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by 수메루

20대 초반 어느 날이었다. 우연히 미래 어느 날에 어머니가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면 어떨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을 만큼 괴로웠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면 어떨지 묻자 가슴이 무덤덤했다. 순간 스스로에게 놀랐다.

'이건, 뭔가 잘못되었어.'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해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느꼈던 순간이었다.


서른 살, 건강문제로 감정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당시 다양한 병원 치료에도 불구하고 부상 후의 통증은 일 년이 지나도록 나아지지 않아 일상생활이 버거웠다. 어떻게든 나아져야 했다. 통증을 다루는 방법을 찾다가 EFT(감정자유화기법)을 알게 됐다. 과거에 해소되지 않은 감정이 몸과 의식에 남아서 삶에 영향을 주는데, EFT는 그 감정을 하나씩 다루는 방법이다. 워크숍에 참가하고 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꾸준히 적용하면서 심리와 의식, 치유에 대한 내용을 접하게 됐다. 나의 마음공부의 시작이었다.


연인관계는 자라온 환경과 부모와 형성된 관계에 따라 각자 특정 패턴을 지니게 된다. 아버지와 사이가 껄끄러웠던지라 단박에 그것이 나의 청춘사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았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딸들, 특히 아버지 같은 남자를 싫어하는 많은 딸들이 그를 꼭 닮은 남자에게 무의식적으로 끌린다는 얘기는 내겐 무시무시한 경고처럼 들렸다. 또 하나의 분명한 목표가 생겼다. 내면 작업을 통해 아버지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야겠다!


매일 감사일기와 확언일기를 적어갔다. 반복적인 생각과 말하는 대로 삶은 이루어진다 했던가. 오랫동안 혼자 살겠다고 공공연히 선언해 온 전적(?)이 있는 지라 그것까지 감안하면 더욱 열심히 자기 선언을 해야 했다. '내게 맞는 사람을 만난다.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 행복한 연애를 한다... ‘등등 매일 적고 상상하며 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당시 내면 작업을 통해 과거의 패턴에서 벗어나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됐다는 상담 사례는 많았다. 나도 어린 시절의 기억을 어루만져주고 묵은 감정이 풀리면 아버지와의 관계도 좋아지고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길어도 1-2년이면 충분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


EFT 외에도 에니어그램, 내면아이치유, 비폭력대화, 자비명상 등 다양한 내면 작업을 시도했는데 그때마다이번 시도가 마지막이라고 다짐했지만 변화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일단 아버지와 다정한 관계가 되는 게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부모님 댁에 가면 3일째부터 싸한 느낌과 함께 어김없이 갈등이 터졌고 마음에 생채기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내면 작업을 하다 보면 때때로 깊은 감동의 순간을 만나지만 시작은 언제나 불편한 감정과 기억을 마주하는 일이다. 실로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만하고 현실적인 데에 에너지를 쓰고 싶으면서도 왜인지 멈출 수 없었다. 같이 작업하던 분들은 하나 둘 원하는 바를 이뤄갔지만, 나만 유독 느리고 변화가 미미해서 오기가 생기기도 했다. 나는 왜 안 되는 거야?!


연애란 자고로 여러 사람을 만나보며 알게 되는 것이니 많이 만나보자며 노력한 시절도 있었다. 자연스러운 만남을 고집하다 결국 결혼정보회사에 등록하고 소개팅을 이어갔다(물론 그전에도 소개팅은 틈나는 대로 했었다). 30대 중반이 넘어가며 하는 소개팅이 쉽지 않긴 하지만 내겐 더 어려웠다. 많은 사람을 만나보겠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노력해 보자 하면, 마음 한편에서 '싫어!!!'라는 마음이 솟구치며 두 가지 힘이 팽팽하게 맞섰다. 목은 마르지만 한사코 물 마시기를 거부하는 말을 물가에 억지로 끌고 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내 마음인데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노력하기 싫으면 연애에 관심을 안 두면 되고 관심이 있으면 열심히 노력하면 되는 것 아닌가. 지켜보는 나 자신도 답답했다.


그러던 어느 날, 미혼남녀를 위한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심리치료 전문가가 진행하는 <결혼할까, 말까?>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신 선생님을 통해 지지부진하던 내면 작업이 드디어 변화를 맞게 됐다.



이전 02화마음의 틀에 서서히 갇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