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에 흐른 나의 사연

신입사원의 추억

by 온택

갓 취직한 신입 사원 시절, 당장 나에겐 자동차가 없었다. 그래서 엄마의 부탁으로 렌터카 사업을 하시는 이모가 차량 한 대를 대절해주셨다. 아무래도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대여기간이기에 서로에게 부담 없이 쓸 수 있도록 퇴역을 앞둔 가장 오래된 차를 내어주셨다. 인수받은 차량은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손님들이 거쳐간 흔적들로 가득했는데, 차량 외관의 긁힘과 찍힘 흔적들, 내부의 찢긴 가죽 시트와 왠지 모를 쾨쾨한 냄새가 그러했다. 다 양보할 수 있다 쳐도 가장 아쉬운 점은 작동되지 않는 오디오 시스템이었다. 그렇게 내가 운전 중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FM 라디오뿐이었다.


30~40분 정도 걸리는 출근 시간 동안 어쩔 수 없이 틀어 놓은 라디오엔 어색한 DJ의 목소리와 시끄러운 광고 들이 흘러나왔다. 처음엔 너무 적응이 되지 않아 주파수와 볼륨 버튼을 계속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우연히 좋아하는 노래가 흘러나올 때면 괜히 그날 하루는 기분 좋은 날이 될 것만 같았다. 어느새 DJ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로고송을 흥얼거리는, 소개되는 사람들의 사연에 공감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고 서서히 라디오를 듣는 것에 익숙해져 갔다.


하루는 회사에서 너무나 큰 실수를 한 적이 있었다. 신입사원이라 어느 정도 용납이 될 수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찔 했던 기억인데, 멘털이 탈탈 털려 그날 하루는 참 고된 날이었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오른 퇴근길의 라디오에선 흥미로운 주제로 청취자들의 사연을 모집했는데 바로 '나 회사에서 이 정도로 큰 실수를 한적 있다'였다. 매일 듣기 한 했던 라디오지만 왠지 오늘 있었던 나의 실수를 보내기에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정차 중에 주저리주저리 문자로 사연을 담아 보냈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보낸 사연이 라디오의 DJ의 입에서 흘러나왔고, DJ와 게스트들이 뽑은 최고의 사연으로 선정이 되었다. 아무런 기대도 생각도 없던 사연이 당첨되고 선물도 받게 되니 라디오의 재미를 알게 되어 버렸다. 이후 가끔씩 주제와 부합한 이야깃거리가 있을 때에는 문자 사연을 주저 없이 날렸고, 내 이야기가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올 때의 짜릿함을 즐겼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나는 새로운 자동차를 사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라디오 청취 경험도 정들었던 이모의 렌터카와 함께 떠나보냈다. 짧지만 강력했던, 6개월 간이라는 시간 동안 내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라디오 청취 경험. 지금은 내가 원하는 음악을 스트리밍 블루투스로 틀면서 다니지만 그 시절 라디오 사연을 보내고 사람들의 소식을 듣던 그때가 가끔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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