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싫어해본 경험이 있는가?
지난 여름이었다.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간혹 놀이터나 마트에서 보면 눈인사를 하며 지내던 아줌마(?)가 있었다. 하루는 놀이터에서 애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한눈에 봐도 우리 아이보다 3-4살은 많아 보이는 아이가 둘째 아이를 밀치는 것이 보였다.
둘째 아이는 자기보다 몸집이 큰 아이에게 밀려서 대자로 누워 울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아이의 태도에 있었다. 되려 우리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보다 못한 내가 달려갔다. “왜 애를 밀치니? 그리고 실수라도 밀었으면 너보다 어린 아이인데 일으켜 세워줘야지”라고 다그치자 그 아이는 되려 나에게 화를 낸다. “얘가 내 앞에서 알짱대잖아요!” 그 태도가 너무 기가 막혔다.
“아까부터 내가 계속 보고 있었는데 네가 얘 옆으로 와서 밀쳤잖니? 너 어디 사니? 엄마 어디 계시니?” 다그치자 그 아이가 “아이 씨. 짜증나게!” 그러더니 울기 시작했다. 너무 당황하고 무엇보다 갑자기 우는 이유가 이해가 안되었다. 그리고 뒤를 보니 이유가 이해되었다. 그 애 엄마가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를 보고 혼날까 봐 먼저 우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엄마가 얼굴만 알고 눈인사하던 그 아줌마다.
난 우리 아이도 아이지만 그 집 아이가 걱정되어서라도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그리고 그 엄마의 사과나 훈계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 엄마는 “애들이 그럴 수도 있죠.”라며 아이 손을 이끌고 사라진다.
정말 황당했다. 그리고 그 순간 다짐했다. ‘다시는 아는척하지 말아야지’라고……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봐도 여간 억울한 게 아니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무시당한 것 같아 자존심도 상했다.
나는 어떻게든 복수를 하고 싶었다. 내가 계획한 복수는 이랬다. 내가 그 엄마와 아이에게 얼마나 실망했는지, 그리고 당신들이 잘못했음을 깨닫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눈이 마주칠 기회가 있으면 보기 좋게 “무시”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받은 자존심의 상처를 회복하고 싶었다. 주로 놀이터나 마트, 그리고 아파트 산책로에서 마주치니 이때를 기회 삼아 보기 좋게 무시해줘야 했다.
그때부터 나는 집 문을 나서는 그 순간부터 주변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그 아줌마가 있을까 싶어서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주위를 살피는 모습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주변을 의식하는 내 시선의 반경은 지극히 좁아지고 있었다. 그렇게 시선의 반경이 좁아지자 행동이 제한을 받기 시작했다.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졌다. 그리고 누군가를 의식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이런 행동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요하는지를 말이다.
잠깐 아이들과 산책을 다녀와도 나는 금새 피곤해졌다. 그래도 상처받은 나의 자존심을 생각해서는 어떻게든 복수의 기회를 노려야만 했다.
드디어 놀이터에 나갔는데 그 아줌마가 보였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시선을 돌리며 눈이 마주치기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찰나의 순간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나는 새초롬한 표정으로 그 시선을 ‘무시’했다. 그리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정말 통쾌했다. 그리고 그녀의 반응이 너무나 궁금했다. 슬쩍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그녀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좀 전과 같은 평온한 표정으로 동행한 다른 아줌마들과 즐겁게 수다를 즐기고 있는 게 아닌가? 도대체 난 뭐한 것인가 싶었다.
사실 난 그녀에게 상처를 되돌려 주고 싶어 상처 주는 것을 계획하고 준비하고 언제가 될지 모를 그 결전의 순간을 위해 매일 긴장하며 살았다. 그런데 그녀는 정작 내가 그렇게 상처를 돌려주려고 했다는 사실도 모르는 듯했다. 그러나 나는 그 사람에게 받았던 상처와 수모의 순간을 떠올리며 그 고통을 다시 경험해야 했다.
그리고 상처를 주는 부정적인 상황을 끊임없이 훈련했다. 그 훈련을 하면서 나의 감정이 어땠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통쾌하거나 시원하지 않다. 오히려 감정이 더 팍팍해 지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