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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영 Aug 03. 2020

[윤리에세이] 윤리민감성을 높이는 3가지 방법 1

윤리민감성을 높이는 방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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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민감성이 뭐 예요?

저는 남녀공학의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남녀 공학이라지만 성별과 학년에 따라 층이 철저히 분리된 남녀공학 아닌 남녀공학이었어요. 별다른 특기활동을 하지 않은 저로서는 미술실이나 음악실로 가는 도중 스치는 것이 이성학생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순간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혼자 짝사랑하던 남자아이가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못생긴 편에 속하고, 키도 크지 않았으며, 그다지 사교적이지도 않았었는데 저는 왜 그리 그 아이가 좋았던지요. 하루는 발표회준비 때문에 음악실에서 합창연습을 하게 되었는데요, 그 아이가 바로 제 뒷줄에 앉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합창연습을 하는건지 뭔 지도 모를 만큼 저의 온신경은 그 아이에게 집중되었지요. 고개를 돌려 그 아이를 보진 않았지만 그 아이가 누구와 잡담을 하고 있는지, 지금 무얼 하는지 신기하게도 다 들리고 다 보이는 거예요. 그런데 그때 그 아이가 연필을 떨어뜨렸습니다. 그것도 제 발 밑에. 그때 제가 어떻게 했는 줄 아세요? 그 아이가 저에게 주어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연필을 냉큼 주워들어 그 아이 손에 건네 주었습니다. 그리고 슬쩍 눈이 마주쳤었죠. 그때부터 저는 온갖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그 눈빛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그 아이도 혹시 나에게 관심이 있는 건 아닐까?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냉큼 주워 줘서 그 아이가 내 마음을 알아버린 건 아닐까? 이런 생각들 말이죠. 그 사건이 있은 후부터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요. 우연히 내다본 운동장 저 끝에서 농구를 하는 그 아이가 선명히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 아이에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 겁니다. 


출처 : http://www.jjn.co.kr/news/articleView.html?idxno=756220


이처럼 우리는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 관심있게 인식하면 대상자의 작은 변화와 움직임 하나도 민감하게 감지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아가 나의 행동으로 인해 미치게 될 영향까지도 민감하게 느끼게 되죠. 

이런 현상을 민감성이라고 합니다. 윤리적 측면에서의 민감성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윤리민감성은 사회 문화적 윤리문제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는 정도를 말합니다. 윤리민감성은 윤리 감수성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데요, 윤리민감성이 높을수록 윤리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나의 무의식적인 행동이 윤리적으로 인식하는 대상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충분히, 민감하게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즉 나의 행동에 윤리적 기준으로 자기통제가 이루어진다고 볼수 있습니다. 그런데 윤리민감성은 사람에 따라 참으로 다르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모호하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단언하건 데 정답은 반드시 있습니다. 그 정답을 찾아가는 시발점은 바로 당연하다고 통용되는 지금 이렇게 묻는 거예요. 

                       “이거 정말 당연한 거 맞아?” 


예를 들어볼까요? 

제가 직장생활을 시작했던 시기는 벌써 20년쯤 전입니다. 


출처 : https://brunch.co.kr/@kyheo11/12


제가 다닌 회사에서 회식은 1차로 고기와 소주, 2차로 마른안주와 맥주, 3차로 노래방이 불문율이었습니다. 

그리고 리더께서 옆에 앉으시면 안주 수발을 들던 것이 당연한 신입사원의 롤role이었어요. 리더께서 “위하여~~!”을 외시치면 저는 후딱 소주한잔을 마시고, 마늘을 좋아하시는 취향을 반영하여 고기한점에 마늘 2개를 넣은 적당한 크기의 쌈을 준비해서 드렸더랬죠. 이게 그 당시에는 당연한 문화였어요. 그런 걸 잘 하는 신입사원이 눈치 좀 있는 신입사원이었습니다.


자, 그런데 지금도 이 현상이 당연한가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팀의 단합과 소통을 도모하려는 의지는 과거의 그것과 동일하지만, 결코 행태는 당연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이런 사회적 현상은 그 세대의 문화를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문화의 생산과 소비주체는 당연히 바뀝니다. 그리고 그들의 성장환경과 사회문화는 그들의 사고방식과 삶의 방식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되죠. 같은 공간에 다양한 계층이 살아가지만 각기 바라보는 지점은 다릅니다.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예요. 중요하다고 인식하는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예요. 그래서 과거에는 무리가 되지 않던 언행들이 지금에는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아무 에게도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누군가에게 치명적인, 혹은 작은 문제가 될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이처럼 “나에게 당연한” 언행들이 나와 조직, 그리고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를 고려하는 노력을 윤리민감성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두에게 당연한”이 아니라 “나에게만 당연한”
이란 부분에 방점을 찍는다는 거예요. 


나의 경험 총량의 가치가 누군가 에게도 동량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가치관이 다르고 경험치가 다르게 성장한 누군가에게 나의 것이 옳다고 강요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입니다. 그러니 ‘나에게 당연한 것이 그에게도 당연할까?’를 고민하는 것은 윤리민감성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관계를 유연하고 개방적으로 이끄는 기본요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윤리민감성 키우는 방법1 – 아는 만큼 보입니다

시즌을 거듭하며 꾸준히 방영하고 있는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라는 TV예능 프로가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특징은 한 지역을 여행하면서 각 분야 전문가들이 관련된 다양한 역사적 사실과 이면의 인문학적 지식을 수다로 풀어냅니다. 그들의 얘기를 듣고 있자면, ‘예전 수학여행으로 갔던 경주가 저렇게 멋진 곳이었어?’ 혹은 ‘며칠 전 심드렁하게 지나친 토성이 그런 의미였어?’ 싶습니다. 그들의 수다를 듣고나서 다시 돌아보면, 그저 관람용 유적이었던 것이 과거에서 살아 돌아와 나에게 말을 거는 듯합니다. 건축물이 품은 역사적 진실과 숨겨진 이야기가 건축물에 가치를 더하기 때문입니다. 아는 만큼 세상은 보입니다. 내가 피사체에 얼마나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느냐에 따라 카메라에 담는 피사체의 구도는 변화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피사체의 가치를 월등히 드러낼 구도를 찾기 마련이죠. 우리의 눈을 통해보는 많은 피사체들 또한 마찬가지로 우리가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가 피사체의 가치를 결정짓습니다. 


출처 : 위키백과



우리는 사회문화적 현상을 바라볼 때도 이와 동일한 관점을 가져야합니다. 

현상을 보이는대로 보지 말고, 현상 뒤에 숨겨진 역사적 진실과 현상을 이끈 동력의 이유를 알고자 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아는 만큼 그 가치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사회문화적 현상의 의미는 윤리적가치를 통해 재평가됩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윤리적 가치는 사회문화적 영향으로 조금씩 진화합니다. 마치 생물 같습니다. 이유는 사회문화적 가치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창조해내기 때문이죠. 그래서 알아야 합니다. 


요즘 미세먼지가 극성이죠. 봄철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4계절내내 걱정을 해야 하는 환경속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심지어 미세먼지를 사회재난으로 인정하는 법제화를 검토한다고 하니 미세먼지는 더 이상 우리 일상과 떨어뜨려 바라볼 수 없는 이슈입니다. 그런데 미세먼지 나쁨 경보에도 우리 주변에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 다니는 분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왜일까요? 왜 미세먼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마스크를 쓰면 답답하다는 이유에서죠.

그런데 만약 공기중에 있는 미세먼지가 눈에 보인다면 어떨까요? 심지어 징그러운 벌레의 모습을 하고 있다면 어떨까요? 아마도 미세먼지 마스크없이 외출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입니다. 왜일까요? 

이 또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해로운 것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죠. 

가시적 물체 혹은 현상에 대해서 사람들은 직접적인 감정과 함께 대응행동을 실천합니다. 반면에 비가시적 물체나 현상에 대해서는 무감각해지고 남의 얘기처럼 멀게만 느낍니다. 


그러나 기억해야해요.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라는 단순한 사실을 말입니다. 


또한 눈에 보이지 않다고 해롭지 않은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다만 우리가 자각하지 못할 뿐, 해로운 것은 우리 바로 옆에 존재합니다. 


우리 주변의 비윤리적 행위도 이와 같습니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그 행위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까지 원래 그래왔기 때문에 그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잘 몰랐다고 해서 비윤리 행위가 보편적으로 수용되지도 못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민감하게 비윤리적 행위에 대해 자각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 자신을 잠재적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우리 사회의 건전성을 수호할 수 있습니다.

다시 미세먼지 얘기로 돌아와봐요. 

미세먼지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세가지예요. 그날의 미세먼지 농도수위를 미리 알아보는 것이 첫번째입니다. 외부활동을 미리 디자인하는 거죠. 그리고 지나친 미세먼지 농도라면 가급적 외출을 자제하여 피하는 것이 두번째 방법입니다. 그러나 꼭 나가야 한다면 미세먼지 마스크 등을 이용하여, 피해를 최소화하는 노력이 세번째 방법이예요. 


우리가 일상 속 비윤리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도 이와 동일합니다. 

우선 비윤리 행위가 무엇인지 미리 알아보는 것이 첫번째입니다. 그리고 일상을 둘러보며 적용해보는 거죠. 민감성을 가지고 말입니다. 만약 주변에 비윤리 행위가 있다면 가급적 피하는 것이 두번째 방법입니다. 그 상황뿐 아니라 행위자와의 만남도 자제하며 피하는 것이죠.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면, 제도적 장치와 주변인의 도움을 받아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세번째 방법입니다. 

어때요? 일상 속 비윤리적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이 어렵지 않죠? 일상에서 갑작스레 비윤리적 상황에 직면했을 때 이3가지 방법을 따르면 외부적 위험으로부터 당신과 소중한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이런 의문이 들지 모릅니다. ‘피한다고 해결되는게 아니잖아’ 맞아요. 피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내용은 2번째 장에서 좀더 심도 깊게 살펴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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