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통기한에 유난히 예민하다. 하루만 지나도 입에 대지 않는다. 당일이어도 마음이 불편하면 아예 손도 안 댄다. 아내는 늘 말한다. “유통기한은 유통하는 기간일 뿐이야. 먹어도 괜찮아. 냄새도 멀쩡하잖아.” 맞는 말이다. 요즘은 ‘소비기한’을 따로 표기하는 식품도 많아졌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날짜가 하루라도 지나면 그 음식이 아무리 멀쩡해도 마음속 어딘가에서 ‘신뢰가 깨졌다’고 느낀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숫자 하나에 예민한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어릴 때부터 ‘선을 넘는 것’을 잘 못했다. 어디를 가도 이용 시간은 철저히 지켰다. 숙소 입실 시간, 퇴실 시간도 분 단위로 맞춰 움직이는 편이었다. 정해진 시간 안에 딱 맞춰 살아가는 것, 그게 나에겐 예의이자, 안심의 조건이었다. 유통기한도 나에겐 그런 기준선이다. 그건 단순한 날짜가 아니라, 그 음식과 내가 맺은 작은 약속 같은 것이다. 그 숫자가 말해주는 신뢰의 유효기간. 나는 그걸 넘기는 순간, 마치 내 손에 들어온 순간부터 쌓아온 신뢰가 무너지는 기분이 든다.
물론 모순도 있다. 치킨은 냉장고에 넣었다가 다음 날 먹기도 하고, 밖에서 사 먹는 음식은 언제 만든 건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식품에 붙은 숫자 하나엔 유독 민감하다. 돌아보면, 나는 숫자를 참 많이 믿고 살아왔다. 성적표, 순위, 통장 잔고, 회사의 점수표까지. 삶의 많은 기준을 숫자로 정리하며 버텨왔다. 그 숫자들은 때때로 나 대신 책임져주는 존재였다. ‘이건 기준치예요.’ 그 말 한마디면 내 불안을 타인에게 넘길 수 있었다. 내가 틀리는 게 아니라, 숫자가 그렇게 말했을 뿐이니까.
그러고 보면, 나는 느끼기보다는 해석하며, 판단하기보다는 기준을 따라 살아왔다. 그리고 그건 나름대로의 질서 속에서, 흔들리지 않기 위한 나만의 방식이고 때로는 세상을 버텨내는 나만의 안전띠이기도 하다. 아내는 오늘도 말한다. “그 숫자 하나 때문에 버려지는 음식이 너무 많아.” 우리 집 평화를 위협하는 건냉장고 속 조그만 숫자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