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회계 실무이야기 1편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우리 주변에서 암호화폐에 투자하는 개인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개인은 자유롭게 거래소에서 가상자산을 사고팔 수 있고, 메타마스크나 디센트 같은 지갑에 토큰을 전송받아 디파이 등에 참여하며 수익을 얻는 활동도 가능하다. 게다가 2027년까지는 가상자산으로 얻은 수익에 대해 과세가 유예된다 하니, 개인에게는 꽤 매력적인 투자수단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국내 기업들의 사정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왜 그럴까?
"이제 법인의 가상자산 투자가 가능해진다!"라는 기사 제목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는 법인이 가상자산을 보유할 수 없었다는 말일까?
그런데 넥슨, 위메이드 같은 상장사가 비트코인을 보유해 큰 수익을 냈다는 기사 또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 기업들은 어떻게 코인을 보유할 수 있었을까? 도대체 무엇이 진실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법인의 가상자산 보유는 법적으로 금지된 상태가 아니다. 사실 일반 기업의 가상자산 보유 자체는 지금까지 한 번도 금지된 적이 없다. (단, 금융회사는 제외)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2018년 1월 시행된 가상통화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에서 "법인이 가상자산 거래 주체인 경우"를 주요 자금세탁 의심 거래로 명시하면서, 은행의 거래소 법인 실명계좌 발급을 사실상 막아버린 것이다. 이 가이드라인은 2021년에 종료되었지만, 이후에도 정부의 규제 기조로 인해 여전히 법인 명의의 실명계좌 발급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즉, 법적으로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관행상 거래소 계좌를 만들 수 없어서 사실상 가상자산을 자유롭게 보유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상장사를 포함한 많은 기업들이 가상자산을 보유해 왔고, DART에서도 가상자산 보유내역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법인이 가상자산을 자유롭게 사고팔기 위해서는 거래소에 법인 명의의 계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계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연계된 은행에서 실명확인이 가능한 가상자산용 입출금 계좌를 개설해야 한다.
거래소는 특정금융정보법(이하"특금법")에 따라 고객 실명확인을 위한 실명계좌 연동이 필수이며, 은행이 해당 법인에 대해 자금세탁 위험을 판단해 계좌 개설을 허용해야만 거래소 계정 생성이 가능하다. 하지만 현재까지 은행들이 이러한 실명계좌 개설을 사실상 제한해 왔기 때문에, 법인이 국내 거래소를 통해 직접 가상자산을 매입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것이 기업의 가상자산 보유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었다.
미국의 마이크로스트래티지가 비트코인을 대량 보유하고 투자 전략을 공개하는 지금, 한국에서는 "법인이 드디어 가상자산을 보유할 수 있게 된다"는 기사가 나오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그렇다면 거래소 계좌 없이 가상자산을 보유한 기업들은 어떻게 매입했을까?
DART 상 상장사의 재무제표에서 확인되는 가상자산 중 상당 부분은 해외 자회사가 보유한 가상자산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국내 별도법인이 직접 보유한 사례도 분명 존재하며, 나 또한 실무에서 그런 사례를 경험했다.
법인의 가상자산 거래가 비교적 자유로운 해외에서 매입하는 것은 아닐까? 문제는 송금이다. 가상자산을 해외에서 매입하기 위해서는 해외로 '송금'을 해야 하는데, 정부의 외환 규제를 고려했을 때 송금 사유에 '가상자산'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송금자체가 불가능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보다 일반적인 방식은 개인 또는 다른 법인과의 1:1 계약을 통한 직접 거래(P2P)를 하는 것이다.
특금법상 VASP(가상자산사업자)는 "영업성"과 "고객을 대신하여" 수행하는 활동인지 여부가 핵심이다. 따라서 반복적인 거래가 아니고, 고객을 대신하지 않고 당사자가 직접 자기 계산으로 하는 P2P 거래는 VASP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다.
단, 이 방식은 매우 제한적이다. 사업상 필요한 특정 가상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상대방을 적시에 찾아 계약을 체결해야 법적으로 문제없이 거래가 성립된다. 현실적으로 이런 거래는 간단히 성사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과거에는 시장에 이런 니즈를 충족하는 OTC 업체들이 많았다. 형식적으로는 자기 계산으로 하는 P2P 거래였지만, 사실상 수수료를 받고 고객을 대신해 중개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한 차례 문제가 된 것인지 요즘은 시장에서 그런 업체를 찾기가 어려워졌다.
또 다른 예로 과거에는 거래소들이 보유한 BTC 등을 매각하려는 니즈가 있었다. 거래소 영업을 하면서 수수료 수취 등으로 획득한 가상자산이 쌓여있는데 거래소도 역시 '법인'인지라 이를 현금화할 방법이 제한적이었던 것. 이런 매도하고자 하는 거래소 법인의 니즈와 가상자산이 필요한 일반법인 간의 니즈가 맞아서 P2P 거래가 이루어진 사례도 있었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서비스를 개발할 때 테스트나 서비스 운영 목적으로 가스피(Gas fee) 토큰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규모가 크다면 회사차원에서 P2P로 매입하는 것이 경제적이고 통제하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1회성 소량이라면? 현실적으로 가상자산 거래소에 계정이 있는 개인이 구매 후 경비처리하는 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 금액적으로 중요하지 않으므로 일반 소모품을 구매하는 프로세스를 준용하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한도, 빈도 증빙 범위는 회사 정책으로 잡아둘 필요는 있다. 결론만 놓고 보면 단순하지만, 실무에서는 자주 등장하는 골치 아픈 이슈다.
우여곡절 끝에 거래 상대방을 찾아 P2P 방식으로 가상자산을 매입했다고 하자. 그런데 법인 명의의 거래소 계정이 없다면, 이 자산을 어디에 보관해야 할까?
개인이 가상자산을 보유할 때처럼, 담당자가 만든 메타마스크 지갑으로 일단 전송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상태로 보관한다면, 보안상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내부에서도 자주 나오는 걱정 중 하나다.
거래소 계좌가 없다면, 법인이 선택할 수 있는 보관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신뢰할 수 있는 커스터디 업체에 자산 보관을 위탁하는 방법.
둘째, 탈중앙화 지갑을 회사가 직접 관리하며 자체적으로 내부통제를 구축하는 방법이다.
커스터디 업체는 신뢰성과 보안 면에서는 유리할 수 있지만, 업체를 선정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직접 보유한다고 해도 걱정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일반적인 탈중앙화 지갑은 생성자가 모든 비밀번호(Key)를 소지하고 있어 언제든 자산을 이동시킬 수 있다. 은행 계좌처럼 외부 통제나 접근 제한도 없다.
예컨대 메타마스크의 경우, 많은 사람이 크롬 브라우저 확장 프로그램으로 설치해 일상적으로 쓰고 있다. 이렇게 쉽게 접근 가능한 환경에 회사 자산을 맡긴다는 건, 실무자 입장에서도 불안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탈중앙화 지갑을 법인의 자산 보관 용도로 사용하려면, 반드시 내부통제 체계를 갖추고 운영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
지갑의 내부통제와 관련된 주제는 향후 회차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가상자산에 대해 "금지하지 않지만 적극적으로도 두지 않는", 일종의 억제 기조를 유지해 왔다. 법적으로는 명시적 금지가 없었지만, 정책 방향이 보수적이었기에 기업이 가상자산을 활용한 새로운 시도를 하기는 쉽지 않았다. 거래소 법인 실명계좌 발급이 지연되어 온 사례가 그 대표적인 예였다.
반면, 해외는 달랐다. 미국, EU, 영국, 홍콩, 일본, 싱가포르, 캐나다 등 주요 국가 중에서 법인의 가상자산 규제를 금지한 국가는 단 한 곳도 없다. 오히려 제도 설계를 통해 그 생태계를 확장해 왔다. 그 결과 타국가와는 다르게 한국만이 법인의 참여가 제한된 채 개인 위주로 시장이 형성되는 기형적인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2024년 하반기부터는 가상자산 현금화가 필요한 기관(법집행기관, 비영리법인, 거래소 등)을 중심으로 실명계좌 발급이 허용되고, 이후 일정 요건을 갖춘 전문투자법인으로 점차 확대될 전망이다.
물론 그 외 일반 법인에게 문이 열리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완전히 허용되기 전까지는 이런 일반 법인에게 여전히 기존과 유사한 수준의 장벽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법인은 가상자산도 장부에 기록해야 한다. 금융자산, 재고자산, 유형자산과 마찬가지로 적절한 계정과 기준에 따라 회계처리를 해야 하고, 거래 내역은 회계장부에 남겨야 한다.
또한, 법인은 가상자산에서 발생한 이익에 대해 법인세를 납부해야 한다. 2027년까지 과세가 유예된 것은 개인 투자자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개인 소득세는 열거주의 원칙을 따르지만, 법인세는 포괄주의로 법인의 모든 소득을 과세 대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회계처리와 과세 시점은 향후 회차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이번 글은 가상자산을 처음 다루는 실무자들과의 대화를 바탕으로, 가장 자주 나오는 질문을 중심으로 정리해 본 것이다. 단편적으로 나오는 기사만 보고 "법인은 가상자산 보유가 불가능하다"라고 생각한다면, 현실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법인의 가상자산 보유는 현재도 가능하며, 상장사들도 보유 내역을 공시하고 있다.
향후 제도 변화는 법인의 시장 참여를 좀 더 원활히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규제 환경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단지 관리적 우려만으로 사업을 막아서는 안 된다.
가상자산처럼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분야일수록, 현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실무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앞으로도 이렇듯 언론 보도만으로는 놓치기 쉬운 실무 이슈들을 경험을 바탕으로 하나씩 짚어보려 한다.
다음 편에서는 법인의 지갑 관리와 내부통제에 대한 내용을 다뤄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