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이 바뀌던 순간
아마 그랬기 때문에
아버지도 답답하셨을 거예요.
돌아가신 지 4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어쩌다 우연히 지인과의 대화에서 부모님에 대한 얘기가 나왔습니다. 딸부잣집에서 아들처럼 인정받고 자랐던 어머니와 강한 가부장적 분위기에 아들만 다섯인 집에서 둘째이지만 장남역할을 하며 형제들의 신임을 받았던 아버지. 극과 극의 환경에서 자란 두 분이 만났고 그래서 어머니가 무척 힘들게 사셨다고.
그러자 50대의 남자 지인 분이 담담하게 던지신 한마디, “아마 그랬기 때문에 아버지도 답답하셨을 거예요..”
아…!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아버지의 시선에서 상황이 인식되면서 아버지의 고통에 공감과 연민이 일어났습니다. 남자의 호령으로 모든 게 다스려지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에서 나고 자란 남성이 순종적인 친할머니와 달리 주관이 뚜렷한 여성을 만났고, 당신이 자라온 집안에서 리더나 다름없었는데 결혼 생활에서 그 리더십이 전혀 먹히지 않았던 것. 아버지 입장에선 미치도록 답답하고 화가 쌓여갔을 법합니다. 사건의 재맥락이 일어난 순간이었습니다.
오래전, 아버지 입장을 공감하고 이해하려 여러 작업을 했지만 되지 않았습니다. 가부장제는 나쁘다는 판단과 강한 거부감 때문에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도 가부장제의 부정적 인식이 팽배해 있어 어머니가 피해자라는 관점은 당연하다는 관점에 완전히 갇혀있었습니다. 싫다 좋다는 감정, 옳다그르다는 판단이 상황을 있는 그대로를 보는 걸 가로막았습니다.
가부장제의 원흉이라며 원망스럽게 바라보는 시선, 그 안에서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지 느껴지며 가슴이 저려왔습니다. 한편으론 내면 작업 초기에 정확히 이런 순간을 만나려고, 그래서 아버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화해해 보려고 갖은 시도를 다했는데, 그래서 잘 지내고 싶었는데 그걸 이제야 만나다니. 안타깝고 속상해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늦었지만 지금에서야 생전의 아버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어서 다행이고 감사합니다. 하지만 '일찍부터 이걸 알았더라면 그간 갈등이 덜했을 텐데, 더 잘 지낼 수 있었을 텐데'라는 후회와 안타까움이 폭풍처럼 밀려드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그런 저에게 그 지인분이 그러시더군요 가장 큰 스승은 가장 마지막 순간에 모든 걸 보여주신다고.
그랬습니다. 저의 여정에는 늘 아버지가 계셨습니다. 비록 좋은 사람 만나겠다는 목표로 했지만 그 불편한 관계가 끊임없이 내면을 들여다보게 했습니다. 그 분의 표현에 상처받고 아프기도 했지만 그런 아버지가 계셔서 10년이 넘도록 마음공부와 수행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사실 가끔은 어떤 깊은 차원에서 아버지와 내가 긴밀하게 연결된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수년이 지난 지금, 특별했던 순간의 아버지뿐만 아니라 마음에서 밀어내던 아버지의 모습까지도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빠같은 남자를 만나면 어떡하나..'라는 낡은 두려움에 피식 웃음 짓게 됩니다.
이제야 그 저주에서 자유로워졌습니다.
부모와의 인연이란
심리학적 접근으로 문제를 풀 때면 가끔, 왜 난 지금의 부모를 만났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어린 시절의 경험과 부모관계에서 대부분의 원인을 찾곤 하니까요. 어쩔 땐 부모님께 원망스럽기도 하면서 동시에 원망에 대한 죄책감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도로 보는 것 같아 조금 불편하기도 합니다. 완벽한 부모는 없다지만, '도대체 왜?'라는 의문이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의식에 대한 공부를 하다 보면 이 생에 태어날 때 자신에게 꼭 맞는 필요한 부모를 스스로 선택해서 온다는 내용을 듣곤 합니다. 이 생에서 겪을 경험을 제공할, 그래서 내가 더 높은 의식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줄 주요 인물들을- 부모를 포함해서- 선택하고 온다고요. 솔직히 당시에 그 말이 참 잔인하고 폭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억지로 갖다 붙인 것 같기도 했고요.
하지만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은 진실로 다가옵니다. 아버지와 있었던 많은 시간이 힘들기도 했지만 제가 끊임없이 성장하게 한 원동력이었다는 걸 경험했으니까요. 동시에 제 안에 아버지가 함께 하신다는 걸 압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기질 성격 재능 등은 나의 일부이자 아버지의 일부이니까요.
사랑에 대한 흔한 오해
이 긴 여정에서 또 하나 알게 된 것은 사랑은 가슴 설레고 좋은 기분을 선사하는 것만이 사랑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태도라고도 하지요. 의외의 상황에서 사랑을 발견했고 그것은 흔히 상상하는 종류의 느낌이나 감정은 아니었습니다.
힘들어서 불평하면서 떠나고 싶은데 차마 떠나지 못하는 마음, 어쨌거나 상대가 편안하고 안온하기를 바라는 마음 그 모든 것들이 사랑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생전 온기를 느끼지 못했지만, 그래서 사랑이 없는 결혼생활이라 감히 판단했지만 그건 착각이었습니다. 두 분 사이의 애증 아래에는 또 다른 종류의 사랑이 흐르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닿지 못한, 어긋난 사랑이었을지도.
새롭게 알게 된 것은 당사자가 아닌 이상 두 사람 사이의 인연은 누구도 쉽게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분의 인연이 어떤 연유로 만나서 헤어지지 못했는지 몰라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걸 어렴풋하게 알게 됐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저는 두 분이 이혼하셔서 각자가 사랑하는 좋은 사람을 만나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두 분의 인생은 두 분의 것이니 내가 너무 거기에 연연하거나 영향받을 필요는 없다고 덮어버리려 했지만 그게 잘 되지 않았습니다. 20대엔 자식을 위해 희생한 어머니의 인생에 조금이나마 보답해야 할 것 같은 부담도 많이 느꼈고요. 하지만 이제야 온전히 받아들이게 됩니다. 두 분 인연은 나름의 이유가 있고 겉으로 보는 것과 달리 그 두 분의 무의식 속엔 어떤 사랑이 혹은 복합적인 감정이 얽혀있을지 모르는 것이라고요. 그러니 내가 그것을 보상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언제나 부모님은 나보다 더 큰 존재이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