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앨범 정리
며칠 전 엄마가 사진 앨범을 주문해달라고 했다. 최근 집안 정리를 하며 필요 없는 것은 버리고 하다 보니 책장에 꽂혀있는 낡아버린 앨범이 눈에 밟혔나 보다. 한 권에 50장이 들어가는 사진 앨범 5권을 주문 넣어 드렸다. 근데 엄마 집으로 배송을 해야 한다는 것이 주소를 바꾸지 않아 나의 집으로 택배가 와버렸다. 그 주 주말엔 새 앨범을 가지고 엄마 집으로 향했다.
그동안 얼마나 수없이 열고 닫아 보았을까. 너덜너덜 해진 사진첩에서 세월의 깊이가 느껴진다. 아빠가 사진에 취미가 있어서 그런지 남겨진 사진이 제법 많은 편이다. 엄마와 함께 앨범에서 사진을 한 장 한 장 뜯어 가며 새로운 앨범에 시간 순대로 옮겨 나갔다. 일부 사진은 낡은 앨범과 거의 하나로 접착이 되어 커터칼을 이용해 도려내야 하기도 했다. 그리고 사진 하나하나에 엄마가 부연 설명을 해준다.
"이건 너희 아버지 현대 자동차 다닐 때 사택 공원에서 찍은 거다"
항상 고정된 시간 동일한 배경 익숙한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사진 앨범은 사진은 볼 때마다 새롭다. 특히 요즘 들어 느껴지는 감정이 있다. 분명 나의 어릴 적 모습이고 내가 맞지만 내가 모르는 나라는 점이다. 우리에게 기억이 없는 어린 시절은 오로지 남은 사진과 엄마 아빠의 증언으로만 알 수 있다. 그래서 가끔은 어릴 적 나의 사진을 빤히 보면서, '이게 진짜 내가 맞는 걸까?'라는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내가 모르는 나라는 것에 무언가 괴리감이 느껴졌다.
이런 경우도 있다. 한날은 엄마가 무엇 때문인지 없어서 아빠가 출근길에 대신 나를 유치원에 태워다 준 적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빠의 출근 시간과 유치원 개원 시간이 1시간 정도 차이가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개원하기 40분 정도 유치원에 일찍 도착해 나를 홀로 정문에 세워 두고 그렇게 출근을 하셨다 했다. 그때 혼자 멍하니 유치원 정문에 서있던 나를 떠올리 자면 아직도 아찔하면서도 죄책감이 든다고 한다.
"아빠, 난 그때 그런 일이 있었는지 아무런 기억도 안 나고, 현재에 아무런 지장도 안 준 것 같아"
라며 아빠에게 위로를 건넸다.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내 기억 속엔 남아 있는 일이 아니라서 그저 나에겐 생뚱맞기만 하다. 오히려 엄마에게 아빠의 말이 사실이냐며 팩트 체트 아닌 체크를 한다. 마치 역사적 사실을 교차검증을 하듯 당시 살았던 동네와 유치원 이름을 대서 카카오 맵에서 위치 추적을 해보며 과거의 나를 조금 더 마주해보기도 했다.
물론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릴 적의 사소한 일들이 지금의 나의 성향과 성격을 만드는데 일말의 영향이 없을 순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의 기억에 없다는 점, 나의 자발적인 행동이 아니었다는 점에 과거의 이야기를 들어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앞서 말했듯이 그저 신기하고 의구심이 들뿐이다.
"내가 진짜 그랬다고!?"
그리고 엄마 아빠라고 나의 어린 시절의 모든 날을 다 기억하고 계실리가 없다. 그래서 그때의 사진을 보며 회상하는 정도인데, 아주 가끔 가끔은 엄마 아빠도 간혹 잊고 지냈다가 순간 떠오르는 나의 이야기를 해줄 때가 있다. 그건 진짜 처음 듣는 나의 이야기라 엄청 신선하고 놀랍다. 과연 내가 모르는 나의 끝은 어디일까? 마치 시즌이 끝나지 않는 넷플릭스 시리즈물 같다.
그렇게 몇 시간에 걸쳐 앨범 정리를 마쳤다. 깨끗하고 정갈해진 새 앨범을 보니 개운하다. 동시에 익숙한 앨범이 속이 텅 비어 버려지는 것을 보니 뭔가 감정이 복잡하면서도 미묘하다. 약 35년의 세월을 묵묵히 버텨준 지난 앨범처럼 새로이 시작하는 우리의 앨범도 바쁜 일상에 쉼터 같은 역할이 되어주길 바란다. 판도라의 상자 같은 내가 모르는 나, 과거의 나는 아직도 새로워진 앨범과 엄마와 아빠가 존재하는 한 가끔 만날 수 있겠지.
나 지만 나가 아닌 하지만 나가 맞는 나인 듯 나 아닌 나 같은 나.
과거의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