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소의 추억
고등학교 시절의 이야기다. 점심시간이 되면 함께 밥을 먹는 클래스 메이트들이 있었다. 우리는 항상 점심시간 1분 전부터 카운터에 들어가 땡 하는 종소리와 함께 급식소로 전속력으로 달려간다. 1등으로 급식소에 도착했을 때 진저리 쳐지는 쾌감은 일품이었다.
한날은 4교시 수업이 조금 늦게 마쳐 급식소에 늦게 도착한 날이 있었다. 이미 길게 이어진 줄을 보니 수업을 늦게 마쳐준 선생님이 야속했다. 이미 늦어진 점심시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배식을 기다리던 중 우리의 줄 바로 뒤에 김길동(가명)이라는 친구가 혼자 서 있는 걸 발견했다.
길동이는 소위 말하는 아웃사이더 기질을 보이는 친구였는데, 같이 밥을 먹을 친구가 없을 정도로 조용하고 내성적인 친구였다. 그리고 조금은 짓궂던 나의 친구 한 명이 길동이 에게 말을 건넸다.
“길동아! 왜 매일 혼자 밥 먹어? 오늘부터 우리랑 같이 먹자”
친구가 길동이가 혼자 있으니 머쓱할까 봐 괜히 장난 삼아 건넨 말이었을 것이다. 근데 다음날 점심시간 종이 치고 우리 반 앞에서 멀뚱멀뚱 서있는 길동이를 발견했다. 설마 진짜 올 줄 몰랐던 길동이가 보이자 친구들의 얼굴에서 당혹함이 느껴졌다. 그냥 친구가 농담 삼아 뱉은 말을 순수하게 진심으로 받아들인 길동이었다. 이렇게 길동이와 어색한 급식소 동행이 시작되었다.
함께 밥을 먹은 지 한 일주일이 흘렀을까? 점심시간 종이 쳤는데도 우리 반 앞에 길동이가 보이지 않았다. 무슨 영문인진 모르겠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들은 평소처럼 급식소로 뛰어갔다. 그리고 밥을 먹다가 친구 한 명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솔직히 길동이 데리고 다니면서 밥 먹으니까 부담스럽더라"
그리고 모두 녀석의 말에 동의하는 듯이 아무 말 없이 밥을 우걱우걱 씹어댔다. 친근히 장난 삼아 건넨 말에 순수하게 받아 드린 길동이를 보며, 뭔가 의도한 바와 달리 다른 사람들이 보았을 때 우리가 길동이를 가지고 놀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직접적으로 길동이에게 상처를 줄까 봐 '내일부터는 안 와주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할 수 있는 친구도 없었다. 그런데 길동이가 무슨 영문인지 나타나지 않자 비겁하게도 내심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길동이와의 인연을 뒤로 한채, 우리는 졸업 이후 대학생이 되어 뿔뿔이 흩어졌다. 학교라는 울타리에 갇혀 있다가 대학생이 되어 만끽하는 자유는 달콤했다. 갑갑하고 고리타분하던 고등학교 시절의 생각이 1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즐거운 20살을 보내며 행복해하던 어느 날, 미니홈피에 새로 업데이트된 한 비밀 망명 록을 읽고 한동안 가슴이 먹먹 해졌다.
No.1234 김길동 (2006.6.12 22:30)
나랑 같이 밥 먹어 줘서 고마웠어
전혀 예상치 못한 길동이의 방명록을 보며 한동안 긴 여운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우리의 의미 없는 행동을 진심으로 대해준 길동이었다. 그리고 뭔가 모를 죄책감과 스스로가 부끄러워 영원히 답글을 남길 수 없었다. 며칠간 우리와 함께 밥을 먹다가 교실로 찾아오지 않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을 길동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우리의 가벼운 한마디도 상대방에겐 진심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한동안 머릿속에서 그 날의 기억들이 떠나가지 않았다. 그 시절 순수했던 길동이와 조금은 철이 없던 우리들, 혹여나 우리의 행동이 길동이에게 상처가 되진 않았기를 바란다. 지금 쯤 길동이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