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에게 화분을 주러 가기 전

새로운 시작을 함께할 반려나무

by 호단

#얼결에

그런 때가 있다. 매끄러운 흐름을 타듯 생각의 회로가 어떤 장애물도 만나지 않고 시작-동작-결과까지 닿을 때. 그럴싸한 표현을 단 네 글자로 축약하면 '충동소비'. 소비는 충동이어도 나름 계기는 있다.


유튜브에서 영상을 보았다. 지겨운 집콕 생활에 활기를 불어넣을 만한 것들을 추천하는 유튜버들. 그들의 활기참이 즐거워서 보았지, 소개하는 물건들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가 낯익은 글자가 등장했다.


TreePlanet


언젠가 트리플래닛에서 진행하는 나무 심기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말은 거창한데 참여 방법은 간단했다. 이들이 론칭한 어플에서 나무 기르는 게임을 하면 실제로 나무를 심는 방식이었다. 정확한 구동방식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전 일이었다. 이제는 실제로 '반려나무'라는 이름으로 식물을 입양 보내고 있었다. 실제로 나무를 심어서 숲을 조성하는 것도 여전했다.



#작심삼일

사이트를 둘러보면서 그 애가 생각났다. 무너진 생활패턴, 무던한 하루, 무의미한 삶을 그저 살아가고 있는 그 애. 이십몇 년 동안 타인의 인정을 받는 데에 너무 익숙해진 몸과 머리. 이런 자신의 상태를 최근에서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은 그 애의 눈에 희망이 담겼다. 달라진 자신을 마주할 생각에 들떴다. 긍정적인 말을 쏟아내는 그 애를 보며 나는 응원의 말을 건네면서도 기대치를 낮추려 했다.


깨달음은 순간이지만 생각은 지속적이고 행동은 단발적이다. 각성의 첫 고비는 3일이다. 환희와 열정 대신 의구심이 자리 잡을 때다. 머리는 큰 도약을 한 것 같은데 눈에 보이는 현실은 그대로다. 여전히 헤매는 자신을 발견하고, 혼란스러워한다. 깨달음은 변화의 시작이긴 하나 시작'점'은 아니다. 어느 방향으로 점을 찍을지는 자신이 찾아야 하는 셈이다.



#족쇄

그 애는 얼마 전 세 번째 입시를 끝냈다. 보통 N수생은 연달아 시험을 보며, 한 해라도 빨리 대학에 들어가려고 노력한다. 그 애의 방식은 조금 독특하다. 연달아 도전한 것이 아니라 그 사이사이에 텀이 있었다. 본인 표현을 그대로 빌려 쓰자면 '땅굴 파고 들어가서 나오지 않은' 시기였다.


아주 어려서부터 한 분야만 공부하게 된 그 애는 어딜 나가든 상을 휩쓸었다. 1등, 가끔 못하면 2등. 우리는 '잘하는' 사람을 보면 뛰어난 실력은 물론 자신감이 충만하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닌 경우도 있다. 그 애는 쏟아지는 박수갈채를 이해하지 못했다. 꾸며낸 소리였는데, 다른 사람인 것처럼 했는데, 왜 사람들은 이걸 잘한다고 하는 걸까.


속이야 어떻든 겉으로 보이는 그 애의 실력은 상승곡선을 그렸다. 그 곡선의 흐름이 뚝 끊긴 건 열아홉에서 스무 살이 되어갈 무렵, 한국의 많은 학생들이 느꼈을 좌절감과 충격. 땅굴에 오래 머물다가 나왔지만, 그 애는 완전히 회복한 상태가 아니었다. 어설프게 정리한 마음은 주변의 말과 반응에 흔들리고, 얼결에 또, 입시를 시작한 것이 작년의 일이다.



#실패

사람은 왜 사는 걸까? 답 없는 질문을 오랜 시간 던졌다. 그 애와 대화를 나누다가 문득 떠올랐다. 사람은 내일을 살기 위해서 산다.


오늘 하루를 돌이켜 보자. 오늘 당신이 했던 말, 행동, 생각이 만족스러운가? 뜻대로 잘 풀린 사람이 있듯이 누군가는 분노나 우울, 절망이 뒤섞인 하루를 보냈다. 오늘 하루가 별로였다고 치자. 그리고 잠시 저번 달을 생각해 본다.


지난 1월에 별로였던 하루는 며칠이었는가? 31일 중에 27일이 별로였다고 또 가정하자. 이제 월 단위 말고 연 단위로 범위를 넓힌다. 저번 한 달이 별로였고, 오늘 하루도 별로였다. 그럼 20201년, 올해는 별로인 해인가? 이건 O/X로 답할 수 없다. 아무도 모른다.


이 예시를 확장해 본다. 주어진 시간 동안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어떤 공모전이나 프로젝트에 도전했다고 생각해 보자. 오늘이 결과 발표날. 종일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렸는데 탈락이다. 그럼 그 도전은 '실패'한 것인가? 수긍하려면 단어 앞뒤에 몇 마디를 붙여야 한다. (지금 시점에서는) 당연히 실패(인데 길게 보면 아닐 수도).


A라는 일/사건을 어떤 결과와 일대일 매칭 하면 나란 인간은 실패밖에 할 줄 모르는 인간처럼 보인다. 시야가 좁아졌을 때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결과가 어떻든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 지식, 배움, 깨달음, 느낌, 감정은 여전하다. 지금 그 일에 제대로 담기지 않았을 뿐, 살아있는 한 기회는 계속 있다.


사람은 누구나 미래지향적이다. 다만 이를 인지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의 차이다.



#시작점

아무리 이런 이야기를 보고 들어도, 현시점에서 느껴지는 실패의 괴로움은 쉬이 가시지 않는다. 이럴 땐 하나의 이정표가 필요하다. 나와 닮은 존재, 내가 닮고 싶은 존재, 새롭게 같이 자라 날 존재.


다시 첫 번째 태그 #얼결에 로 돌아간다. 그 애가 고른 5번은 황금사철이다. 강원 산불 피해 복구 캠페인을 진행하는 식물인 만큼 강한 생명력이 돋보인다. 다른 나무들은 살기 어려운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자라나는 우직함, 꽤 단단한 잎 표면, 한 줄기에 옹기종기 모여서 자라는 모양새.


황금사철이라는 이름답게 햇빛을 받으면 받을수록 윗부분 잎이 노랗게 물든다. 천천히 조금씩, 눈에 보이지 않아도 자라는 중일 테니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리기만 하면 되겠다.


그 애의 황금사철 한 그루, 나의 황금사철 한 그루.

넷이 함께 자라날 내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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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집을 나설 때다.

어서 그 애에게 화분을 건네 주어야지.