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걸지 마세요 휴식 중입니다

언택트 시대에 대처하는 법

by 온택

나는 낯선 사람과 말 섞는 것을 싫어한다. 나와 아무런 인연도 연관도 상관도 없는 사람과 굳이 대화를 통해 감정을 섞는 일은 고역이다. 이는 태생적으로 내성적이게 태어난 까닭에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노력을 해도 쉽게 바뀌지가 않았다.


어린 시절엔 사내아이가 사람 앞에서 소심하고 자기 할 말을 못 하니 엄마 아빠도 고민이 많으셨나 보다. 가끔 갈빗집 같은 데서 외식을 하면 '네가 직접 가서 콜라 주문해봐'라고 하던지 돈 오천 원을 쥐어 주시며 '혼자 빵집 가서 오천 원 치 빵 맞춰서 주세요 해봐'라고 하던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는 훈련을 시키기도 했다. 웅변 학원은 덤이다. 또 누군가에게 의견을 피력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말하기가 어려워 애써 참아버리거나, 친구에게 부탁해서 의사 전달을 하는 듯 조금은 쪼잔하면서도 비겁하게 살아왔다.


성인이 된 지금도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긴장되고 신경 쓰인다. 가령 대리 운전을 하면 기사님이나, 미용실에 가서 미용사님이나, 숍에서 옷 쇼핑할 때 종업원이나, 식당에서 밥을 다 먹고 결제할 때 사장님이나, 제발 나에게 대화를 안 걸어 줬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한다. 또 길을 걷다 우연히 오래전 동창이나 지인을 만나도 어색한 대화를 이어가기 싫어 애써 못 본 척을 하고 넘어간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이렇게 낯선 사람과 대면하여 말하기를 꺼려하는 나에게 요즘 들어 조금은 반가운 점은 바로 언택트의 시대가 열렸다는 점이다. 조금 조심스럽긴 하지만 내가 얻게 된 코로나의 반사 이익이라고나 할까? 최근 친구에게 디저트 선물을 주기 위해 베스킨라빈스를 다녀왔다. 입구 앞에 핑크색의 거대한 기기 3대가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무인 판매 기기였다.


“쿼터로 구매할게요”


“4가지 맛 선택해주세요~~~”


“음.. 먼저 오레오 쿠키 앤 크림 주시고요”


“….”


“….”


“네 그다음은요?”


이러한 어색하기 짝이 없는 대화를 4번이나 해야 하는 쿼터도 이제는 무인 판매기로 내가 알아서 주문한다는 점은 너무 편하고 좋았다. 이러한 이유들 덕에 워낙 무인 포스 기기들을 잘 다룰 줄 알아서 베스킨라빈스에서도 기기를 처음 만져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잘 사용하였다. (물론 일부 매장에서 선행 적용되었지만 코로나 이후 늘어난 점은 사실)


나름 장점도 있다. 길다가 말 거는 사이비 종교에

절대 걸릴 일 없고, 보험 같은 사기 거래를 당할 일도 없고, 어디 가서 바가지를 씔 일도 없다. 이리저리 사람들과 거미줄 같이 피곤한 인연으로 엮일 일도 없다. 이 시대 보기 드문 철벽남이다. 그래서 돌이켜 보면 참 내 주변엔 외향적이고 적극적인 친구들이 많은 것 같다. 나의 아내도 마찬가지다. 나도 모르게 기대고 의지를 하는 타입에 끌리는가 보다.


이런 나를 누가 보면 사람 앞에서 말도 못 하는 대인기피증에 사회 부적응자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을 힘들어할 뿐이지 어쩔 수 없이 맞 닥들 여야 하는 상황이라면 또 곧잘 해내어 왔다. 어릴 땐 학급 친구들 앞에서 장기자랑도 했고 대학시절에는 많은 공모전으로 사람들과 만남을 가졌다. 특히 회사 같은 곳에서는 다양한 업체 사람들과, 동료와, 그리고 고객사와 소통해서 결과물을 내야 한다. 그리고 만인의 앞에서 프레젠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이는 내 능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혹은 내 성격을 위배해서 한 행동들이다. 따라서 사회생활과 업무를 떠나 내 개인적인 사생활에서 만큼은 어릴 적 소심한 나의 모습으로 돌아가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조금의 휴식이 필요한 것이다.



말 걸지 마세요. 휴식 중입니다.




세상이 점점 다양한 이유에서 비대면화되고 있다. 첨단기술과 플랫폼들이 현재의 것을 다 적응하기도 전에도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이러한 세상의 변화에 내가 언제나 빠르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힘은 어쩌면, 어릴 적부터 소심하여 항상 다른 방안을 찾아다녔던 익숙함에서 온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