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준비생의 교토

자기화하는 힘

by 혜아


퇴사준비생의 교토는 경영서적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내겐 좋아하는 소설가의 에세이만큼이나 정서적인 만족감을 주는 책이었다. 에필로그에 저자인 시티호퍼스가 교토의 15개 브랜드를 소개하며 하고 싶은 말이 응축되어 나와있다.


"외부의 것을 받아들일 때, 그것이 무엇이건 교토처럼 자기화하는 힘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선 '자기다움'을 스스로 정의하고 가꿔나가야 하고요."


퇴사준비생 시리즈는 '경영철학', '컨셉기획', '디자인', '브랜딩/마케팅' 등 총 7가지 렌즈를 통해 도시 안의 브랜드를 들여다보고 독자에게 비즈니스 아이디어와 인사이트를 전달한다. <퇴사준비생의 도쿄 1&2>는 작년에 다녀왔던 도쿄 여행의 깊이를 더해 준 책이기도 했는데, 참.


멋진 가도를 달리고 있는 브랜드들이 어떤 성장을 거쳤는지에 대한 스토리는 항상 나에게 흥미로운 주제가 된다. 어떤 산업이든 양질의 사례를 많이 접하고 아카이빙 해두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성장의 과정을 관찰하고 어려운 상황에 대한 좋은 태도를 배우면서 나만의 것으로 체득할 수 있는 재정비의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교토 편이 기대되었던 이유는,

1,000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에서 어떤 브랜드들이 어떻게 지혜로운 방식으로 전통을 지키며 자기만의 길로 나아가는지 궁금했다.




no 6. 쿠로다이 미소

쿠로다이 미소는 일본 전국 각지에서 32종의 미소를 페이스트 형태로 판매하는 회사라고 한다. 서구화된 현대인들의 식생활에 소비량이 급감했던 미소 시장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데 일조한 교토의 미소 판매 브랜드다. 매장에는 미소 스페셜리스트라고 불리는 전문가들이 있는데, 쿠로다이 미소의 독자적인 연수 프로그램을 통과한 미소 전문가들이다.


미소 스페셜리스트. 비슷한 개념으로 룰루레몬은 오프라인 매장의 직원들을 에듀케이터라고 칭한다. 그 브랜드의 일원에게는 고유의 호칭을 붙이며 전문성을 높이고 브랜드 이미지를 차별화하는 부분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 자신의 브랜드를 만드는 과정에서는 뜨고 지는 트렌드에 탑승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요소와 취향을 선명하게 반영하여 뾰족하게 만드는 것도. 어떤 산업이든 가장 기본이 되는 것들을 충실하게 지켜나가는 브랜드의 뿌리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 것 같다.


함께 하는 사람들은 역시 중요하고, 남이 아니라 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no 8. 오가와커피

책이나 잡지, 어느 매체던 간에 어떤 커피 브랜드를 소개해 준다면 눈길이 간다. 내가 커피를 좋아하기 때문이겠지. 커피 젤리 플로트, 에스프레소 소다, 비엔나커피 흰 미소 크림, 숯불구이용 오븐에 구운 식빵은 무려 노트 2권 분량의 시행착오 끝에 출시된 메뉴라고 한다.


참 간단한 재료를 가지고 집요하게 파고드는 사람들, 뭐랄까 대단하다.

(비엔나커피 흰 미소 크림과 숯불 식빵은 꼭 먹어볼게요. 이곳에 가게 되면 커피 원두도 구매하겠습니다.)


no 10. 코에 도넛

가장 큰 위험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일

코에라는 브랜드를 확장하기 위해 시도했던 그간의 경험들이 쌓여 지금의 코에로 성장했을 테니까요. 오히려 아무 시도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코에는 없었을지도 몰라요.


옷 가게를 만들려다 호텔을 오픈하고, 피자 가게와 라이프 스타일 샵을 운영하다가 코에 도넛으로 자리를 잡은 코에 브랜드에 대한 스토리가 재미있었다. 업종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시도를 하고 도전을 반복하는 것 자체가 이 브랜드가 전달하는 메시지라고 느꼈다.


실패라고 여겨진 과정 속에서는 사실 더 깊은 경험, 지식과 힘이 축적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의 우리는 좌절 속에서 허우적 대지만, 그때가 지나고 나면 실패와 시도가 데려다준 길에 대해 깨닫게 된다.

(이곳에 가면 프렌치 쿠룰러 종류의 도넛을 맛보겠습니다. 구글맵에 자꾸 분홍색 하트를 늘어나게 하는 이 책은 여행 가이드북의 역할도 톡톡히 해요)


no12. 아에로

이처럼 중심축만 튼튼하다면 얼마든지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게 컬래버레이션이 가진 힘이에요. "만약 그릇을 잘 다루지 못해서 깨져버렸다 해도, 거기서 '이렇게 하면 깨져버리는구나', '물건을 소중히 하지 않으면 안 되는구나'라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길게 보면 그릇이 깨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경험입니다."


아에로는 일본의 전통 수선 문화를 활용하여 깨진 제품을 수선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물건을 판매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가치까지 전달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경험에서 깨닫는 생각과 배움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그렇다면 무용한 경험과 시간은 있을 수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도


(진한 글씨는 책에서 인용한 문장입니다.)




글을 쓰는 건, 자기다움을 가꿔나갈 수 있는 하나의 좋은 방법이라는 걸 매일 깨닫고 있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책은 내가 목적지까지 가는데 다양한 방식으로 길을 터준다. 그 길이 아름다운 해안 산책로일 때가 있고, 울창한 숲 속일 때도 있다. 어쩔 때는 100년 된 증기기관차를 타고 가보지 못했던 반짝거리는 호수에 데려다주기도 한다.


읽고 쓰는 시간이 우리에게 가장 매혹적인 이유다.


be you, not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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