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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그림에 새긴 영혼

by 파묵칼레

풍부한 문화예술로 유명한 암스테르담은 예술 애호가들에게 그야말로 천국이다.


Museum Plein 주변에는 국립 박물관, 반 고흐 미술관, 시립 미술관, 스테텔릭 미술관 등 크고 작은 다양한 뮤지엄이 즐비하다.


그중에서도 반 고흐 미술관은 세계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며, 고흐 작품을 700여 점 소장하고 있다.


이곳은 반 고흐의 삶과 예술적 유산을 온전히 담은 특별한 공간이다.


반 고흐 미술관은 예약제로 운영된다. 입장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어 현지 거리 음식 맛집을 둘러보았다.


‘COME HUNGRY LEAVE HAPPY’ 문구가 나의 발길을 끈다. 여행객과 현지인들이 줄지어 서 있다. 딸아이는 여기가 이름난 햄버거 맛집이란다.


평범한 햄버거와 제로 콜라, 그리고 따듯한 커피 한잔이었지만 쌀쌀한 날씨에 맛보는 소소한 행복은 긴 여정의 기억으로 남았다.


마침내 나의 위시리스트의 하나인 반 고흐 미술관으로 향했다.


네덜란드 출신 화가 반 고흐는 1880년부터 그림을 그렸다. 1888년, 그는 도시를 떠나 햇살 가득한 프랑스 남부 아를에 정착하여 왕성한 작품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나 신경성 질환과 우울증으로 그의 삶은 늘 퍽퍽하고 불안했다.


그럼에도 절망과 모진 고통 속에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 짧지만 치열했던 10년의 세월 동안, 그는 수많은 걸작을 남겼다.


결국 생의 끝자락에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고흐의 붓끝에서 쏟아진 열정의 작품들은 불멸의 빛을 발하고 있다.


고흐가 떠난 후 동생 테오에게 상속된 유산으로 1973년 반고흐 미술관이 탄생되었다.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반 고흐를 기억하는 열혈 팬들과 애호가들로 전시실은 북적였다.


동생 테오가 보내주는 생활비로 어렵게 생계를 꾸려가며 그림을 그린 반 고흐의 생애, 예술가로서 성장 과정을 시대별로 전시하고 있다.


책에서 스쳐보던 그림들 앞에 서 있는 나는 고흐와 함께하는 듯했다.


작품 옆에 오디오 가이드가 한국어로 작품의 포인트를 요약하여 설명을 들려주어 이해가 한결 쉬웠다.


전시된 모든 작품이 고흐의 역작들이지만 그중에서 몇몇 작품은 진한 감동을 남겼다.


반 고흐가 진정으로 애정했던 작품은《감자 먹는 사람들》이다. 가난한 농민들의 지난한 삶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담은 작품이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낸 농민들의 무게감이 전해진다. 자신의 가난과 고통스러운 시간이 투영된 작품이어서 더 애잔하게 다가온다.


《Almond of Blossom》은 동생 테오의 아들, 조카의 탄생을 축하하는 아몬드가 만개한 그림이다.


진정 기뻐하며 행복해했을 고흐의 얼굴이 꽃 속에 어른거린다. 봄에 가장 먼저 꽃피는 아몬드나무 그림에는 새 생명을 축복하는 사랑이 가득하다. 사랑하는 동생의 아들을 아끼고 좋아함이 오롯이 전해진다.


《해바라기》작품은 전시실 위층에서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벽면에 영상으로 소개되었다.


고흐 생에 가장 평온했던 시절이 녹아있는 대표작이다. 평소에 해바라기를 좋아하던 고흐는 아틀리에를 해바라기로 가득 채우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작품 중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고 열정이 온전히 스민 작품이다.


《까마귀 떼 나는 밀밭》은 삶의 끝자락에서 그려낸 마지막 작품이다. 황량한 벌판에 복잡다단한 자신의 심경이 표출되어 있다.


붓의 터치가 거칠고 굉장히 어수선하며 까마귀와 어두운 하늘의 색깔에서 폭풍전야 같은 불안감이 엄습한다. 고흐의 고독, 쓸쓸함, 험난함 등 정서적 격동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화폭에 진하게 깔려있는 고흐의 절망에 치달은 극한 마음이 이입되어 먹먹했다.


우리가 쉽게 접한 반 고흐 불멸의 명작들이 각고의 노력과 연습으로 이루어 낸 결실임을 알았다.


고통을 씹어가며 온갖 열정을 바쳐 구상하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는 작업을 하여 작품을 완성했다는 것도 깨달았다.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들도 전시되어 있고 음성도 들어볼 수 있게 되어있다. 극심한 고독과 빈곤, 그리고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그는 그림을 통해 자신의 진실을 토해내려는 집요함이 묻어있다.


고흐의 고백은 강렬하다.

'나는 그림을 통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보여준다. 의도된 비사실적 그림이 오히려 사실적 그림보다 진실에 더 가깝다.'


‘지금 내 작품이 팔리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언젠가는 거기에 사용된 물감보다 그리고 내 인생보다도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예술에 대한 끝없는 애착으로 찬란한 대작을 이 지구상에 남겨 감동과 영감을 불어넣었다.


그의 그림은 시대를 아우르며 사람들의 마음에 울림을 주어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이 그를 찾아오고 흠모한다.


최악의 환경에서 물질적으로, 정서적으로 열악한 삶을 예술로 승화하여 후대에 길이 빛날 영광이 되었다.


비록 생전에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촉촉이 울린다.


고흐의 영혼이 내 마음에 깊이 새겨지며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눈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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