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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트워프에 누워있는 네로와 파트라슈

by 파묵칼레

브뤼셀에서 50분가량 버스를 타고 달리자, 플랑드르 지역의 중심지인 앤트워프(안트베르펜)에 도착했다.


벨기에 북부 지역의 경제, 문화 심장부이고 세계 다이아몬드 무역의 중심도시로도 유명하다. 역사적으로도 가치가 크고 음악 예술, 패션으로 역동적인 도시이다.


그로테 마르크트 광장에 들어서니 유서 깊은 건물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중앙에는 브라보 동상이 기세 당당히 서서 우릴 맞이했다.


로마 병사인 브라보가 사람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거인 양타곤의 손을 잘라서 던졌다는 흥미로운 전설이 전해진다. 그 장면을 형상화한 동상에서는 거인의 잘린 손목에서 물줄기가 뿜어져 나온다. 괴기하면서도 기억에 오래 남는다.


‘안트베르펜’이라는 도시 이름도 이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안트‘는 손을, ’베르펜‘은 던진다는 뜻이다. 거인의 손을 던진 전설에서 도시이름이 비롯되어진 것이다.


동상 뒤편에는 아름다운 시청사에 자리하고 있고 벨기에 국기가 바람에 펄럭인다. 광장의 건물들은 서로 다른 시대의 양식으로 꼭대기마다 황금 동상들이 세워져 있어 분위기를 화려하게 조성한다.


그 사이로 나의 시선을 장악한 것은 앤트워프 성모 대성당이었다. 유럽 스타일 성당으로 플랑드르(플랜더스)지방에서 가장 높은 첨탑을 자랑하는 이 성당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만큼 웅장하였다. 내부에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이 예술이다. 루벤스, 반 다이크 등의 대가들의 예술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여기는 『플란더스 개』에 나오는 네로와 파트라슈의 마지막을 맞이한 장소이기도 하다. 유년 시절부터 늘 마음속 깊이 묻어있던 슬픈 만화의 배경지를 직접 마주하니 말로 할 수 없는 그리움이 밀려왔다. 순수한 네로가 오매불망 동경하던 루벤스의 그림이 바로 성모마리아 대성당 안에 있다.


세월이 흘러 머리가 희끗희끗한 지금 그 시절 애달팠던 만화영화를 다시 들추어 본다.


때 묻지 않은 맑은 영혼을 가진 소년 네로와 그 곁을 끝까지 지키는 충견 파트라슈의 아름다운 우정 이야기가 마음을 울린다.


네로는 앤트워프 도시의 아름다움에 감동해 화가의 꿈을 키웠지만 가난이라는 현실의 벽을 피하기는 어려웠다. 그 시절 대부분 만화 주인공처럼 부모가 없고 가난하였다.


가난해도 너무 가난했지만 바르고 성실했던 소년은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안타깝고 귀한 인물이었다. 앤트워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뭇 어린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성당 내부에는 네로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루벤스의 명작 제단화가 있다. 금화 한 닢이 없어 그림을 볼 수 없었다니 그의 가난이 얼마나 처절했는지 짐작되었다.

성당에는 루벤스의 대표작 『십자가에 올려지는 그리스도』와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가 걸려있다. 갖은 고난을 견디다가 마지막 순간, 크리스마스이브 성당에서 두 명작을 보게 된다.


네로는 예수의 사랑과 고통이 담긴 그림을 바라보며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그때 눈보라 속을 헤치고 탈진한 파트라슈가 나타났다.

“파트라슈, 드디어 봤어. 루벤스의 그림 두 점을. 너무너무 행복해.”

“마리아님, 감사드립니다. 이 그림을 봤으니 저는 이제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네로는 파트라슈를 꼭 껴안으며 속삭인다.

“저기 가면 그분의 얼굴을 볼 수 있어.”

“그분은 우리를 갈라놓지 않을 거야.”


그리고 파트라슈와 함께 깨어나지 못할 잠이 든다. 찬송가가 흐르며 천사들이 내려와 잠든 네로와 파트라슈를 하늘로 데려가며 슬픔을 더한다.


잔잔한 여운 속에 많은 어린이의 가슴을 적시며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만들어 낸 이야기에 매료되어 그토록 진심으로 울어 본 적은 없다.


네로는 평생소원이 루벤스의 그림을 보는 것이어서 그 순간 편히 행복하게 잠들었을 것이다. 성당 앞 광장에 네로와 파트라슈가 함께 껴안고 도로를 이불 삼아 덮고 잠들어있는 동상이 있다. 가슴이 뭉클했다.


『플란더스 개』는 1980년대 많은 사람의 가슴을 애처롭게 했던 만화이다.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만화를 보면서 네로와 할아버지가 행복해지길 간절히 바랐다.


또 권선징악의 믿음도 강했던 시절이었던 만큼 우리는 그들의 선행에 상이 주어지길 기도했다.

그러면서 그들이 살고 있는 마을을 동경하며 궁금해했고 거보고 싶었다.


이제 앤트워프에 서서 돌 이불을 덮고 잠든 네로와 파트라슈를 두 손으로 감싸안았다. 유년 시절 품었던 애틋한 감정이 되살아났다.


네로와 파트라슈가 지난한 세월 속에 겪은 어른들의 탐욕과 냉대와 무관심에 우리는 울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 그런 현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사회복지가 더 단단하게 구축되어야겠고 우리는 세상의 어두운 쪽으로 시선을 돌려 관심과 따듯한 사랑을 심어야 한다.


네로의 선한 마음은 인간성이 상실 되어가는 오늘날 여전히 강한 메시지를 준다.


앤트워프 여행은 끝났는데 발길이 떨어지질 않았다.

돌 이불을 덮고 누워있는 그들의 모습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머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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