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점이라 믿었던 것은, 재능이었다
그전 상담이 무의식을 해부하는 대수술이었다면, 이번 상담은 내면 봉합과 재활이었다.
20220년 여름.
난 문 선생님이 좋으면서도 조심스러웠다. 따뜻한 분이셔서 그리고 상담전문가이시니까 그래서 그런 거라고 하면서 경계를 두는 건, 마음으로 포옥 안기는 게 조심스러운 건 왜일까?
나를 다 드러내면 나를 싫어하게 되거나 나란 사람을 견디기 힘들어할까 봐 두려운 마음이다.
단지 섬세한 것이지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니다.
선생님께 그 불편함을 말씀드렸다.
거기에는 나는 유별나고 예민해서 나의 감정, 나라는 존재가 다른 사람을 힘들어할 거라는 시선이 있었다.
그랬다. 이 전의 상담에서도 나왔었다.
이모 삼촌들도 했던 증언.
나는 예민하고 별나서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는 존재라는 것.
그 시선에서 무너지는 수치심을 느끼고 머물렀던 기억난다.
그 아이가 아직 내 안에서 수치심을 느끼고 있구나.
'나는 별나서 다른 사람을 아프고 힘들게 할 수 있다.'
그 아이를 인형으로 꺼내보며 감정에 머물렀다.
외롭다. 혼자다.
“나를 진심으로 좋아해 주는 친구나 지인을 만날 때마다 고마움과 함께 그런 맘이 들었어요... 내가 뭐라고...”
눈물이 왈칵 흐른다.
선생님이 그 상황을 다시 정리해 주셨다.
그 아이는 단지 좀 다른 섬세한 보살핌이 필요했던 아이일 뿐이다. 부모님은 그런 섬세함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고 그 아이 입장에서는 거친 방식으로 대했다.
넌 왜 그리 예민하고 사람을 힘들게 하냐고, 왜 그리 자기주장이 강하냐면서 그들의 문제를 어린아이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그들의 육아방식은 아이를 멍들고 다치게 했고 위축되고 좌절하게 했다. 결국 그 아이의 섬세함은 꽃피우지 못하고 자신을 비난하고 또 그 비난에서 지켜내느라 많은 에너지를 써야 했다.
선생님이 그 아이와 그 아이가 겪었던 상황에 대해 설명하시는 말씀 한마디 한마디에는 힘이 서려 있었다. 단순한 공감을 넘어서 그 상황을 다시 설명해 주셨고 그 표정에서 단호한 힘을 느꼈다. 그 힘을 통해서 한 아이-섬세한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더 바뀌어가는 것 같다. 양육자가 심어놓은 시선에서 그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는 시선으로.
선생님께서 문장을 만들어주셨다.
"나는 단지 섬세한 것이지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니다."
시선을 바꾸자 나의 특징이 문제덩어리가 아니라 자원으로 느껴진다.
예술적인 재능은 섬세함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섬세함이 내게 소중하다. 피아노를 치고 그림을 그리는 재능, 내가 좋아하는 재능이 사실은 보모님이 싫어하시던 내 모습의 다른 면이다.
너무나 이해가 간다. 그건 섬세한 것이다. 예민한 문제덩어리가 사실은 내 재능이기도 했던 거다.
왈칵 눈물이 흐른다. 나다운 자원이 한동안 누군가를 통해 문제로 다뤄져야 했다니. 이 시간에는 자원인데 어린 시절에는 문제점으로 바라봐야 했다니.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런 나를 이토록 문제 다니. 그들의 부족함과 무지가 나를 문제 삼았다.
그 분노를, 선생님은 반가워하신다. 그 분노를 놓치지 않고 머무르게 도와주셨다. 부모님을 앞에 앉혀놓고 하고 싶은 얘기를 하도록 해주신다.
“나는 내가 잘 큰 거지 당신네들이 잘 키운 게 아니야. “
“나처럼 섬세한 아이를 잘 다룰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어. 당신들로 인해 아이는 더 일찍 꽃 피우고 훨훨 날지 못했어.” 등등
선생님은 그 분노에 충분히 머물기를 조언하셨다. 어쩌면 10년이 걸려도 그건 짧은 세월인지도 모른다고. 20년 넘게 그렇게 억눌렸는데 자연스러운 거라고.
다만 분노를 키우지 말고 그걸 나라고 여기지 말고 분노하는 섬세한 아이를 바라보고 머물라고. 그 분노는 타당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니 충분히 인정하고 바라보라고.
사실은 상담 초에 내 기록을 보시고, 어느 순간 과거에 대해 분노를 느낄 것을 예상하셨다고 하셨다.
그 말씀이 위로가 된다. 나의 분노가 지금은 너무나 소중하다.
선생님은 내가 엇나갈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음을 언급하셨다. 실제로 나도 그런 생각을 종종 했었다. 나를 망가뜨리는 선택을 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고.
유별난 아이로 바라보는 시선 vs 섬세한 아이로 바라보는 시선 중에서 섬세한 아이로 바라보는 시선이 커져간다. 그걸 지지하는 경험들이 떠오른다.
피아노를 치고 공연에서 기쁨을 느끼고 그림을 그리는 내가, 너무나 소중한 그 모습이 내가 힘겨워한 나와 동일한 나였다는 사실이 놀랍다.
섬세해서 어쩔 수 없이 겪었던 힘든 시간을 위로한다.
그 시간을 속상해하고 분노하는 마음도 소중하다. 섬세한 나는 내게 너무나 소중한 나이니까.
그건 나의 코어이기도 하니까.
내가 나답게 사는 방법, 나를 펼치며 살 방법을 찾을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빼꼼히 고개를 든다.
미운오리새끼가 백조임을 깨닫는 그 동화가 가슴으로 들린다.
그 결함이라고 느꼈던 것이 재능과 한 몸이었다. 부모는 아이가 지적호기심이 많고 공부잘하길 바라면서도 질문이 많은 것은 싫고 힘들어하는 상황을 겪은 것일 뿐. 어쩌면 이런 민감함 때문에 이때까지 마음공부를 계속 한 것이고 결국 여기까지 온 것도 그 덕분이란 생각에 나 자신에게 고맙기도 했다.
나는 내가 되고 싶었고
나의 존재를 사랑하고 싶었다.
나는 내가 되었고
나의 존재를 사랑하게 되었다.
나는 단지 섬세할 뿐 하자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내가 사랑스럽다 사랑스럽다.
내가 한 존재로써 온전하게 받아들여지는 기분,
내가 온전하게 느껴지는 기분이다.
(2020년 8월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