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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영 Aug 03. 2020

[윤리에세이] 윤리민감성을 높이는 3가지 방법-3

윤리민감성을 높이는 방법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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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민감성 키우는 방법 3 – “왜?” 라고 묻기

윤리적 가치는 사회 문화적인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그래서 동일한 행동이 소속된 사회의 문화적 환경에 따라 다르게 가치평가가 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는 동일하지만, 가치의 수혜자와 가치의 기준은 사뭇 다릅니다. 예를 들어 “약자에 대한 배려”는 보편타당한 윤리적 가치관이죠. 그러나 노예시대의 약자에 대한 개념은 지금의 그것과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노예시대에도 약자를 배려하는 것은 옳은 일이었습니다만 그 약자에 “흑인”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백인 어린이와 여성들만 배려의 대상이었죠. 

출처 : 위키백과



지금은 피부색으로 인간의 존엄이 구분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러나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을 선언하던 1863년 이전에는 당연하지 않았습니다. 노예는 가축과 마찬가지인 사유재산의 일종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입니다. A.링컨 대통령은 “왜 흑인은 노예로 살아야 하는 걸까?”라는 의문을 품었고 그 물음이 단초가 되어 세상을 보다 윤리적으로 진보시켰습니다. 


출처 :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waterheat&logNo=220133848250&proxyReferer=https:%2


노예해방 이후 비폭력투쟁으로 흑인들의 인권을 신장시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마틴 루터 킹 목사도 흑인차별이 당연하던 시절 “왜 흑인은 차별받아야 하지?”라는 의문을 품었습니다. 그리고 그 물음을 시작으로 흑인차별법이 폐지되기에 이릅니다. 이는 모든 차별은 옳지 않다는 시각을 확장시키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에 이릅니다. 


앞서 언급한 A.링컨 대통령과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아무도 선뜻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왜?”라고 물었습니다. 늘 당연하게 생각된 것이 실제로 당연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합리적으로 의심하며
“왜?”라고 묻는데
주저함이 없어야 합니다. 


지금 나에게는 불편함이 없지만,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을 주는 현상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현실적인 기준이 아닌 보다 보편적인 관점에서 사회와 주변을 바라보고, 가치판단을 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왜?”에 기반한 건강한 의심은 사회의 건전성을 유지해내는 역할을 합니다. “왜?”에 기반한 건강한 의심은 함께 살아가는 이 사회를 보다 안전하게 만들어주는 모터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그 모터가 멈추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주시해야 합니다. 그 모터가 나를 비롯한 우리의 소소한 일상을 지켜줄 것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성능 좋은 필터의 안경이 필요하다

얼마전 지인과 함께 가까운 근교로 산책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평소 시력이 좋지 않은 저는 다른 사람들보다 눈부심을 심하게 느끼는 편이예요. 그래서 늘 선글라스를 챙겨 다닙니다. 그날도 카페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데 눈이 너무 부셔서 선글라스를 쓰고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습니다. 선글라스를 통해 보는 톤 다운된 풍경은 마치 TV속 화면을 보는 듯 조금의 거리감이 느껴졌어요. 그때 함께 커피를 마시던 지인이 저에게 선글라스를 벋고 한번 자연을 보라고 권하더군요. 그 풍경이 그 풍경이지 하는 심드렁한 마음으로 선글라스를 걷어내고 자연을 바라봤는데요, 지금까지 내가 본건 무엇이었지? 싶을 정도로 전혀 다른 모습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갈색으로 보정되어 톤 다운된 색이 아닌, 짙은 초록에서부터 옅은 초록이 그라데이션되어 있는 모습이랄까요? 각 개체들의 고유의 색이 빛과 조화를 이루며 그렇게 말갛게 보일 수 없었습니다. 날것 그대로의 자연색이라는 표현이 딱 맞을 것 같았어요. 그제서야 지인이 권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출처 : https://m.hotsunglass.co.kr/product


우리는 모두 각자의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봅니다. 

누군가는 빨간색을, 누군가는 노란색을 그리고 또다른 누군가는 파란색을 당연한 세상의 색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요. 그러나 이 세상의 색은 빨간색도, 노란색도, 파란색도 아닙니다. 각 개체의 고유한 색이 주변과 조화를 이룬 색이 올바른 색입니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왜곡된 색깔의 안경을 쓰고 있다면 전혀 다른 가치와 의미로 인식될 수밖에 없습니다. 왜곡된 안경을 벋고 세상을 바라봐야 합니다. 아니, 내가 왜곡된 안경을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합리적인 자기 의심을 해봐야 합니다. 그래야 나에게는 당연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가능성을 수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저는 시력이 좋지 않아서 안경 없이는 1m 앞도 잘 보지 못합니다. 

대학시절 눈이 나빠도 안경을 쓰지 않고 다니던 저는 종종 앞서 오는 선배들을 알아보지 못해 본의 아니게 인사를 못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의도치 않게 인사도 안 하는 건방진 후배가 되어버렸는데요, 몇번의 충고를 듣고 제가 취한 행동은 당장 안경점에 달려가 콘택트 렌즈를 맞추는 것이었습니다. 렌즈를 착용하고 난 후부터는 앞서 오는 선배를 알아보지 못해 인사를 건너뛰는 불상사는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안경을 안 쓰고 다니던 때에는 바로 앞의 돌뿌리도 보지 못해 넘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습니다. 무릎이 성할 날이 없을 정도였는데요, 이 또한 렌즈를 착용하면서 완전히 해결되었습니다. 


우리사회의 건전성도 이와 맥을 같이 합니다. 우리가 건강하고 안전하게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성능이 좋은 윤리안경을 착용해야 합니다. 왜곡 없는 윤리필터를 갖춘 안경을 착용해야 의도치 않은 윤리적 문제를 방지할 수 있습니다. 의도하지 않은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습니다. 왜곡없이 정교하게 세상의 작은 부분까지 살피므로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윤리적 노력이 필요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진짜 이유는 그 피해자가 바로 저나 당신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나의 안전한 오늘과 내일을 보장하는 방법은 신뢰할 수 있는 안전한 사회망을 만드는데 있습니다. 느슨하고 성근 안전망이 사고를 유발하거나, 원천적으로 막아내지 못할 수도 있음을 인지하는데 있습니다. 성근 안전망 틈에 다친 사람의 고통을 공감할 수 있어야,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촘촘한 안전망으로 보수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야 말로 다음 번 희생자가 될지도 모를 저와 당신의 안전을 보장하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입니다. 


우리는 절대 무소불위의 강자가 아닙니다.
모두가 상대적인 사회적 약자입니다.
그러므로 윤리적 가치판단과 의사결정은 더 이상 ‘하면 좋은 잉여의 것’이 아닌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것’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저와 당신의 안전한 일상을 지켜내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다음세대의 안전한 일상을 지켜내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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