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그와의 대화가 조금씩 보인다.

관점이 바뀌면서 찾아온 변화

by 수메루

상담을 통해 자신에 대한 시선이 바뀌자 현실에서 그 변화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미운 오리가 백조임을 알아본 일주일 후, 신기한 일이 있었다.


당시 아버지는 건강검진에서 발견된 위에 작은 혹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기 위해 서울을 방문하셨고 퇴원 후 잠시 우리 집에 머무셨다. 그날 아침 부모님이 언성을 높이며 말다툼을 하시는데 - 내가 보기엔 아빠가 삐지셔서 꽥!! 한 거였지만 – 평소 같으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스트레스가 확 솟을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상당히 차분한 자신을 발견했다. 게다가 두 분의 양쪽 얘기 통역해 드리고 아빠 감정을 읽어드리면서 나도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마무리했다. 무엇보다 내가 그 상황에서 감정폭풍에 휩쓸리지 않고 차분하고 평온하게 비교적 얘기한 게 놀라웠다.


선생님은 그 대화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부모님과의 대화를 보면 마치 부부상담자 역할을 한 것이나 다름이 없어요. 마치 가해자 앞에서 침착하게 가해자로부터 받은 상처를 당당하게 얘기하고, 가해자의 문제를 상담하듯 중재를 했어요. 그건 가해자로부터 받은 상처를 넘어섰기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피하거나 외면할 수도 있었고 함께 동요될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러지 않았은 거예요. 외면하지도 않고 동요하지도 않고 침착하게 두 사람의 상황을 중재했어요. ‘


선생님께선 놀라워하셨다.

(저도 놀라워요 선생님..)


이어지는 선생님의 질문.


'왜 00 씨는 부모님의 관계에 그렇게 목매달았던 것일까요? 왜 그분들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썼을까요? 대개는 이런 상황을 외면하기 쉬운데.'


그러고 보니 나도 거기에 의문을 던진 적이 없다.


지난 한 주 동안 선생님의 질문이 머리를 맴돌았다. 왜 부모님의 관계에 그토록 깊게 발을 들이고 살아온 걸까.


내 안의 아이가 답하는 것 같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어. 그들이 불행한 걸 보는 게 마음이 아파. 마음이 불편해”

내가 그들을 사랑하는 걸까? 지금은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그 아이는, 그들이 화목하길 바랐고 그래서 그 안에서 안전하고 포근하기를 꿈꾸었다. 그들의 냉랭한 기류와 불행해하는 모습이 버거웠고 숨 막히게 힘들었다. 그 암울한 공기가 아닌 다른 공기를 간절하고 애절하게 바랬고 마음공부가 그 다른 공기와 희망의 원천이 되어줄 거라고 기대했다. 그리고,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얼마 전 기사에서 발견한 글귀가 생각난다.

"아이는 엄마의 밥만 먹고 자라는 게 아니라 엄마의 행복을 먹고 엄마의 말을 먹고 자란다."




아빠와의 대화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분의 화에 매몰되지 않고 조금씩 읽을 수 있는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


며칠 후, 부모님 댁인 본가에 내려가서 3일째 되던 날, 어김없이 비슷한 패턴의 갈등이 터졌다.

뭔가 별생각 없이 한 대답이 아빠를 자극한 것.


(대화)

아버지: 이사 가려는 집에 베란다에 새시는 어떠니?

나: 아.. 그 집은 하얀 새시가 아니고 옛날 식의 철제로 된 거예요. 그게 정말 너무너무 싫어요. 힝... 정말이지 너무 싫어요..


이 지점에서 문제가 터졌다. 내가 싫다는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 데에 아빠가 큰 거부감을 일으키신 것.


아버지: 네 감정을 그렇게 어린아이처럼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 어떡하니..! 남에 대한 배려 없이...! 그걸 못해주는 부모 마음은 어떻겠냐. 다른 사람을 좀 배려해야지. 그렇게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어린아이 같은 행동이야.

나:???


다른 때와는 달리 이번엔 부드러운 말투로 타이르듯 말씀하셨지만 내용은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말투나마 부드럽게 말씀하시는 것도 큰 변화라면 변화다). 늘 하던 패턴이다. 요지는, 너는 말을 어째 그런 식으로 하냐... 였다. 뭐가 어쨌길래!??! 내 입장에선 뜬금없다.


'어떠냐고 묻더니 거기에 솔직하게 답한 건데 누굴 비난한 것도 아닌데 왜 당신을 비난하고 원망했다고 해석하는 거지?? 도대체 뭐가 배려가 없고 어린아이 같다는 거지?? ‘


혼란스럽고 화가 났다. 순간, 늘 그래왔듯이 '내가 무얼 잘못한 거지?'라고 스스로에게 되물을 뻔했다. 아냐 아냐. 이렇게 납득이 안 가는 거는 내 것이 아냐. 저거 아빠 거야. 내 거 아냐. 난 화가 나. 화가 나. 화나도 돼!!' 한참을 씩씩 거렸다.


늘 그래왔다(어렸을 때부터 쭈욱). 내가 당신이 원치 않거나 기대하지 않은 반응, 혹은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 그걸 가차 없이 반박당했다. 왜 그러냐고. 왜 말을 그렇게 하냐고. 직설적이라고. 표현이 세련되지 못하다고 배려를 못하냐고. 일장 연설과 비난이 쏟아졌었다. 그때마다 나는 내가 문제가 있는 걸로 착각했다. 동시에 이해가 가지 않아 마음 한편에 거부감과 분노가 치밀었다.


나의 분노의 편에 서서 한참을 머무르니, 그리고 그건 아빠 꺼라며 그 관점을 선택하고 나니 서서히 아빠의 감정이 보이기 시작했다. 충분히 해주지 못하는 마음이 불편해서, 그걸 마치 자신을 비난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서 불편해하며 발끈하는 마음, 결국 뿌리에는 뭔가 더 해주고 싶은 마음인데 그게 이상한 방식으로 삐죽 터져 나온다.


다음날 아침에도 나는 뾰로통한 상태였다. 아빠가 아침식사를 하시면서 고개를 살짝 숙인 채로 무심한 듯 툭 던지신다.

아버지: 000을 아빠가 줄 테니까 집 고치는데 보태 써라.

나: (약간 얼떨떨하게)네


잠시 후 거실에서 외치신다.

아버지: 송금했다.

나: 고맙습니다!!(큰소리로 씩씩하게)


맞다. 아빠 거였다.


상대의 부정적인 감정이 버거운 사람. 그게 왜 불편한지도 모른 채 무작정 잘못됐다면서 발끈해서 상대방을 비난하는 사람. 알고 보면 자기 거였는데. 어떨 땐 알고 보면 서투른 사랑이 만든 불편한 감정인데 그것도 모르는 사람. 에긍.... 참 서투르시구나.


이제야 알 것 같다. 얼마나 자신의 감정에 서투른 사람인지. 자신의 연약한 면을 감추려고 얼마나 억누르고 덮고 애쓰는 사람인지. 그제야 그분을 '아버지'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 보기 시작했다.


안타깝다. 그런 서투른 방식 때문에 자신을 비난하고 자책하는 게 내재되었고 그것이 자신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아실까. 그 안에서 울고 있을 어린아이가 안쓰럽다. 자신이 얼마나 잘못된 존재라고 비난하고 있을까. 나는 왜 늘 부정적이지? 표현이 거칠지? 이러면서(이건 실제로 아버지 스스로 신경이 많이 쓰여하시는 아킬레스건 같은 부분이다).


연민이 인다.

싫은 행동은 참 싫은데, 인간적으로 참 짠하다.


오늘 아침, 나의 출근길을 배웅하며 씩씩하게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던, 오후 병원진료는 혼자 잘 다녀올 테니 걱정 말라던 뜻이 담긴 그 표정이 더욱 짠하다.

센 척 좀 그만하시지.


이제야 한 사람이, 한 사람의 아픔이 보인다.

속상하고 마음이 아프다. 참 오래 미워하던 사람인데 이제 안쓰러움이 앞선다. 그 안쓰러움이 더 지랄 맞다. 야속하다. 그분도 그 세월도.


그래도 이젠, 그분의 감정을 보고 읽고 얘기(통역)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내 감정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화가 나고 오기가 나서, 아빠 앞에서는 밝게 웃고 좋은 얼굴 하는 게 괜히 더 하기 싫었는데(청개구리처럼), 이제는 농담하고 웃어 넘기기도 하는 여유가 생긴다.


내 감정과 존재를 온전히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나니 다른 이의 아픔과 감정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도 평온한 마음으로.

ㅎㅎㅎㅎ

참 인생 지랄 맞다 ㅎ





그 해 늦여름, 그렇게 아빠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다정한 대화의 가능성이 보인다.


몇 달 후, 아빠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

그리고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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