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부터였다. 어머니는 종종 '여자도 꼭 경제적인 능력이 있어야 한다'라고 절절함을 꾹꾹 눌러 담아 말씀하시곤 했다. 그 말씀은 가슴 깊이 박혔고 내게는 종교와 같은 신념이 되었다.
‘독립성을 갖춘 여성이 되어야 한다.’
솔직하게 고백하건대, 유년시절에 나는 엄마가 그다지 따스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었다. 받아쓰기에서 한 개만 틀려와도 표정은 싸늘하게 돌변했고 시험을 망쳐온 날엔 어김없이 매를 맞았다. 동생에게는 한없이 따뜻했고 둘이 다투는 날엔 나만 된통 혼이 나곤 했다. 이유는 주로 말대답하지 말라는 것, 자기주장과 고집이 세다는 것이었다. 7살의 어느 날, 내 딴에는 매우 진지하게 엄마에게 물었었다.
'엄마...(혹시) 마녀야?'
하지만 많은 K 장녀들이 그러하듯,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부터 엄마의 삶과 속얘기를 들으며 조금씩 엄마에게 감정이입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와 친밀감을 형성하면서, 아니 속된 말로 엄마와 편을 먹고(?) 나서는 아빠를 향해 서서히 날을 세우게 되었다. 마치 엄마의 보호자가 되어 대신 싸우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버지는 딸에게서 당신과 닮은 점을 보는 걸 불편해하셨다. 자신이 싫어하는 특징을 나에게서 발견할 때마다 그렇게 살면 인생이 힘들어진다며 강한 훈계를 이어가셨다. 그랬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어머니보다 아버지를 훨씬 많이 닮은 딸이었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주변에선 쏙 뺐다고도 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지독하게 싫었다. 또한 아버지와의 갈등도 갈수록 심해졌다.
한편,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부터 오랫동안 외치던 독신주의는 흐려졌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사라졌다. 그러나 ‘아니다 싶으면 빨리 헤어져야 한다, 언제든 이혼할 수 있도록 경제적인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방어기제가 대신 자리했다. 그럼에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다정하고 친밀한 관계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천천히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