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병동, 당시의 기록
이제부터의 이야기는 그 해 병원에서 있었던 일의 기록이다.
오래전부터 아버지께 해드리고 싶었던 말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스스로에게 건네셨으면 했던 말들.
그날은 심한 구역감 때문에 아버지의 등을 천천히 쓸어드리다가 뒷모습을 바라보며 조용히 용기를 냈습니다.
'아빠, 아빠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생각하고 그냥 편하게 들으세요...'
‘그동안 건강하게 살아준 내 몸아 고맙다 수고했다.
난 참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았다, 수고했다.
결과가 다 맘에 든 건 아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한 나 자신을 인정한다, 참 애썼다, 고맙다.
가족들을 위해 한눈팔지 않고 헌신했다. 참 수고했다. 그런 내가 기특하다...’
몸에 대한 고마움으로 시작해 아버지 스스로에게 대한 칭찬과 고마움을 말로 표현하며 반복했습니다. 아버지가 아버지 스스로를 진심으로 인정해 주기를 바랐던, 그래서 스스로를 긍정하기를 바랐던 저의 오랜 마음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여러 가지 칭찬과 인정, 저의 감사까지 주저리주저리 섞어서 반복해 읊조렸습니다. 아버지는 아무 말씀 없이 듣고 계셨습니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루 이틀이 있은 후 아버지는 한결 편안하고 부드러워진 모습이었습니다. 그동안 내내 너무 날카롭고 예민하셔서 쉽게 말 붙이지 못했고 필요하시다는 것만 조심스레 도와드리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반가운 변화였습니다. 오래전 사진을 함께 들추며 잠시 추억을 곱씹기도 했습니다. 아빠와 보내는 매 순간이 너무나 아깝고 소중해졌습니다.
대부분의 시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서 아버지 손을 하염없이 주물러드리곤 했습니다. 점점 온기를 잃어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안 남았을 수 있겠구나.
일주일 후, 갈수록 통증이 심해지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화요일 새벽, 통증은 극에 달해 진통제가 투여됐음에도 거의 비명을 지르기 직전으로 치달았습니다. 급하게 의료진을 불렀습니다. 임종 전에 극도의 고통이 폭풍처럼 밀려오는 경우가 있다면서 임종준비실로 옮길 준비를 했고 급히 가족들을 호출하라고 했습니다. 새벽 두 시가 훌쩍 넘은 시각, 임종준비실로 옮긴다고 하자 아빠는 죽음에 곧 다다르는 신호일 수 있다는 것을 아시고는 오히려 고통이 끝날 거란 예상에 환호하며 기뻐하셨습니다. 죽음에 기뻐하는 아버지를... 가슴 먹먹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극도의 고통이 지나가고 어느 순간부터 통증이 천천히 잦아들었습니다. 위기를 넘긴 듯해 보였습니다. 어느 순간 조용해졌습니다. 그렇게 아침이 찾아왔고, 아버지는 고개를 숙이고 계시다(입원하시는 내내 통증으로 누워있기 힘들어 눕지 못하고 주로 앉아계셨습니다) 갑자기 가만히 고개를 들어 옆에 있는 저를 바라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딸… 정말 사랑했다…’
아... 정말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저는 그간 아빠에게 하고 싶던 못다 한 말을 쏟아냈습니다. 죄송하고 미안하다고.... 나 사실 아빠가 한동안 너무너무 미웠었다고. 예전에 아빠 감정을 못 읽어서 미안하고 그동안 미워해서 미안하다고.. 미워했던 마음이 아빠를 이렇게 만든 것 같다고. 그렇게 하고 싶던 말을 쏟아냈습니다. 가만히 들으시던 아버지는 미워했다는 내 말은 신경도 안 쓰시는 눈치였습니다. 그냥 다정하게 바라보셨습니다.
그 아침,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자 갑자기 아빠는 ‘오, 해피데이’ 노래를 틀어달라고 하셨습니다. 평소에 좋아하던 노래였다 하시면서. 너무 행복하다고 하시면서 생전 본 적 없는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오 해피데이’ 노래를 따라 부르셨어요. 엄마에게 저에게 속마음과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엄마에게 ‘당신은 천사야...’라고 하시며 그간 가슴에 담아뒀던 이야기를 털어놓으셨습니다.
아침 회진 때 의료진에게 질문하는 것을 듣고 비로소 그날 새벽 아빠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