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반창고가 필요한 순간
몇 해 전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책이 출간된 적이 있다.
저자는 물이 단어에 반응한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했다. 몇 개의 물병에 물을 조금씩 덜어 담고, 각각 다른 단어를 적어 물병에 붙여 두었다. 그 단어는 ‘사랑해’,‘미워’,’천사’,’악마’,’고마워’,’짜증나’ 등의 상반된 단어들이었다. 24시간을 방치해 둔 후 물을 얼렸다. 그리고 그 결정을 현미경으로 살펴보았는데, 그 결과는 우리도 잘 알고 있는 그대로다.
긍정적인 말에 노출된 물의 결정은 예술작품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모양을 갖추고 있었다. 반면 부정적인 말에 노출된 물의 결정은 모양조차 갖추지 못하고 어그러져 버렸다. 이 만큼 긍정과 부정의 기(氣)는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의 몸은 70%이상이 물로 되어있다. 그리고 이 물은 긍정과 부정의 기에 쉼 없이 영향을 받는다.
동의보감에 “통(通)하지 않으면 통(痛)이 온다”라는 말이 있다. 원만히 소통하지 못하면 고통이 온다는 말이다. 우리의 몸을 흐르는 물이 바로 혈(血)이다. 그런데 그 혈속에 이물질, 즉 혈전(血栓)이 생기면 혈관을 막게 된다. 그리고 막힌 곳은 재빨리 뚫지 않으면 터지거나 괴사된다. 그리고 우리는 심혈관 질환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 스트레스임을 잘 알고 있다. 부정적인 감정으로 상처받은 우리 몸의 물은 소통을 방해한다. 결국 건강을 해치고 만다.
다시 우리의 감정으로 되돌아 와보자.
우리는 누군가를 싫어할 경우 그 사람을 생각하면서 화를 경험하고, 그 화를 다시 되돌려 주고자 한다. 그런데 그 화를 가장 먼저 경험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나 자신이다.
화를 내면 낼수록 화가 더 나는 것을 경험해봤을 것이다.
내가 내밷는 부정적인 말과 감정이 나에게 가장 먼저 상처를 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복수를 결심했지만 결국 내가 더 상처받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누군가가 나에게 독화살을 쐈다고 가정해보자. 너무 아프지만 누군가가 나를 음해했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민다. 그래서 나는 화살을 부여잡고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바라보고 소리지른다. 그리고 누구냐고 잡히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경고한다. 그리고 그 사람을 잡으러 뛰어간다.
그러는 사이 화살촉에 묻어 있던 독은 이미 내 몸에 퍼져버리고 만다. 어쩌면 그 사람을 잡기도 전에 죽을지도 모른다. 내가 누군가로부터 버림받고 상처받았다는 사실은 독화살과 같다. 그리고 그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당연한 감정이다. 그러나 우리를 분노하게 하는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결코 우리 자신에게 이롭지 않다.
아니 해롭다. 그 사람 때문에 상처받았는데, 그 사람을 미워하므로 내가 더 상처받는다는 것은 뭔가 정말 억울하다. 정작 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나만 그 감정에 매달린다는 것은 더 우습다. 그러니 그 사람을 증오하고 뛰어가 잡는 것이 우선인지, 아니면 독화살을 먼저 제거하는 것이 우선이지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상처에 반창고를 붙이는 용기
상처는 어떻게든 우리에게 흔적을 남긴다. 간혹 그 상처는 내가 꺼내보기 힘들 정도로 버겁다.
나의 오른쪽 눈썹에는 꿰맨 상처가 있다. 초등학교 1학년때 생긴 상처이니 지금은 이미 아물었다. 그러나 지금도 그 상처를 보면 다쳤던 그때가 생생히 떠오른다. 공터 담벼락에서 야구놀이를 하던 동네오빠들 뒤를 언니들과 지나가다 유난히 작은 나를 발견 못한 타자가 휘두른 야구 배트에 맞았다. 그리고 바로 나는 병원으로 이송됐고 14바늘을 꿰맸다. 어린 나이에 응급실에 누워 봉합수술을 경험한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상처의 흔적은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때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비단 물리적인 상처만 우리를 아프게 할까? 얼마 전 방영된 드라마 ‘미생’에서 동기들에 비해 빠르게 승진하고 일과 리더십에 있어서도 똑소리나는 워킹맘을 보았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을 정도로 일에 매달리고, 팀을 살뜰히 챙기던 그녀는 팀원들에게서 많은 힘을 얻었다. 그러나 그녀가 아파서 병원이 입원하자 팀원들의 반응이 조금 달라진다. 한편으로 그녀가 병가로 회사를 그만두기를 바라는 듯하다. 사실 그녀의 팀원들은 그녀의 자리를 탐내고 있었다. 평상시에는 그녀를 따르고 의지하는 듯 했지만 결국 직장동료관계 이상은 되지 못했다. 이 사실을 안 그녀의 마음이 어땠을까?
이 드라마를 보면서 과거 내 모습이 보여서 많이도 울었다. 그리고 나와 함께 했던 나의 팀원들을 생각해봤다.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일을 많이 배우겠다고 친목을 도모하던 그들이었는데, 회사를 그만둘 무렵쯤 그들은 다른 사람들 같았다.
나와 함께 하는 것을 꺼려하고, 심지어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말은 전혀 하지 않았다. 야속하기만 했고 그들을 믿었던 만큼 상처가 컸다.
이렇게 내가 경험한 배신과 외면에 대한 상처는 비슷한 상황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더라도 그때의 아픔을 고스란히 가져온다.
회사에서 잘린 상처, 우리 아이가 소통의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는 상처,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한 상처. 이런 관계 속에서 오는 상처들 역시 아문 것처럼 모여도 그 상처를 보는 즉시 그때의 고통을 불러온다. 그러나 그 상처를 숨겨두고 창피해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치료를 통해 개선시킬 것인지는 온전히 자신의 문제다. 의지의 문제다.
숨기지 말고 용기를 내서 그 상처에 반창고를 붙여보는 것이 어떨까?
계속 상처를 묻어둔다면 더 곪아버릴지도 모른다. 나의 상처를 내가 외면하면 그 누가 측은하게 생각하겠는가? 나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는 내 상처를 일단 한번 바라보고 덧나지 않게 반창고를 붙여보자.
고통이 조금은 사그라들 것이다. 그리고 상처로부터 기인한 열등감도 조금은 사그라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