 똑똑한 복수가 무엇인지 한번쯤 생각해보자. 지옥과도 같은 감정의 소용돌이속에 우리 자신을 밀어넣는 것이 진정한 복수인지, 우아하고 평온한 삶에 우리를 자리하게 하는 것이 진정한 복수인지 말이다.

삶의 목적과 결과는 정말 중요하다. 어느정도의 경제적 여건이 우리를 안정되고 여유롭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때부터 즐기고 느끼는 것이 멈추기 때문이다.

사회적 지위가 우리를 풍요롭게 하고 가치있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결과가 목적이 되면, 달성하지 못한 마지막에는 치졸한 내 자존심과 대면해야하는 상황만 남는다.


많은 사람들이 누누히 말하는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라”는 말은 나이가 들수록 그 빛을 또렷히 느낀다.

결과에 도달하기 위해 걸어가는 여정에서 만난, 기댈수 있는 한사람에게 감사할 수 있는 마음. 걸어가는 과정에서 문득 느끼는 깨달음의 찰라. 그리고 여전히 조건없이 나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가족을 포함한 내 사람들의 소중함. 이런 것은 깨닫지 못하면 영원히 알수 없는 고귀한 가치들이다. 그리고 이 가치들을 깨달은 사람만이 향유할 수 있는 삶에대한 만족감 역시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느냐보다 앞서는 개념은 얼마나 많은 것을 느끼느냐이다.


여자들이여, 잘 살아라. 그게 최고의 복수다.

대상도 모호한 누군가를 향한 지옥 같은 복수의 감정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매 순간 잘 살아내므로 부러움을 사는 사람이 되어라.

그게 세상 가장 똑똑한 최고의 복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한 사람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