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에세이 읽기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by 혜아


그럴 때가 있다.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눈을 굴리며 서가와 서가 사이를 탐험하다가 괜히 읽고 싶어지는 책을 집어 들고, 그 두꺼운 책을 한 호흡에 탐독한다. 우연히 만난 그 책은 소장 욕구까지 불러일으켜 결국엔 오렌지색 표지 옷을 입은 새것의 <무라카미하루키 잡문집>이 책장에 고상하게 놓여있는 때.

누군가의 추천, 베스트셀러, 동네 책방에서 표지가 매력적으로 보여서 집어든 책, 책이 또 다른 책을 끌어다 주는 것. 책을 고를 때 여러 가지 방식이 있겠지만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은 위에 언급한 방식 중 어느 것도 아니었다. 자주 가는 동네 도서관의 세계문학 834 서가에서 그저 눈에 띄었을 뿐이다. 우연히.


소설을 좋아하세요? 에세이를 좋아하세요?

소설가가 쓴 에세이는요?


베일에 싸인 좋아하는 소설가의 내밀한 일상과 생각을 볼 수 있는 건, 독자가 취할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베네핏이다.


최근에 하루키 에세이 중 3권을 읽었다. 시작은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이었다. 에세이치고 꽤 두꺼운 벽돌 두께를 자랑하는 잡문집은 1979년부터 2010년까지 하루키가 단행본으로 발표하지 않은 글들을 모아둔 책이다. 온갖 잡다한 것으로 이루어진 하루키의 마음속 세계를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었던 시간.


지금까지 읽은 에세이 3권 중에서는 하루키가 어떤 마음으로 소설을 집필하는지, 독자를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잡문집에 가장 잘 드러나있었다. 그 부분들을 보면, 하루키 소설을 한 번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도 이런 마음을 가진 소설가의 책은 꼭 읽어보고 싶구나 하는 마음이 들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소설을 쓰는 이유는 요약하자면 단 한 가지입니다. 개인이 지닌 영혼의 존엄을 부각하고 거기에 빛을 비추기 위함입니다. 우리 영혼이 시스템에 얽매여 멸시당하지 않도록 늘 빛을 비추고 경종을 울리자, 이것이 바로 이야기의 역할입니다.


내가 소설을 쓰는 한 가지 큰 목적은 이야기라는 하나의 '생물'을 독자와 공유하고, 그 공유성을 지렛대 삼아 마음과 마음 사이에 개별적인 터널을 뚫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누구든, 나이가 몇이든, 어디에 있든(도쿄든 서울이든), 그런 것은 전혀 문제 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쓴 이야기를 당신이 '자기 이야기'로 확실하게 끌어안아 주느냐 마느냐, 단지 그것뿐입니다.


글쓰기를 음악(재즈)을 통해 배웠다는 하루키는 20대 때 도쿄에서 재즈바를 운영하다가 스물아홉 살에 처음으로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그가 동경하던 작가들은 프란츠 카프카, 발자크, 도스토옙스키. 반드시 이들처럼 대문호가 될 필요는 없잖아 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4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일본의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존재하고 있다.


하루키가 건강한 일상의 루틴을 가진 작가라는 건, 그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정돈된 일상, 달리기와 여행을 좋아하는 잘 정비된 그의 삶 속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들을 다른 언어와 문화권에 있는 내가 동네 도서관의 세계문학 834 서가에서 너무도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감사해진다.


작가가 전달하는 이야기에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받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이야기를 쓴 작가의 삶에서 더 분명한 영감을 받는다. 소설가로서 뿐만 아니라, 번역가로서 좋은 번역을 해나가야겠다고 하루하루 스스로를 다잡는 모습에서 노력의 가치를 배운다. 하루키가(번역가로서, 독자로서) 바라보는 다른 소설가(레이먼드 카버, 가즈오 이시구로)들을 언급하는 부분에서는 인간적인 모습과 겸손함까지 느껴진다.

더 올바른 태도로 일상을 대해야겠다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엔 유머도 있다. 다른 에세이들도 그렇지만, 계산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오는 모습들은 확실히 웃기고 중독성까지 있어 치명적이다.

그러니, 웃음이 필요할 땐 쇼츠를 보는 대신 하루키 에세이를...


왜 지금까지 하루키 에세이를 읽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지 하고 생각하다가, 앞으로 읽을 에세이가 훨씬 많다는 사실이 다시 나를 한없이 기쁘게 한다.


이런 작가의 에세이를 읽고 있으니, 참으로 곤혹스러운 세상을 함께 난처해 할 수 있다는 게 조금의 위안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우리는 그 결론 없는 상황을 확실하게 그와 공유할 수 있다. 그것이 공유된다는 든든한 실감이 거기에 존재한다. 우리는 매장마다 그와 함께 난처해하고 곤혹스러워한다. 이것이 실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두 둥그렇게 모여 앉아서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야아, 곤란하군요" "좀 난처한걸요" "좀처럼 결론이 나질 않네요" 하고 머리를 긁적이거나 수염을 만지작거리거나 팔짱을 끼는 것, 어디선가 빌려온 것 같은 결론을 들이대며 호언장담하지 않는 것, 이것이 우리가 사는 데 매우 중요한 것이 아닐까?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 무라카미 하루키(저) · 이영미 옮김 · 비채 ·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