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를 통해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는데
음... 이제는 그냥 외로움을
잘 안 느끼게 된...?ㅎㅎㅎ
그래도 외로움과 멀어져서
다행이고 좋아요:)
어느 날 책 읽기 단톡방에서 우연히 나누게 된, 멀어진 외로움에 대한 고백이자 마음공부로 인해 좋아진 점의 간증(?)이었다. 톡을 쓰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진심이었다. 자조 섞인 위로가 아니라 정말로 혼자여도 참 좋은 요즘이다. 예전에는 마음에 어딘가 채워지지 않은 무언가가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그 빈자리와 외로움으로부터 훌쩍 멀어져 있었다.
20대 후반부터 참 열심히 마음공부에 매달렸다. '좋은 배우자를 찾겠다.'는 아주 분명하고도 다분히 세속적(?)인 목표가 있었다. 부모와의 관계가 정리되지 않으면, 특히 딸들이 아버지와 불편한 감정을 가진 채로 이성을 만난다면 싫어하는 아버지 모습을 똑 닮은 사람이나 완전히 정반대인 사람을 만나서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얘기를 우연히 접했던 탓이다. 당시 연애 관련 상담글이나 책을 보면 헤어지고 만난 또 다른 남자친구가 알고 보니 전 남자 친구와 비슷하더라는 경험담이 많았다. 그 패턴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채우지 못한 결핍을 채우기 위해 이성친구에게 투사하기 때문이라는 설명과 함께. 그런 얘기들은 내겐 무시무시한 저주처럼 들렸다.
1980년대 어느 날 부산에서 여섯 살짜리 꼬마가 화장실에서 빨래를 하는 엄마를 바라보며 해맑은 얼굴로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엄마, 난 절대로 결혼 안 할 거야.’
그 순간 왜 그런 얘기를 했는지 특별한 맥락도, 감정이나 생각도 없다.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툭 튀어나온 말이었다. 그 이후에도 초등학생 내내 독신주의를 외치고 다녔다. 왜 그랬는지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없지만 그냥 당연하게 느껴졌다. 그럴 때마다 주위의 어른들은 ‘그래... 알겠다. 그런데 너 그거 아니? 그런 애들이 제일 먼저 가더라.’라고 웃으며 말씀하시곤 했다. 초등학교 6학년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외할머니께서 '그럼 결혼 안 하겠다는 각서를 쓸 수 있느냐'라고 농담 삼아 물으셨다. 그래서 난 '당연하죠!'라며 각서를 썼고 옆에 있던 막내이모는 외할머니와 함께 증인으로 서명하셨다. 두 분 다 웃으시며 너 시집갈 때 이거 꼭 보여주마 하셨다. 그리고 난 보기 좋게 어른들의 예상을 벗어나버렸다.
우리 시대의 많은 어머니들이 그렇게 살아오셨지만, 어린 눈엔 참 많은 게 불공평해 보였다. 엄마는 친할머니 친할아버지 생신날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생신상을 차려드렸으나 아버지가 외할머니 생신을 챙기는 건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참 이상해 보였다.
두 분 모두 각자의 역할에는 충실했지만, 두 분 사이에는 온기라곤 단 한순간도 목격할 수 없었다. 가끔 알 수 없는 냉랭함이 감지되면 우리 남매는 긴장하며 눈치를 살피곤 했다. 어느 날은 엄마가 서럽게 목놓아 우시는 것을 보았다. 아버지는 친가 식구들에겐 더없이 살갑고 자상했으며 성실한 직장인이셨고 우리 남매에게도 좋은 아버지가 되려 최선을 다하셨다. 어떤 면에선 흠잡을 데가 없는 분이셨다. 매해 방학이면 우리를 데리고 산으로 들로 향했고 겨울이면 손수 만든 방패연을 멋지게 날려주시기도 하셨으니까.
그래서 어린 눈엔 더더욱 많은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