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오늘도 수고했다

by 김혜영

흰머리가 생겼다.

“꺅~~” 세수를 하려고 앞머리에 핀을 찌르고 거울을 들여다봤는데 가장 먼저 눈에 띤 것은 다름아닌 흰 머리카락이었다. 이마에 삐죽이 튀어나온 흰 머리카락을 보고 갑자기 다른 곳에도 있지 않을까 덜컥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요리조리 살펴보니 정수리 쪽에 두어 개가 더 보였다. 너무 충격이었다. 세수하다 말고 비명을 지르는 나를 향해 남편이 걱정스레 물어왔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남편, 나 흰머리 났어. 어떻게 해?”

“난 또 무슨 큰일이 났다고……”

“큰일이지, 이게 큰일이 아니야?

“여보, 나이가 들면 흰머리가 나는 건 당연한 거야. 그건 놀랄 일이 아니라고”

태연하게 말하는 남편이 야속하기도 하고, 나의 충격을 공감해주지 못하는 것에 섭섭하기도 했다. 아무리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거울을 들여다봐도 충격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다시 거울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눈가의 주름도 어느 샌가 늘어났고, 얼굴의 볼살은 푹 꺼져 초라해 보였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었다. 정답은 아니지만 의술의 힘을 빌려야 되나 싶기도 했다. 눈 밑에 약간의 지방이 더 있으면 훨씬 더 젊어 보일 것 같다.

나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나이도 들어버리고, 그 만큼 고생하고 찌들어버린 모습이 보여 측은하게 느껴졌다. 더 속상한 것은 나의 몸은 고생하고 찌들어버렸는데 내가 이루어놓은 것은 무엇인가 싶은 상실감이었다.

무언가 바쁘게 쫓기듯 살아온 듯 한데 남은 것이라곤 초라하게 주름진 육체뿐인 듯 했다.

이런 생각이 들자 우울한 마음을 거둘 수가 없었다. 누구에게나 우울함을 극복하는 방법이 있겠지만, 나는 홈쇼핑을 보면서 대리 만족하는 방법을 종종 활용한다. 의류상품을 보고 있는데, 예전 학창시절 여신으로 불렸던 소피마르소가 광고하는 의류였다.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관리를 받으니 저렇게 아름답지, 역시 나도 의술의 힘을 빌리는 것이 좋겠어’ 마음속으로 다짐을 하던 차, 쇼핑 호스트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소피마르소는 화보촬영을 하면서 사진작가에게 특별한 주문을 했다고 한다.

바로 “저의 주름을 없애지 말아주세요.”라고 말이다.

여배우가 주름을 없애지 말아달라니…… 조금 놀랐다. 아니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그 말을 듣고 다시 그녀의 얼굴을 보니 주름이 눈에 보였다. 팽팽한 피부는 아니지만 그 나이가 주는 아픔과 성숙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피부였다.

20대의 여인들이 갖지 못하는 우아한 매력이 있다고 할까? 주름을 보기 전보다 더 아름다워 보였다.

그리고 생각해봤다. 그녀가 말한 ‘주름을 없애지 말아달라’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과거의 화려했던 모습도 지금의 모습을 위한 과정이다. 마찬가지로 과거의 초라했던 모습도 지금의 모습을 위한 과정이다. 과거를 인정하고 기억한다는 것은 나의 삶을 온전히 바라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내 모습이 어떻든 이 모습은 과거의 나로 인해 만들어진다.

누군가의 말처럼 5년뒤 10년뒤의 모습을 위해 노력하며 살아온 결과가 현재일 수도 있지만, 간혹 의도치 못하게 힘들게 살아온 결과도 현재이다. 어쩌면 소피마르소가 더 우아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그녀의 화려했던 과거뿐만 아니라 힘들고 괴로운 날들 또한 주름에 새겨놓았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봤다.

누구나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좋았던 크기만큼, 아니 몇 배 더 큰 크기의 힘듦과 아픔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성공이 더 가치 있고 아름다워 보일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어둡고 힘들었던 시간들을 잊어버린다면, 그 고통의 시간을 잃어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분명 행복함을 추구하지만, 힘들었던 고통의 시간들도 분명한 우리 삶의 일부분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그 아픔이 주는 성숙함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흰 머리카락과 얼굴의 주름은 단순히 세월이 흘러가면서 만들어낸 흔적이 아니라, 힘든 순간을 끈질기게 견뎌 내고 이겨낸 훈장일지도 모른다.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 나를 혼란스럽게 했던 사건들.

모두 돌아보면 흰 머리카락 하나를 더 만들어주고, 주름을 하나 더 새겨준 주체들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를 좀더 우아한 아름다움으로 가게 만들어준 주체들이다.

거울을 볼 때마다 늘어난 주름과 흰 머리카락으로 한숨을 내 밷었다면, 당신은 좀 더 성숙하고 아름다워지고 있다고 믿어보길 바란다.



노처녀의 불안함과 아줌마의 처연함 사이에서

요즘은 노산 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산부인과에 가보면 30대 중반을 훌쩍 넘긴 고령(?)의 산모들이 많다. 이유는 간단하다. 결혼 시기가 늦어졌기 때문이다.

그 중에는 ‘골드미스’라는 타이틀로 의도적으로 결혼은 늦게 선택한 능력자들도 있겠지만, 나 같은 범인들은 서른 살이 지나면 불안해지기 마련이다. 나는 서른 세 살에 결혼에 성공(?)했다. 그러나 결혼 전까지 부모님은 “네가 뭐가 못나서 아직까지 시집도 못 가느냐?”라고 한탄을 하시고, 명절이 되면 친척분들께서 “이제는 그만 재고 가야 되지 않겠느냐?”고 압박을 가하셨다.

사실 딱히 안 가려는 마음은 아니었지만, 아니 가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어디서 좋은 남자를 만나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너무 일에만 매달려서 연애세포가 퇴화된 게 아닌가 싶은 의심도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너무 먼 곳에서 찾지 말고 주변을 먼저 살펴보라 충고했다. 그래서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괜찮은 남자들은 이미 결혼했거나 임자가 있고, 임자가 없는 남자들은 내가 정말 싫어하는 타입들뿐이었다.

데이트상대가 없으니 상대적으로 일에 더 매진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일이 많아 데이트할 시간이 부족했다.

소개팅이라도 받아보면 다행이지만 이 또한 인맥과 나이에 많은 제약을 받게 되었다. 서른을 훌쩍 넘기게 되니 소개팅 횟수도 눈에 띄게 줄고, 소위 좋은 남자의 확률도 확연히 떨어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선 소개팅이 ‘역시나’가 되어 돌아오는 길에서, 나는 생선가게에 진열된 시들해진 생선이 된 느낌이었다.

이렇게 아등바등 결혼을 해야 하나 싶었다. 그러나 속속 결혼소식을 전해오는 친구들의 소식에 의기소침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하고 싶던, 아니 해야 했던 결혼을 드디어 했다. 그렇게 노처녀 딱지를 떼고 내가 받아 든 명함은 ‘아줌마’였다. 결혼과 동시에 첫째 아이를 임신하고 나는 짧은 시간에 너무나 많은 변화를 겪었다.

노처녀에서 아줌마로 신분이 변하고, 한 여자에서 한 남자의 아내와 엄마로 역할이 변했다.

나 자신의 본질은 그대로인데 내가 감당해야 하는 역할이 1년사이 너무나 많아졌다. 한 남자의 아내지만 역시 한 조직의 구성원이었던 나는 가정과 일이라는 큰 두 산을 함께 오르는 셈이었다. 결혼을 하면서 나 말고 챙겨야 하는 존재가 남편이 하나 더 늘었다. 내가 아니면 청소를 할 사람이 없고, 나 아니면 설거지를 할 사람이 없고, 나 아니면 빨래를 할 사람이 없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직접 하거나 참견해야 하는 일들로 바뀌어버렸다. 나의 라이프 스타일이 바뀐 것은 물론 가치관도 완전히 바뀌었다.

더구나 아이가 태어나자 나는 먹기 싫어도 아이를 위해 밥을 해서 먹여야 했다. 아이가 울면 왜 우는지 알아야 했다. 말 못하는 아이와 대화하고 눈을 맞추어야 했다.

결혼은 단순히 노처녀를 벋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결혼 전에는 이러다 결혼을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컸다면, 결혼하고 나선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내는 처연함이 더 커졌다. 결혼만 하면 뭔가 편안해지고 안정될 것 같았는데, 결혼을 하고 나니 책임지고 결정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졌다.

이 고비만 넘기면 이 수고스러움을 보상해줄 무언가가 기다릴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감이 있지만, 정작 또 다른 색깔과 모양의 고비가 또 기다리고 있다.

‘아기가 어린 이 시기만 지나면 좀 나아지겠지’ 막연하게 기대해보지만 유치원에서 또래들과의 어울림이 걱정되고, 학교성적이 걱정되고, 면역이 약한 게 아닌가 걱정되고, 키가 너무 작은 게 아닐까 걱정되고……

한 순간도 걱정과 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결혼 전이나 결혼 후나 나는 계속 흔들리고 있다.

그래서 생각해본다.

과연 노처녀의 불안함이 더 나을까, 아니면 아줌마의 처연함이 더 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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