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에
훈련소 수료 후 자대 배치를 받게 되니 적응해야 할 것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며칠간 정신없이 막내 생활을 하다 보니 언제부턴가 내무반의 디테일들이 파악되기 시작했다.
내무반의 왕고 에게는 다양한 특권이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오디오의 선곡권이다. 일과가 끝난 오후, 각층 내무반 별로 다양한 음악들이 흘러나온다. 내무실의 BGM은 오로지 각 내무반의 왕고의 선곡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등병일 때 우리 내무반의 왕고는 R&B를 좋아했다. 항상 그루브 있는 흑인 음악을 틀었다. 특히 당시 개봉된 제이미 폭스, 비욘세 주연의 드림걸스 OST와 존 레전드의 Once Again 앨범을 자주 틀었다. CD가 녹을 정도로 들어서 그런지 전 앨범의 가사까지 다 외워졌다. 그래도 고무적인 것은 당시 선임 덕분에 존 레전드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다.
R&B 왕고가 전역을 했다. 이젠 다름 실세가 본인의 취향에 맞는 선곡을 한다. 이번엔 Rock을 좋아하는 선임이었다. 특히 My Chemical Romance를 좋아했는데, Three Cheers for Sweet Revenge 앨범과 The Black Parade 앨범을 주야장천 틀었다. 10대 군가 외우듯 전곡이 주입되었다.
이외에도 힙합을 좋아하는 선임, 일본 시부야계 음악을 좋아하는 선임, 국내 인디 밴드 음악을 좋아하는 선임 등 그들의 다양한 취향과 감성을 적응하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흘렀고 나에게도 선곡권이 왔다.
내가 병장 2호봉이던 2007년 11월, 토이의 6집 정규 앨범 THANK YOU 가 릴리즈 되었다. 난 중 학겨 2학년 때부터 유희열의 팬이었다. 그의 감성을 좋아해서 차기 앨범을 손꼽아 기다려 왔었는데 적절한 시기에 새 앨범이 발매가 된 것이다. 나의 말년엔 희열 옹의 따뜻한 겨울 감성을 모든 부하 후임들에게 주입시켰다.
상명하복 체계와 수직구조의 끝판왕 군대라는 공간에서 선임의 강압적인 오디오 선점이 의도하지 않게 다양한 음악, 몰랐던 뮤지션을 많이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조금은 협소했던 음악의 스펙트럼이 넓어지게 되었다.
현재 스트리밍 어플의 플레이리스트가 질려 새로운 뮤지션의 음악에 갈증을 느낄 때면 가끔 그 시절 내무반 DJ들이 떠오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