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에 나에게 외국은 곧 ‘미국’이었다.
그 시절 우리에게 각인된 미국이라는 나라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미국 여행을 앞두고 문득 유년 시절의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미국 선교사가 운영하는 유치원에서 따듯했던 분위기, 찬란한 크리스마스 트리, 친구들 등 그런 유년의 파편들을 모으며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LA 공항에 도착하여 광활한 모하비 사막을 지나다 보니 새삼 ‘미국은 정말 넓구나’하는 감탄이 나왔다.
바스토우에서 먹은 정통 스테이크의 진한 풍미와 아울렛에서 이국의 자유로움을 느끼며 한 쇼핑은 잊을 수 없다.
라플린으로 이동하여 긴 여정의 피로를 풀었다. 산책 도중에 호텔 입구에서 옛 동료를 우연히 만났다. 맥주 한잔을 나누며 함께 카지노의 휘황한 불빛 아래에서 웃음꽃을 피웠다.
다음 날 불가사의한 캐니언 국립공원을 보기 위해 아침 일찍 서둘렀다.
캐니언의 거대한 숨결을 마주할 생각에 설레었다.
그랜드캐니언
물길 따라 계절의 정취가 깊다. BBC가 선정한 죽기 전에 꼭 봐 야할 1위로 선정된 곳에 발을 디디니 감회가 새롭다.
애리조나 사막 800리를 가르며 캘리포니아만으로 속절없이 흘러가는 콜로라도강의 급류가 만들어낸 위대한 자연의 대작은 그랜드캐니언.
눈길 가는 곳마다 웅혼하고 신성함이 담겨있다. 470km나 되는 거대한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내 시야에 도저히 담을 수 없는 대협곡의 서사와 마주한 순간 말을 잃었다. 협곡마다 변화무쌍한 지구의 생성 과정이 켜켜이 쌓여있다.
지구의 20억 년에 걸친 지질학 역사를 접하니 내 인생의 궤적은 한 줌도 안되었다.
핑크 지프를 타고 그랜드캐니언을 둘러보았다. 멀리 펼쳐진 협곡은 콜로라도강의 침식으로 깊이가 무려 천5백m나 된다.
끊임없는 침식으로 깊은 강, 급류가 형성되고. 협곡은 점점 더 깊어만 간다.
가파른 언덕에 앉아 두 번 다시 못 볼 것처럼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하지만 사진으로는 결코 담아 낼 수 없는 가경, 눈으로 마음으로 꼭 보아야 할 진풍경이었다.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경비행기를 타고 협곡을 한눈에 담는 순간이었다.
지상에서 결코 볼 수 없는 장대한 협곡의 파노라마가 펼쳐졌다. 경이로움에 젖어 협곡 위를 떠다녔다. 타임머신 타고 과거의 깊디깊은 곳으로 여행하는 듯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협곡에는 수십만 년 전 지형과 선사시대 인류의 흔적이 남아있다.
발아래로 콜로라도강이 빚어낸 놀랍고 신비로운 걸작이 펼쳐졌다.
끝이 없이 이어지는 협곡 사이를 40여 분간 비행하며 웅장한 자연에 심취하니 눈 깜짝할 새 흘러갔다.
물과 바람 그리고 오랜 세월이 엮어낸 숨이 멎을 듯한 웅호한 전경에 가슴이 벅찼다.
아름다운 그랜드캐니언의 위용에 치유 받는 더할 나위 없이 찬란한 시간을 보내며, 내 짧은 생도 허투루 보내지 말아야겠다는 각성이 든다.
페이지로 이동하여 또 다른 걸작을 만난다.
홀스슈 밴드와 앤털로프 캐니언
콜로라도강줄기가 긴긴 세월 협곡을 휘감아 돌며 만들어낸 곡류 지형, 그 말발굽 모양의 절경이 홀스슈 밴드이다.
거대한 말발굽을 닮은 협곡이 푸른 콜로라도강과 어우러져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펜스도 없는 300M 높이의 낭떠러지에 서니 아찔하고 다리가 후들댔으나, 유유히 흐르는 콜로라도강을 보노라니 두려움과 경이로움이 교차 되었다.
사진으로 보았지만 내 눈앞에 전개된 풍광은 카메라에 담아낼 수 없는 장대한 광경이었다.
그다음 찾은 앤털로프 캐니언은 별세계였다. 아메리카 원주민인 나바호 부족의 땅, 바람과 폭우에 의해 만들어진 사암 협곡 앤털로프 캐니언은 자연이 조각한 성전 같았다.
빗물이 고여 계곡으로 흘러 들어가며 만든 소용돌이가 바위를 깎아낸 것이다.
나바호 인디언들은 이곳을 보호하고 신성시한다.
탐방객은 반드시 인디언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 빗물의 흐름에 의해 땅속에 만들어진 협곡은 우천 시에는 순식간에 물이 차올라 위험에 대비해 재빠른 대피가 필요하다.
땅속으로 약 20M가량 내려가면 좁다란 길이 이어졌다. 좁고 깊은 협곡의 머리 위에 비현실적인 공간이 연출된다.
틈새로 흐르는 빛이 바위에 닿아 굴절하며 환상적인 붉은 계열의 빛으로 협곡은 장관을 이룬다. 형언할 수 없는 빛과 색이 시시때때로 변형하며 표현하는 찬란한 향연을 잊을 수 없다.
앤털로프 협곡은 좀 특별했다. 모든 소리가 메아리로 삼켜져 고요함이 깔려 있었다.
자연이 빚어낸 예술 작품 앞에 서서 섬세한 자연의 손길을 느끼며 나의 존재를 되돌아보았다.
전 세계 사진작가들의 성지라 불리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빛과 색이 연출한 마법 세계인 지상 최대의 박물관이었다.
페이지에서 케납으로 이동하여 오늘 하루의 장엄함과 감동으로 가득 찬 가슴을 추슬렀다.
다음날 브라이스로 이동하였다.
브라이스 캐니언
인디언의 정령이 깃들어 있다는 이곳은 거대한 돌탑들이 신의 경지에 이른 듯 아름다운 돌 숲을 이루고 있다.
‘후두(Hoodoo)’라 불리는 수백만 개의 붉은 돌기둥 첨탑들의 전시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먼 옛날 이곳은 바다였다. 후두는 바다 아래 쌓여있던 모래와 흙이 땅 위로 솟아 이루어진 탑이다.
유구한 세월 속에 비와 강물에 모래는 쓸려 내려가고 암석만 남아 브라이스 캐니언의 장대한 역사를 만들었다.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바람에 깎인 신비한 돌탑 사이로 내려갔다.
붉은빛의 후두들과 사이에 핀 바위 꽃, 거친 바위틈에서 자라는 나무들이 숭고하고도 경이로웠다. 서서히 정교하게 다듬어 놓은 자연의 표현력에 전율하였다.
햇살이 내리쬐니 돌기둥 마을은 그윽하게 빛을 뿜는 별세계였다.
이 별세계의 후두들도 지속되는 풍화작용으로 붕괴하여 없어지게 될 거란다. 지금도 풍화작용은 계속 일어나고 있어 그 모습을 새롭게 만들고 있다.
돌탑들의 웅건한 전시장은 햇살. 시간 그리고 바람이라는 큐레이터에 의해 만들어진 달작이었다.
자이언 캐니언
깎아지른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믿을 수 없는 그림이 펼쳐진다. ‘신들의 성지’라 불리는 웅혼한 협곡을 드라이빙으로 천천히 둘러보았다.
자이언 캐니언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오버룩으로 갔다. 가파르고 거대한 절벽에 둘러싸인 장엄한 협곡은 와일드하고 웅장하였다.
협곡 사이를 타고 내려오는 바람결의 신비로운 기운에 심취해 알 수 없는 세계로 떨어졌다.
붉은색 하얀색 등 형형색색의 사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천 년 동안 땅을 침식하여 자이언 캐년을 만들어낸 버진 강줄기가 흐른다.
버진강물의 마법으로 물길 따라 길은 더욱더 활기차다.
맑고 고운 자연의 소리로 가득 채워지고 자이언 계곡의 물줄기는 한층 더 물다발을 만들며 힘차게 흐른다.
침식과 풍화로 오랜 세월 담금질하여 대자연의 걸작품을 창출하였다.
우리의 삶도 잠식과 마찰을 이겨내고 올라서야 완작이 만들어지지 않는가.
시간이 흘러 흘러 강산이 변하고 강물이 흘러 흘러 양옆을 치면서 계곡의 모양을 바꾼다.
만물의 소생과 계절의 변화를 만드는 위대한 자연이 이루어낸 엄청난 협곡이다.
절벽과 바람, 버진강물이 손을 맞잡고 만든 천상의 대협곡에 경탄을 보낸다.
황금도시 Las Vegas
‘사막의 목초지’에 황금도시를 만든, 한 번쯤 가보고 싶었던 곳 라스베가스에 입성하였다.
24시간 잠들지 않는다는 도시, 상상을 초월한 화려한 호텔들이 메인스트리트를 물들이고 있었다. 현실이라 믿기지 않을 만큼 환상적이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초호화 시설을 갖추었다.
호텔마다 테마가 있고 독특한 외관을 지녀 볼거리가 풍부하였다. 멋진 궁전 같은 곳에서 쇼도 관람하였다.
카지노에는 남녀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게임에 몰두하고 있다. 우리도 여러 가지 게임을 하며 즐겁게 보냈다.
유럽의 아름다운 곳들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공간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베네시안 호텔의 산마르코 광장과 벨라지오 호텔의 정원과 분수 쇼는 라스베가스를 대표하는 아름다움이었다.
밤이 되자 라스베가스는 불야성을 이루며 또 다른 세상으로 변했다.
불빛이 쏟아지고, 음악과 전 세계에서 모여든 사람들의 환호성으로 거리가 가득 채워졌다.
정말 밤이 깊어갈수록 더욱 눈이 부시다. 잠들지 않는 화려한 도시 속에서 삶의 뜨거운 기운을 느끼며 새로운 에너지가 차올랐다.
웅장한 대자연과 공유한 시간은 내게 감사함을 알려줬다.
함께 여행하며 공감하는 이들과 서로 설렘을 나누는 일이 여행임을 새삼 알게 된 시간이었다.
무변광대한 대자연 앞에 선 작고 시시한 존재의 성찰과 자각의 시간이었지만,
작고 시시함 속에 삶의 소중함이 있음을,
그래서 짧은 우리의 시간을 더욱더 겸허하게, 간절하게 살아야 함을 깊이 되새겼다.
여행 내내 자연이 준 순간순간의 감동은 아직도 가슴속에서 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