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에서 만난 결정적 순간들
2018년, 좋은 사람 만나 연애하자를 목표로 삼고 내면의 여정을 시작한 지 어언 9년.
"결혼할까, 말까?"라는 집단프로그램을 계기로 심리치료전문가인 한경은 선생님과 개인상담을 받게 됐다. 여러 가지 책과 워크숍을 거쳤지만 전문가의 개인 상담은 처음이었다. 대학 시절 다니던 학교가 심리상담센터가 잘 되어있어 한 두 번 이용해 봤던 경험이 있지만 그때의 상담은 속얘기를 털어놓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하지만 한경은 선생님과의 상담은 달랐다. 우리의 무의식은 준비되었을 때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만 보여준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렇다 할 효과가 없다며 투덜거렸지만 그동안 나의 무의식과 패턴, 신념을 다루기 위해 공부하고 탐색하면서 제법 내공이 쌓였던 덕이기도 했다.
여러 실패의 경험 때문에 의심반 기대반으로 시작한 상담이었다. 왠 걸, 선생님이 던지는 질문은 나를 무의식 깊은 곳으로 데려갔다. 영화 <인사이드아웃>에서 등장하는 잠재의식의 동굴을 탐험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동안 눈치채지 못했던 나만의 신념들, 특히 비현실적이고 비합리적인 신념들을 하나씩 인식하도록 도와주셨다.
상담 시간마다 난 눈물 콧물을 쏟으며 상담실 티슈를 어마어마하게 뽑아 썼다. 선생님은 사진작가이기도 했는데, 상담이 끝나면 선생님은 책상에 수북이 쌓인 휴지를 사진으로 남기곤 하셨다. 마치 그 날 여정의 땀과 눈물을 그대로 담는 것처럼.
20회에 걸친 상담이어서 많은 얘기가 오갔지만 기억에 남는 두 순간이 있다. 혼자라면 만나지 못했을 뜻밖의 그 순간은 놀랍고 경이로웠다.
학창시절 자주 들어서 내 안에서 끊임없이 재생되는 말씀이 하나 있었다. 중학교 시절, 아버지는 염려하는 마음을 담아 내게 당부하셨다.
'너는 타고난 성격이나 성향이 인품이 좋은 편이 아니란다. 그러니 스스로를 항상 잘 살펴야 한다. '
당시 난 아버지의 말씀을 진심으로 가슴에 새겼다. 그 얘기를 꺼내자 선생님은, 역할 극을 하듯 볼펜 두 자루를 책상에 놓고 하나는 그 시절의 나라고 생각하고 하나는 아버지라고 가정한 후 내게 물으셨다.
'자, 그 시절의 나는 그 얘기를 들을 때 어떻게 느끼나요?'
아.... 그 순간 생각지도 않은 고통이 온몸을 감쌌다.
존재가 짓이겨지는 듯 완전히 짓밟히는 고통이었다. 진심을 담은 조언이라서 가슴깊이 받아들였는데 정작 존재가 뭉개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니!
눈물이 한동안 멈추지 않았다.
그 말은 스스로를 근본적으로 결함이 있는 사람으로 느끼게 했다. 그로 인해서 특히 부정적인 감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가정과 의심이 언제나 함께 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정당하게 화를 내거나 항의를 해야 하는 순간에도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끝없는 자기 의심이 깔려있었다. 스스로에 대한 이해의 실마리를 찾은 순간이었다.
또 한 번은 엄마와 관련된 것이다. 상담을 가는 날 새벽, 선명한 꿈을 꾸었다. 꿈으로 잠을 설쳤다고 하자 선생님은 그 꿈을 살펴보자고 하셨다. 내게 간혹 반복되는 꿈 중 하나는 공포영화의 귀신같은 존재가 등장하는 장면이었다. 그날은 대학로 어딘가를 지나가는데 내 옆으로 귀신같은 존재가 지나갔고 그 순간 강렬한 공포를 느꼈다.
선생님은 내게 물으셨다.
”그 꿈을 다시 살펴볼게요. 공포를 느끼게 한 그 귀신같은 존재를 한 번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누구인가요?“
하아......! 그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 존재는..... 엄마.... 였다!!!!
친밀한 관계인... 엄마라니.
하지만 어린 시절, 한동안 난 엄마를 힘겹고 차갑게 느꼈다. 예일곱 살 어느날, 마녀냐고 진지하게 물은 적이 있을 정도니까. 초등학교 땐 많이 맞고 컸으니까. 선생님은 그 감정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화, 분노는 보통 사회에서 용인되는 감정이 아니기 때문에 때론 그것을 공포로 표현하기도 한다. 공포는 적어도 왜 그런지 돌아보고 살피게 되는 감정이므로 무의식적으로 우회로를 선택해서 화를 표현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랬다. 초등학교 4,5 학년 때부터 난 유독 공포이야기를 무서워했고 실제로 가위에 눌리기도 했다. 이제 보니 그건 엄마를 향한 분노를 공포로 표현했던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발견이었다. 선생님은 아버지 문제로 찾아오는 많은 내담자가 사실은 어머니 관계를 봐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셨다. 그래서 분노를 더 자세히 살펴보자고 하셨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엄마를 원망하고 싶지 않다고 거부했다. 선생님과의 작업이 늘 흥미롭고 감동적이고 놀라웠지만 한편으론 과거의 심리를 들여다보는 작업이 너무 과거에 몰입해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건 아닌지 약간의 피로감이 들었다. 지금 보니 그건 회피였다. 많은 내담자는 감당하기 힘든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회피하기도 한다. 어쩌면 당시에는 그것을 충분히 다룰 시기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당시 선생님은 내 의사를 존중해 주셨고 어머니와의 관계 탐색은 그쯤 해서 마무리했다.
여러 과정들이 있었지만, 이 두 경험은 특히 놀라웠다. 왜냐면 그 전에도 혼자서 작업을 했었기 소재였기 때문이다. 무의식 깊은 곳을 만나려고 수년을 시도했지만 어느 이상 되지 않았는데 선생님과의 상담에서 쑥쑥 진행되었고 거기서 의외의 감정을 마주하게 됐다.
고통의 순간을 조우하고 다시 느끼는 일은 꽤 힘든 작업이다. 그 고통을 안겨준(안겨준 것으로 보이는) 대상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이 작업은 원망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도 부모가 처음이고 완벽하지 않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모님을 투사해 세상과 삶을 바라본다. 어른으로써 이제는 그 투사를 하나씩 거두기 위해, 그래서 더 자유롭고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하는 것이다.
고통에 있던 스스로를 안아주며 자신과 화해하는 과정은 실로 감동적이다. 그 과정을 통해 자기를 회복하고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간다. 그것은 진짜 자기 다운 삶을 자유롭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든든한 바탕이 되어준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경은 선생님과의 상담은, 깊은 내면을 탐사하며 해부하는 시간이었다. 힘들지만 재밌었고 흥미로울 뿐 아니라 가끔은 짜릿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 탐험의 시간이 아직도 가슴에 남는다.
상담은 잘 마무리되었지만 아버지와의 관계를 바꾸기까지는 여전히 시간이 필요했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2년 후 문수정 선생님과의 인연으로 아버지와의 대화방법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