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공원 탐방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버님의 전화를 받았다. 서울 고모님께서 돌아가셔서 같이 가자고 하셨다. 83세이신 고모님은 10년전 중풍이 온 후 가족들의 극진한 간병으로 간간이 걸어다니시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뵌 것이 꽤 오래전이다.
아버님을 모시고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상주가 맞아주신다. 나이 든 상주를 보고 고모부인 줄 알았는데 사촌형이었다. 내 기억속의 고모와 고모부는 영정사진처럼 옛날의 젊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고모부께서는 내 생각과 달리 너무나 나이드신 노인이셨다. 아버지보다 3살 젊으시니 86세이신데 자주 뵙지 못해서 인가보다.
고모부는 내 어린시절의 이런 기억으로 남아 있다. 서울 단독주택에 살고 계셨는데 사촌 3형제가 우리 형제 또래라서 자주 만났었다. 추운 겨울날 서울 집에서 사촌들과 함께 5명이 한 이불을 덮고 자는데 나는 가운데는 답답해하는 성격이라서 맨 가에서 이불을 덮었다. 남자애들이니 가만히 이불을 덮고 있지 않았을테고 한참 자다가 추운 느낌이 나서 깨보니 이불을 다 뺐겨서 덮지 못하고 있었다. 소심한 성격이라 이불을 당겨오지 못하고 그냥 다시 잠든 척했다. 한참 그러다가 누군가 깨서 이불을 활짝 들추더니 다시 고르게 펴 덮어 주시는 것이다. 고모부였다. 그때 따뜻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고모부는 아내가 없는 세상에 즐거운 일도 삶의 의욕도 없다고 하시며 눈시울을 붉히신다. 그 말을 들으며 나도 눈물을 참기 어려웠다. 어느 작가가 삶은 무덤을 향한 행진이라고 했다. 행진은 멈출 수 없으니 어렵더라도 욕심을 버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