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의 목적

외갓집의 추억

by 온택

얼마 전 김장을 하러 외할머니 댁에 갔다. 지금은 두 분 다 세상에 계시진 않지만, 아직 그곳에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이 날은 아내와 함께 외할머니 댁에 있는 사진앨범을 꺼내 보았다. 먼지가 가득 쌓인 앨범을 보니 뭔가 보물 상자를 여는 듯 기대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 이모들 그리고 외삼촌의 어릴 적 모습을 보니 신기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90년대에 유럽 여행을 다녀온 모습도 놀라웠다. 앨범을 뒤로 넘길수록 현재 시대와 점점 가까워졌다. 그리고 앨범의 막바지 즈음 나, 누나, 그리고 동생의 우리 3남매 어린 시절 사진들이 보이자 생각이 깊어졌다.


당시의 시대는 지금처럼 버튼만 몇 번 누르면 얼굴을 마주하며 연락을 하는 세상이 아니었다. 그리고 교통 시스템도 열악해 빈번한 왕래가 어려웠던 시절이다. 그래서 엄마가 명절이나 집안 행사가 있을 시 친정에 와서 새로 찍은 우리 3남매 사진들을 주고 왔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사진들이 스크랩되어 아직도 앨범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보고 싶은 손주들을 사진으로라도 보며 흐뭇해하셨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얼굴을 그려보니 괜스레 마음이 뭉클해졌다. 이제 우리 엄마 아빠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된 입장에서 본인들의 손주들과 시간을 보내고 추억을 쌓는 모습을 보면, 참 나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는 많이 외로웠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외(外) 갓집이라는 표현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뭔가 친할아버지 집 보다 거리감을 느끼며 자라왔다. 실제로도 친할아버지와 보낸 시간보다 훨씬 적었다. 실제로 미디어에서도 외할아버지의 이미지는 뭔가 깐깐하고 엄한 이미지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와 달리 맞벌이 부부가 늘어남에 따라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할 경우 엄마가 심적 부담이 적은 친정에 맡기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오히려 외갓집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이들에게 더욱 친숙하다고 한다. 그리고 거리감을 만드는 외(外)라는 표현 대신 지역 이름이나 동네 이름을 대서 양가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구분 지어 부른다고 한다. 어느 쪽이 더 우위에 있고 더 가까운지 구분 짓지 않는, 아이들이 차별 없이 받아들이기에 좋은 표현인 것 같다.


김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하드에 저장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사진을 찾아보았다. 외할머니는 돌아가신 장례식날 사진, 그리고 외할아버지는 수척해진 모습으로 병마와 싸우는 모습뿐이었다. 미디어가 나름 발달되었던 순간에서도 많은 추억을 만들어 드리지 못하고 보내드린 것이 아쉽기만 하다.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나의 취업 걱정을 해주셨던 외할아버지. 지금은 취업도 하고 결혼도 해서 멋지게 자립한 나의 모습을 하늘에서 보며 흐뭇해하고 계실 거라 믿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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