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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단 Oct 14. 2020

가볍게 즐기기 좋은 여성 코미디

영화 <페뷸러스>

영화는 곳곳에 감독이나 각본가의 유머 코드가 있다. 하지만 장르 자체가 코미디인 영화를 극장에서 본 것은 꽤 오랜만이었다. 가볍고 웃긴 분위기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다만 '코미디'를 전면으로 내세운 영화는 보기도 전에 기대치가 높았다. 개그 프로그램은 당연히 웃기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기대를 충족하는 코미디물을 만나지 못해서였는지 공포 못지않게 손에 가지 않는 장르였다.


생각이 바뀐 건 최근 일이다. '나를 차버린 스파이'를 보는 내내 웃기만 했다. 이야기 구성도 탄탄했다. 친구인 주인공 둘이 스파이의 뒤처리를 하면서 소란을 일으키는데 우연의 남발이나 억지가 섞이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웃겼다. 이런 코미디라면 영화관에서도 보고 싶을 정도로.


영화 '페뷸러스'의 간단한 시놉시스를 보았을 때 몇 개의 특징이 겹쳐 보였다. 세 명의 친구들이 나오고, 그들의 관계가 주된 이야기이고, 이를 코미디로 풀었다. 



주인공 로리는 작가 지망생이다. 자신이 선망하던 '톱'에서 인턴 생활을 하다가 어느새 마지막 출근일. 상사에게 자신의 글쓰기 능력을 내세워 설득한다. 로리의 제안은 거절당했다. 회사는 사람들에게 팔릴 글보다 그 글을 팔리게 할 사람이 필요했다. 회사가 제시한 숫자는 팔로워 2만 명. 글짓기에만 집중했던 로리에게는 터무니없는 수였다.


로리는 기분 전환할 겸 룸메이트 엘리와 클럽에 간다. 둘이 우스꽝스럽게 춤추고 놀 때, 클라라가 들어선다. 클라라는 유명한 유튜브 스타이자 인플루언서다. 잔뜩 찡그린 표정은 두 사람이 노는 모습을 보고 순식간에 사라진다. 어느새 클라라의 눈에 부러움이 담겼다.


로리는 클라라와 몇 번 대화를 나누다가 사진을 찍는다. 그 사진에 자신의 계정이 태그되면서 팔로워 수가 하룻밤 만에 800명 넘게 늘어난다. 얼결에 방법을 찾았다. 클라라와 가까이 지낼수록 좋다. 



엘리는 멀찍이 떨어져 제 친구가 변해 가는 과정을 본다. 로리의 관심은 이제 팔로워 숫자다.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것에 집중하다 보니 넘어서는 안 될 선도 넘는다. 아니다. 정확히는 얼결에 잘 넘어간 선으로 바뀌었다. 실소가 나오는 전개였지만, 어쨌든 로리는 클라라의 자리를 꿰찼다. '톱'에 입사하는 것에 눈이 멀어 자신이 잃은 자신과 친구들을 떠올리다가 로리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스토리만 떼어놓고 보면 뻔하다는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별로였다는 감상이 나오진 않는다. 세 친구가 가까워지고, 싸우고, 오해가 생기고, 다시 풀어가는 일련의 과정이 유쾌했다. 엄청난 재미가 있진 않아도 그들이 노닥거리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나의 친구들도 생각나고, 실존 인물들의 일상을 관람한 기분이었다. 관찰 예능처럼 말이다. 



총평하자면, 내용이 허술해도 그 허술함이 나쁘지 않았다. 작품성이 뛰어나고 정교한 영화만이 의미 있는 것은 아님을 새삼 깨달았다.     








제     목

페뷸러스 (Fabuleuses)


감     독

멜라니 샤르본느


출     연

줄리엣 고셀린, 노에미 오파렐, 모우니아 자흐잠


장     르

2020 어썸 우먼 무비


수입/배급

싸이더스


공동배급

찬란


러닝타임

109분


등     급

15세 이상 관람가


개     봉

2020년 11월




*위 글은 아트인사이트(https://www.artinsight.co.kr/)에서 초대권을 지원 받아 기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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