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와 함께 우리 엄마의 친정, 나의 외갓집으로 처음 김장을 하러 갔을 때의 일이다. 시골집 마당에 소금에 절인 배추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장독대 옆에서는 마늘과 생강 향이 진하게 풍겨왔다. 처음 그 풍경을 마주한 와이프에게 나는 어린 시절 이 집에서 뛰놀던 기억을 들려주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문득, 지금은 돌아가신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남겨둔 오래된 사진 앨범을 꺼내 보게 되었다. 앨범 표지는 낡아 가장자리가 해져 있었고, 비닐 커버는 뿌옇게 바래 있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선명하게 살아 있는 얼굴들이 있었다. 젊은 시절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이모들의 결혼식 풍경, 그리고 내 어린 시절 모습들. 심지어 내가 처음 보는 사진도 여럿 있었다.
와이프에게 설명하려고 펼친 앨범이었는데, 오히려 내가 빼앗듯 들춰보며 더 몰입하게 되었다. 사진 속의 나는 늘 엄마가 골라준 옷을 입고, 엄마가 손질한 머리 모양을 하고, 엄마의 손길이 담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금의 내가 아닌, 기억하지 못하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나도 몰랐던 나’였다.
그 순간 알았다. 삶은 우리가 기억하는 장면들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친척 어른들의 기억 속에도, 앨범 한 장 속에도, 때로는 잊혀진 순간 속에도 내 삶의 흔적은 남아 있었다. 그렇게 흩어진 조각들을 마주할 때마다 내가 살아온 세월이 하나의 긴 여행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역시 또 하나의 기록이 되고 있다. 언젠가 나의 자식들도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사진과 글을 발견하길 바라며, 나는 오늘도 핸드폰 셔터를 누른다. 그 기록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몰랐던 ‘또 다른 나’를 그들에게 전해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