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서, 엄마를 위해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한 환경에서 어떻게든 견디고 성인이 되었다. 성장하는 기간동안 엄마와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언제였지, 엄마는 내가 10대, 20대 초반까지 그 긴 시간동안 아침 일찍 출근하고 밤 늦게, 대략 오후 10시 반쯤에 집에 왔었다. 아빠는 9-6이었지만 글쎄, 아빠와 좋았던 기억이 적어서 너무 희미한데. 그렇지만 노력했겠지.
엄마에게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듣기로는 엄마가 10대 때였나 일찍 돌아가셨고, 아빠도 마찬가지로 친할아버지는 전쟁으로 사망. 친할머니는 아직 생존중이지만 친할머니는 아빠의 삶을 송두리째 본인 이익을 위해 이용했던 사람이라 사실 좋은 감정이 하나도 없다.
아무튼 엄마나 아빠도 살아오면서 보통 가족이라면 받을 수 있는 애정, 인정욕구를 충분히 받지 못했을거다. 그리고 내가 태어나고 나를 키우면서 어떻게든 최대한 잘해주려고 했겠지만 그들이 내게 하는 행동의 대부분은 사랑이 아니라 철저한 감시, 소유욕을 행사하는 것 뿐이었다.
자식한테 이런 평가를 받는 걸 부모 두 사람이 알게 된다면 엄청 서운하겠지. 최선을 다 했을거다. 어떻게든 먹여살려준 것, 힘든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애정을 준 건 정말 진심으로 감사하지만 성인이 된 이후로도, 경제적 활동을 하는데도 나를 소유물로 보며 나에게서 독립하지 못하는 두 사람이 이제 나에게는 삶의 짐이 되어버렸다.
아무튼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지난 주 금요일 퇴근 시간에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토요일, 일요일에 반찬 주러 자취방에 오겠다고 하길래 나는 주말 내내 1박으로 친구들과 송년회를 한다고 얘기했더니 또 누구랑 송년회하냐, 어디서 하냐고 심문을 시작하면서 또 숨이 막히기 시작했다. 아무튼 자취방에 오지 않기로 합의하고 어제 토요일에 송년회를 하고 일요일에 첫차를 타고 집에 와서 자고 있는데, 갑자기 엄마의 카톡이 울렸다.
읽자마자 바로 전화를 걸었는데, 왜 제멋대로 행동하냐고 따지니
"너랑 나랑 그렇게 먼 관계야? 엄마면 딸 집에 당연히 자유롭게 들락날락 할 수 있는거지"
라는 한 마디에 그 동안 참던게 폭발해서 엄청 화를 내고 전화를 끊었는데..
결국에는 현관문 앞까지 와서 초인종을 몇번이나 누르길래 현관문 앞에 가만히 서서 가만히 노려보고 있었는데, 현관문을 기어코 열고 들어오자마자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말 없이 (아마 반찬이 담긴) 가방을 던지고 갔다. 부모 입장에서 내가 나쁜 개자식이 된 건 사실이고 이 생각이 들자마자 해방감이 들었다.
와, 나 드디어 진짜 진심으로 화를 냈어. 속으로 끙끙앓지않고말야 하고.
나는 어떻게든 살고싶어서 물리적 독립을 했고, 정말 느렸지만 정신적 독립도 최근에 완전히 할 수 있게되었는데 엄마에게는 무리인 것 같다. 내가 거의 평생을 심리상담, 정신과약 투약을 하며 정신질환과 싸웠듯이 엄마도 한 평생동안 쌓였던 걸 전문가에게 다 털어놓아보는게 어떻겠냐며 심리상담센터를 알려줘도 죽어도 가지 않겠다고 한다. "나는 늦었어." 하며.
저 한 마디를 들었을 때 엄마를 묶어서 의사 앞에 데리고 가고싶었는데 더 이상 그럴 의지도 생기지 않았다. 안쓰러운 감정도 이제 다 사라져버렸고.
오늘 분노하며 화를 낸 것도 엄마와 나의 건강한 거리두기를 위해서였다. 자식과 부모 사이에도 예의와 선이 필요한데 엄마 포함 40년 후반대에 태어난 부모와 같은 기성세대들에게 자식이란 자식의 소유물 포함한 자식 그 자체 = 본인 소유라는 인식이 너무 강해서 자식이 할 수 있는 건 화를 내고 지랄을 할 수 밖에 없다. 분노하며 지랄을 해도 알아들을까말까 하고 본인 하고싶은 대로 행동하는데 자식 입장에서는 부모와의 관계를 안전하게 유지하려면 할 수 있는게 화를 내는 거 말고 또 있나?
어느 부모들이든 자식이 몇살이 되든 애로 보인다던데 개인적으로 부모들도 자식들에게 본인의 사랑(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내가 널 얼마나 아끼는데! 같은..)을 가장한 욕심, 지배욕을 좀 자각하고 다스리는 공부가 필요하다고 본다. 여러분 그거 사랑 아니예요.
왜 자식을 독립된 개체로 보지 않는거지, 평생 케어해야 할 개체로 보는 게 비정상적인데.
내가 애를 안 낳아봐서 그런걸까, 애 낳을 생각은 없고 병적으로 자식에게 집착하고 싶지도 않고.
나는 내 우울한 기질을 자식에게 물려주기싫다.
아무튼 아마 이번 일로 나는 집안 사람들과 연이 끊기지 않을까? 사실 나는 이미 연을 끊었는데 이 사람들은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내 걱정하지않아도 된다. 나는 여태까지 나를 제거하려고 했었던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살아왔고 또 살아갈거다. 부탁이니 부디 본인들의 여생만을 생각하길 바란다. 막말로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며 본인들만 생각해줬으면 좋겠지만 40년대 후반 출생한 부모에게 그런걸 바라는 건 너무 과한 욕심이지.
집 계약도 곧 끝나가니 나도 기간에 맞춰서 나라를 떠날 준비를 해야겠다.
가족간의 사랑이란 뭘까. 딸 입장에서는 가스라이팅, 착취라고 생각해. 너무 왜곡된 생각으로 보인다면 맞을거야. 괜찮아 나는 살면서 정상인 적이 없었어 여러 착오, 실수를 하다가 이제서야 정상인으로 연기하며 살고있으니까. 그렇지만 사랑이란 뭘까.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