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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화영 Jul 05. 2024

순서에 대한 생각

목적뿐만 아니라 순서도 중요하다.

지난 월요일에는 아이가 감기 기운이 있어서 아침 8시에 아이와 함께 병원에 다녀왔다. 감기약을 받아오고 아이는 그날 학교와 학원을 가지 못했다. 다음 날인 화요일 아침에는 학교 가는 것을 두고 아이와 심리적 실랑이를 했다. 나는 아이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지만 내심 학교는 갔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이미 내 마음속에서는 ‘이틀이나 학교를 빠지는 것은 안돼’라는 마음이 있었고 아이도 따라줬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면서도 아이의 결정을 존중해 줘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말 그대로 내적갈등이 생겼다. 결국 아이는 무거운 표정으로 학교에 갔고 점심 전에 조퇴하고 돌아왔다. 암묵적으로 아이에게 학교 가기를 강요한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 무척이나 불편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이런 상황들이 참 많이 생기는 것 같다. 아이의 생각을 존중해 줘야 한다는 것 vs 부모로서 올바르게 크도록 잘 알려줘야 한다는 것. 공부와 관련된 것이든 건강과 관련된 것이든 이런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어느 정도까지 아이가 원하는 것을 들어줘야 할까 항상 고민이 된다.


예전 회사에서 중요한 행사를 기획했던 적이 있었다. 많은 인원이 참여하는 큰 행사였다. 나의 리더인 상무님께서는 그 행사 프로그램에 반드시 포함되었으면 하는 것들이 반영하도록 나에게 요구하셨다. 행사 취지나 참석자들의 성향을 봤을 때 적합해 보이지 않는 내용이었지만, 상무님의 경험과 개인적 선호가 반영되도록 요구한 것이다. 상무님의 개취(개인취향)인 것 같은데 행사에 반영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행사 담당자로서 의욕이 떨어졌다. 나의 일은 결국 상무님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 드리는 것 정도의 의미로 느껴졌다.


팀장으로서 팀원들과 일하면서도 갈등이 되는 상황들이 많이 생긴다. 어떤 일에 대해서 팀장이 알고 있는 것을 잘 알려줘야 한다는 생각 vs 팀원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부딪친다. 팀장은 본인이 경험했던 것을 최대한 팀원에게 알려줘서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성과를 내도록 도와주려고 한다. 그러면서도 팀원의 생각을 존중해 줘서 일하는 재미를 갖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도 동시에 갖게 된다. 내적갈등의 순간이다.


“다른 사람을 감독하고 지도한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어떤 규칙을 강요하거나 자신의 지성과 능력으로 그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힘 있는 사람은 교활하지 않고 , '나서서 빛나지' 않으며, '총명함으로 다스리거나' 공포를 심어주지도 않는다. 유능한 지도자는 사람들을 그들만의 본성으로 이끈다.”
서양이 동양에게 삶을 묻다, 웨인 다이어


아빠의 역할, 팀장의 역할을 통해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아빠니까 아빠 생각대로 움직이는 아이를 기대하는 것일까? 내가 평가를 하는 리더니까 리더의 권위를 내세워 리더가 생각하는 대로 일하는 팀원이기를 요구하는 것일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아이의 행복, 팀의 성과와 팀원의 성장. 뭐 그런 것들이 아닐까.


“모든 사람들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무엇이 그들을 가로막고 있는지, 자신들의 꿈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감각을 지니고 있다. 다른 사람을 내버려 두라. 권위적이지 않은 당신의 리더십이 다른 사람들에게 각자 자신을 찾아가도록 영감을 불어넣고 있음을 즐겨라.”
서양이 동양에게 삶을 묻다, 웨인 다이어


사실 내버려두라는 것은 정말 어려운 말이다.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선 네가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신뢰가 생길 거니까 그때부터는 내가 믿고 맡겨 줄게. 먼저 잘하는 모습을 보여줘 봐라는 생각이다. 누가 나에게 그런 리더십을 보여준다면 별로 움직이고 싶지 않을 것 같다.


문제는 순서다. 순서가 잘못되었다. 행동을 보여줘 → 믿을게라는 순서를 바꿔야 한다. 반대로 먼저 믿을 때 상대는 행동으로 보여주게 된다. 이렇게 순서를 바꾸면 스스로 방학 숙제를 훌륭하게 해내는 아이, 맡은 업무를 책임감 있게 준비해서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팀원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

결국 리더가 목적한 바를 얻으려면 행동을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먼저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살아보니 그것이 맞는 순서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먼저 믿어 보는 것, 그러면 사람들은 각자의 방법을 찾고 그렇게 행동할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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